■ 자랑합니다- 아버지의 상수연(上壽宴·100세 잔치) <상>

아버지가 100세 잔치 상수연(上壽宴)에서 자손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아버지가 100세 잔치 상수연(上壽宴)에서 자손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아버지의 양력 생일(5월 23일)에 상수연(上壽宴·우리 나이 100세를 축하하는 잔치)을 슬하 총생(자식)들만 모여 치러드렸습니다. 흔히 ‘백세시대’라 해도 이런 세리머니는 흔치 않을 것입니다. 1927년생으로 생존해 계신 할아버지는 1529명, 할머니는 5907명이라고 하더군요. 2년째 요양원에 계시지만, 치매(인지장애)도 걸리지 않았고, 누구누구를 못 알아보지도 않으며, 보행도 조금 부축만 해드리면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장수를 하셔, 드디어 상수를 맞은 것이지요. 몇 년 전부터 “이러다 세 자릿수를 채울랑가” 하시던 말씀이 실현됐습니다.

대가족으로 이만한 경사가 없습니다. 석 달 전부터 형제들이 임무를 맡았습니다. 아버지의 평생 사진 중 100장을 골라 앨범을 만들고, 잔치에 걸맞은 식당을 알아보고, 잔칫상과 한복을 빌리는 일, 사회를 볼 아들, 장기자랑(색소폰 연주)을 할 딸을 정했습니다. 날짜를 받아놓으니 세월은 또 금세 흘러 ‘그날’이 왔습니다. 아버지의 컨디션이 걱정됐으나 4시간여를 끄떡없이 견뎌주신 아버지가 고마웠습니다.

회관도 100년 역사의 마당 넓은 고급 한정식집이어서 좋았습니다. 손님도 딱 우리만 받으니, 어떤 눈치도 볼 것 없이 활발해서 그만이었지요. 당신의 직계 4남 3녀와 유일한 친척(할아버지가 5대 독자로 손이 드문 집) 방계 작은집 2남 2녀의 아들, 손자가 한자리에 다 모이니 50명이었습니다. 이런 모임도 사실 처음입니다. 손자 15명, 증손 10명(뱃속 2명 포함), 종손까지 왔으면 60명이 넘습니다. 증손녀가 장성했다면 고손자도 가능한 일입니다. 제주, 서울, 여주, 의왕, 광양, 논산, 인천 각지에서 피붙이들이 모여 아버지의 상수를 축하드리며, 4시간 가까이 한 끼를 같이하며 웃고 떠들며 인증샷을 찍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아주 즐거웠습니다. 호주에 사는 제 작은아들은 속이 상해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이벤트로 아버지가 손자·손녀 증손자들에게 복돈을 직접 주시게 했습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되겠지요. 막내딸이 노래 부르는데 마이크를 쥐여드리며 ‘묻지 마세요’ 몇 구절도 직접 부르게 해드렸습니다. 아버지는 가수 김성환과 함께 찍은 인증샷도 있는 찐팬이거든요. 김성환 형님도 아버지의 팬으로, 면회도 하고 싶다고 했으니까요.

신기한 일입니다. 5대 독자 아버지의 아버지는 31세, 아버지의 할아버지는 61세 회갑해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까 두 분이 사신 것보다 아버지는 이미 8년을 더 사시며 우리 나이 100세를 맞은 것이지요. 또한 당신의 양력 생일이 할아버지 생신 5월 22일, 증조할아버지 생신 5월 24일의 딱 중간, 5월 23일인 것도 예사로운 일이 아닌 듯합니다. 아무튼 상수연이 아무 탈 없이 잘 끝나 모두 안도의 숨을 내쉬며, 서로에게 “애썼다”며 덕담을 나눴습니다. 아, 사회를 보는 형님이 깜짝 이벤트를 선보여 저도 놀랐습니다. 아버지가 ‘천하제일 효녀상’을 큰딸에게 상장과 함께 수여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수상 내용을 읽으시며 울컥하시는 듯했습니다. 여동생은 큰딸이라는 ‘죄 아닌 죄’로 집안 대소사에 늘 앞장섰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시는 날까지 효도를 다했습니다. 오죽하면 아버지가 평소에 “우리 집 ‘최청’(효녀 심청을 빗대어)”이라고 했겠습니까. 둘째 형은 형제를 대표하여 아버지께 축사를 했고, 넷째 아들은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를 한지에 붓으로 써 육성으로 낭독했습니다. 이런 잔치에 자라나는 꿈나무 아이들이 없다면 앙꼬 없는 찐빵이겠지요. 중학생 증손도 있지만, 대부분 초등학교 7∼8명에 취학 전 어린이도 있었으니 자리가 번쩍번쩍 빛이 났습니다. 어린이는 희망 그 자체입니다. 툇마루에 죽 앉거나 선 채 찍은 가족 기념사진은 보기만 해도 입이 벌어질 정도로 흐뭇합니다. 이런 모임, 정말 흔치 않겠지요. 막말로 우리 집, 우리 아버지 자랑하는 것입니다. 자랑할 만하지 않나요.

최영록(생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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