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민의 정치카페 - 선거와 플라톤의 경구
李 “투표 안하면 최악의 지배” 발언 논란… 지지층 동원 - 반대진영 악마화 노림수
野, ‘거울 들이대기’로 권력의 자격 되묻기… 李 고전 인용이 자신에 부메랑 될 수도
이재명 대통령이 “정치 무관심의 대가는 ‘최악의 저질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고 했다. 선거를 목전에 둔 대통령의 메시지는 겉으로는 투표 독려지만, 실제 정치 문법으로는 지지층 동원, 야당 악마화, 권력 정당화가 섞여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플라톤 인용은 오히려 ‘대통령다움’을 돌아보게 하는 ‘미러링 역공’을 부르고 있다.
◇권력자의 언어
이 대통령의 글은 혐오와 독설로 가득 차 있다. “투표하지 않으면 사익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며 나와 가족의 삶을 망치는 자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했고, “이 말이 불편한 정치집단이 있다면 그들이 바로 주권자가 투표로 극복해야 할 구태 기득권자들”이라고도 했다.
대통령은 고전을 비빌 언덕 삼아, 선악 이분법으로 상대 진영에 도덕적 낙인을 씌우는 중이다. 의도는 이렇다. ①사전투표율 상승을 여권에 유리한 흐름으로 굳히려는 동원 메시지이고 ②‘윤석열 탄핵과 내란의 기억’을 선거판에 환기시키려는 것이며 ③이를 통해 지방선거를 ‘정권 대 반정권의 도덕전쟁’으로 프레이밍하려는 시도이다.
하지만 플라톤 인용구는 대통령의 선거 메시지로는 설득력이 약하다. ‘통합’의 언어가 아니라 ‘분열’의 언어라는 점에서 그렇고, 시민의 투표 독려가 아니라 권력자의 선거 개입 발언으로 들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반론의 공간을 닫는 극단적 표현이라는 점 역시 그렇다. 민주주의적 화법은 상대를 설득 대상으로 남겨두는 것인데, 대통령의 메시지는 상대를 궤멸해야 할 대상으로 지정하는 듯하다.
사전투표 첫날 벌어졌던 대통령의 ‘기표소 사건’과 연결하면 더 선명해진다. 선관위 직원을 개인비서 부리듯 한 ‘기표소 사건’에서 드러난 것은 ‘절차 앞의 예외의식’이었고, 상대 진영을 악마화한 플라톤 인용 메시지에서 드러난 것은 ‘도덕 앞의 독점의식’이었다.
대통령이 투표를 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투표하지 않거나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세력을 ‘저질’과 ‘구태’의 편에 세우는 순간 국민주권은 통합이 아니라 분열의 무기가 된다. 플라톤을 인용한 것은 고전의 권위를 빌린 투표 독려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선거 막판 지지층을 동원하는 권력자의 언어였다.
◇플라톤의 경구
이 대통령이 인용한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실제 내용은 이렇다. ‘스스로 통치하려 하지 않는 자가 치르게 되는 가장 큰 벌은 자신보다 못한 자에게 지배받는 것이다.’(벤저민 조잇 역, ‘The Republic’ 347c)
2400여 년 전 플라톤의 문제의식은 아테네 정치의 파국과 떼어놓을 수 없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에 참패한 후 아테네 민주정은 붕괴됐고, 과두정이 지배하면서 정치판은 선동가들이 장악했다. 이들은 대중의 공포와 이기심을 자극해 권력을 잡는 ‘정치 기술자’들이었다. 플라톤이 보기에 이들은 오직 권력과 사익에만 눈이 먼 ‘저질의 사람들’, 플라톤의 용어로는 ‘worse men’이다.
플라톤은 ‘최악의 저질’ 같은 극단적인 용어를 동원하지는 않았다. 대통령이 밝힌 “정치 무관심의 대가는 최악의 저질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은 원문 직역이 아니라, 현대에 유통되는 의역에 가깝다. 다만, 간접민주주의 시대에 국민이 통치에 간여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 투표를 통한 대리인 선출이라는 점에서, 플라톤의 ‘스스로 통치하려 하지 않는 자’는 오늘날 ‘투표하지 않는 자’의 의미를 갖는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점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플라톤의 ‘국가’를 관통하는 철학은 통치술이 통치자의 사익이 아니라 피치자의 이익을 위한 기술이라는 점이다. 플라톤이 생각한 이상적인 통치자는 권력을 잡고 싶어 안달 난 사람이 아니라, 권력을 ‘귀찮고 무거운 짐’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그 연장에서 플라톤은 ‘훌륭한 사람은 권력을 탐해서가 아니라, 더 나쁜 자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통치의 책임을 떠맡는다’고 말했다. 플라톤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권력을 ‘탐’하는 자가 아니라 ‘짐’으로 여기는 자만이 통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대통령은 권력을 탐할까, 짐으로 여길까.
◇고전 인용의 역설
플라톤의 권위를 빌린 대통령의 메시지는 선거전 막판에 강렬한 동원 효과를 낼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권력자의 메시지로는 위험하다. 대통령 자신을 겨냥하게 되는 ‘고전 인용의 역설’ 때문이다.
첫 번째 역설은 고전의 원래 맥락이 가진 칼날에서 나온다. 플라톤이 말한 ‘자신보다 못한 자(worse men)’는 ‘대중을 현혹해 사익을 취하는 선동가’였다. 플라톤이 제시한 좋은 통치자는 권력을 쟁취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짐을 지는 사람이다. 고전의 권위를 빌려왔지만, 플라톤의 경구는 국민으로 하여금 대통령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기제가 되고 있다.
두 번째 역설은 지나치게 공격적인 언어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최악의 지배” “구태 기득권자” 등 표현은 상대 진영을 악마화하는 언어다. 문장이 거칠고 공격적일수록 메시지의 수용 폭은 극도로 좁아진다. 지지층에는 고지를 점령하라는 돌격 명령으로 들리겠지만, 반대 진영에는 대통령이 앞장서 진영 싸움을 조장하고 확전을 지휘한다는 거부감을 준다.
세 번째 역설은 대통령이 인용한 키워드와 본인의 아킬레스건이 겹친다는 데에서 나타난다. 실제로 메시지의 키워드들은 적지 않은 국민이 정권을 향해 갖고 있는 의구심과 겹친다. 대통령이 공격 소재로 거론한 ‘사익’은 ‘재판 중단’과, ‘권력남용’은 ‘공소취소 논란’과, ‘최악의 지배’는 ‘권력 사유화’와 연결된다. 이 경우 대통령의 투표 독려는 자기 문제를 덮기 위한 선거판 동원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우리가 투표를 포기하면 재판취소라는 사익을 위해 대통령 권력을 남용하는 이재명에게 범죄를 모두 지울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한 것은 이런 점에서 미러링 역공이다. 대통령의 발언이 자신을 향한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권력의 자격
대통령의 메시지는 종종 ‘양날의 검’이 된다. 결집해야 할 지지층에는 투표장으로 갈 명분을 주겠지만, 중도층이나 반대 진영에는 역공의 빌미를 제공했다. 대통령은 플라톤을 빌려 국민에게 투표를 촉구하는 듯했지만, 플라톤은 대통령에게 권력의 자격을 물었다.
전임기자, 행정학 박사
■ 용어설명
플라톤의 ‘국가’는 기원전 380년경 철학과 정치학에 관해 기술한 플라톤의 책.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인 대화체로 작성됐으며, 근대 정치학과 정치사상은 모두 플라톤의 주석이라는 평이 있음.
‘미러링’은 상대의 주장·언어·밈을 따라 하거나 재현하는 것을 가리킴. ‘미러링 역공’은 상대의 공격이나 비난·혐오 발언의 논리를 그대로 상대에 대한 반박이나 공격에 이용하는 행위.
■ 세줄요약
권력자의 언어: 이재명 대통령이 “정치 무관심의 대가는 ‘최악의 저질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고 말해. 이는 지지층 동원-반대 진영 악마화-권력 정당화의 노림수. 하지만 대통령의 선거 메시지로는 설득력이 약해.
플라톤의 경구: 대통령이 인용한 플라톤의 ‘국가’를 관통하는 철학은 통치술이 통치자의 사익이 아니라 피치자의 이익을 위한 기술이라는 것. 플라톤은 통치자는 권력을 탐하지 않고 ‘짐’으로 여겨야 한다는 점을 설파.
고전 인용의 역설: 대통령의 플라톤 인용은 투표 독려 명분으로 편 가르기 하는 것. 야당은 이에 대해 ‘거울 들이대기’로 권력의 자격을 되묻는 중. 대통령의 메시지가 자신을 겨냥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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