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사상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자정의 벼랑 끝에 섰다. 허철훈 선관위 사무총장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개표가 한창이던 3일 밤, 경기 과천 중앙선관위 청사를 항의 방문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등 당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4일 0시(12시)를 기해 긴급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개표 시스템의 숫자가 민심의 향배를 가르기도 전에, 선거 행정의 치명적인 구멍이 정치권의 메가톤급 뇌우로 돌변한 형국이다. 이날 사태는 지방선거의 최대 승부처이자 개표 초반 민주당의 우세 속에서 여야가 첨예하게 대치 중인 서울 복판에서 터져 나왔다. 선관위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와 강남구, 광진구 등 3개 자치구의 7개 동, 총 14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용지를 받지 못해 줄을 늘어서고 발을 동동 구르는 파행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를 설계하고 보장해야 할 국가 기관이 정작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인 ‘종이’ 조달조차 제때 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당장 야당인 국민의힘은 판세의 불리함과 맞물려 선관위를 향해 파상 공세를 퍼붓고 있다. 국힘 지도부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행정 착오를 넘어선 ‘선거 부실 관리’로 규정, 해당 지역의 개표 즉각 중단과 함께 재선거 실시라는 배수의 진을 치고 선관위를 압박했다. 개표 중반을 넘어서며 가뜩이나 ‘내란 심판·정권 안정론’을 앞세운 여당에 밀려 패색이 짙어지던 야권으로서는 선관위의 뼈아픈 실책을 고리로 선거 전체의 공정성 시비를 제기할 명분을 쥐게 된 셈이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자 허 사무총장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현장 브리핑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허 총장은 “선관위는 이번 사안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며 “개표가 종료되는 즉시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원인과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장 투표의 효력과 개표 결과의 정당성을 두고 여야의 법적·정치적 공방이 불붙은 상황에서, 선관위의 ‘사후약방문’식 대책이 격앙된 민심과 정치권을 가라앉힐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개표소의 긴장감은 이제 선관위 심야 회의실의 문틈으로 옮겨붙고 있다.
이승주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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