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란은 왜 호르무즈를 놓지 않으려 하는가?
2026년 현재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경쟁은 핵을 둘러싼 경쟁이 아닐지도 모른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시설을 공격했고, 이란 역시 상당한 군사적·정치적 손실을 입었다. 겉으로 보면 핵을 둘러싼 힘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작 이란이 끝까지 지키려 하는 것은 핵시설이 아니라 호르무즈 해협이다. 이는 단순한 해상 교통로가 아니다. 세계 원유와 LNG 공급의 상당 부분이 통과하는 공간이며, 국제 에너지 시장과 공급망이 연결되는 전략적 관문이다. 이란은 오래전부터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왔다.
실제로 최근 반복된 상선 공격과 드론 위협, AIS(선박자동식별장치) 차단, 선택적 통항 제한 경고는 단순한 군사 행동이라기보다 하나의 전략적 메시지에 가깝다. 이란은 세계에 “우리가 바다의 흐름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란이 해협을 완전히 폐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완전 봉쇄는 곧 국제사회의 대규모 군사 개입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이란은 언제든 봉쇄할 수 있다는 인식을 유지함으로써 시장과 해운업계, 그리고 주요 국가들에게 지속적인 불확실성을 부여한다. 그 결과 실제로 선박이 침몰하지 않아도 보험료는 상승하고, 선사들은 항로를 재검토하며, 에너지 시장은 긴장한다. 중요한 것은 물리적 파괴가 아니라 흐름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능력이다.
오늘날 국제정치에서 억제력은 반드시 핵탄두의 숫자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때로는 세계 경제가 의존하는 해상 통로를 흔들 수 있는 능력이 핵무기 이상의 전략적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쟁은 바로 그 새로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I. 이란은 무엇을 배웠는가
이번 충돌은 이란에게 냉혹한 현실을 다시 확인시켜 줬다. 수십 년 동안 막대한 자금과 기술을 투입해 구축한 핵 프로그램조차 예상보다 취약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하 핵시설과 방공망은 정밀 타격과 정보자산의 결합 앞에서 완전한 안전을 보장하지 못했다. 군사 지휘부 역시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이란은 전통적 군사력만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다시 확인했다.
더 중요한 것은 전면전의 한계였다. 이란은 국가 기반시설과 에너지 수출체계가 입을 피해를 감당하기 어렵고, 미국 역시 또 하나의 장기 중동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결국 양측 모두 상대를 제거할 수는 있지만, 그 비용 또한 지나치게 크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이 과정에서 이란은 하나의 전략적 교훈을 얻었다. 미국과 직접 군사력으로 경쟁하는 것은 어렵지만, 세계가 의존하는 흐름을 흔드는 것은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핵시설은 공격받을 수 있고, 미사일 기지와 지휘부도 파괴될 수 있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지정학적 위치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서 이란의 전략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군사적 승리를 추구하기보다 상대가 감당해야 할 비용을 높이는 전략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선박 한 척이 공격받거나 통항이 지연될 때마다 국제 유가와 보험료, 운송비는 즉각 반응한다. 결국 이란은 영토를 방어하는 국가에서 흐름을 흔드는 국가로 전략의 중심을 이동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호르무즈 해협이 자리하고 있다.
II. 이란이 발견한 호르무즈의 전략적 지렛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이 국가 안보와 국제경제의 흐름에 동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전략 자산이기 때문이다.
지도에서 보면 호르무즈 해협은 좁은 바다에 불과하다. 그러나 중동 산유국들이 생산한 원유와 천연가스의 상당 부분이 이 해협을 거쳐 아시아와 유럽으로 향한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이라크, 카타르의 에너지 수출은 이 통로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카타르에게는 사실상 생명선과 같은 공간이다.
따라서 호르무즈에서 발생하는 위기는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다. 에너지 가격과 물류비, 공급망 안정성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문제다. 실제로 국제시장은 공급량 자체보다 공급 차질 가능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해협이 완전히 봉쇄되지 않더라도 봉쇄 가능성만 높아져도 유가와 해상운임, 보험료는 즉각 움직인다.
이란은 바로 이 구조를 이해하고 있다. 과거에는 군사력이 국제질서를 좌우했다면, 오늘날에는 흐름을 흔들 수 있는 국가 역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특히 에너지와 공급망이 세계경제의 핵심 동맥이 된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이란에게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해양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국제사회가 이란을 무시할 수 없게 만드는 전략적 지렛대다. 핵시설은 공격받을 수 있고 제재는 강화될 수 있지만, 세계 경제가 호르무즈를 완전히 우회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이란이 발견한 것은 군사적 우위가 아니라 지정학적 우위였다. 미국은 세계 최강의 해군을 보유하고 있지만, 호르무즈라는 공간 자체를 다른 곳으로 옮길 수는 없다. 그래서 오늘날 이란의 가장 중요한 억제력은 핵시설 속 우라늄이 아니라, 세계 경제의 흐름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인지도 모른다.
III. 상선 한 척이 미사일보다 강한 이유
전통적으로 국가의 힘은 전투기와 미사일, 항공모함의 숫자로 평가돼 왔다. 그러나 최근 호르무즈 해협에서 나타난 현상은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오늘날 세계 경제를 흔드는 것은 반드시 군함이나 탄도미사일이 아니다. 때로는 민간 상선 한 척에 대한 공격이 수십 발의 미사일보다 더 큰 파급효과를 만들어낸다. 현대 경제가 군사력보다 ‘흐름’에 더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원유와 LNG, 곡물과 반도체는 대부분 해상을 통해 이동한다. 생산은 특정 국가에서 이뤄지지만 경제적 가치는 이동 과정에서 실현된다. 따라서 흐름이 불안정해지는 순간 시장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최근 발생한 MSC 사리스카 공격 사건 역시 이를 보여준다. 선박 자체의 피해보다 더 큰 충격은 해운업계와 보험시장에 전달됐다. 선사들은 항로 위험을 재평가했고, 보험료는 상승했으며, 화주들은 공급 차질 가능성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현대 해상교통에서 중요한 것은 침몰한 선박 수가 아니다. 선박 운항 결정자들이 얼마나 위험을 인식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AIS(선박자동식별장치) 차단과 위치정보 제한 역시 같은 맥락이다. 위협이 증가할수록 선박들은 위치 공개를 최소화하며, 이른바 ‘암흑 항해(dark navigation)’ 현상이 늘어난다. 이는 단순히 추적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 전체의 불확실성을 확대하는 신호다.
바로 여기서 이란의 전략이 드러난다. 이란은 모든 선박을 공격하거나 해협을 완전히 봉쇄할 필요가 없다. 언제든 특정 선박이 공격받을 수 있다는 인식만 유지해도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이란의 ‘현존 위협(TIB·Threat in Being)’ 전략의 핵심이다. 실제 공격보다 위협의 지속적 존재가 더 큰 전략적 효과를 만드는 것이다.
결국 오늘날의 해상 경쟁은 얼마나 많은 선박을 침몰시키느냐가 아니라, 세계 경제의 흐름에 얼마나 큰 불확실성을 부여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상선 한 척은 때때로 미사일보다 강력한 전략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시장은 반응하고 비용은 증가하며, 국제사회는 다시 호르무즈를 주목하게 된다.
IV. 트럼프의 AFIB vs 이란의 TIB
호르무즈 해협에서 전개되는 경쟁은 단순한 군사적 대결이 아니다. 그것은 바다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힘과, 그 안정성을 흔들려는 두 개의 힘이 충돌하고 있다. 미국은 압도적인 해·공군 전력과 정보·감시체계를 활용해 주요 해상교통로의 안전을 보장하려 한다. 항모와 구축함, 정찰 자산의 전개는 단순한 전력 과시가 아니라 국제 해운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다.
필자는 이러한 구조를 ‘능동적 현존함대(AFIB·Active Fleet in Being)’, 즉 ‘현장에서 실제 집행되는 힘’이라고 설명한다. 핵심은 전력의 규모가 아니라 필요할 때 즉시 행동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반면 이란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대응한다. 미국과 정면으로 경쟁하기 어려운 이란은 해상 질서를 직접 장악하기보다, 그 질서를 유지하는 비용을 높이는 데 집중한다. 이것이 바로 ‘현존위협(TIB·Threat in Being)’이다. TIB의 목적은 대규모 충돌이 아니다. 상선 공격 가능성, 기뢰 위협, 드론 활동, 소형 잠수함 운용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해운업계와 시장이 지속적으로 위험을 의식하도록 만드는 데에 있다.
결국 미국이 추구하는 것은 예측 가능한 항행 환경이고, 이란이 노리는 것은 예측하기 어려운 해상 환경이다. 이러한 이유로 어느 한쪽도 완전한 우위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 미국은 강력한 전력을 보유하고도 불안 심리를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고, 이란 역시 미국이 구축한 해상 질서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릴 수는 없다.
그 결과 호르무즈 해협에는 특유의 긴장 상태가 형성된다. 미국의 AFIB가 기본적인 안정성을 제공하면, 이란의 TIB는 그 위에 지속적인 위험 비용을 덧씌운다. 오늘날 이 공간의 경쟁은 누가 더 강한 무기를 보유했는가보다, 누가 더 오래 해상 환경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관리할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이는 현대 해양 전략이 군사력 자체보다 흐름과 비용의 통제를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V. 이스라엘은 왜 레바논을 공격하는가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경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다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이란이 구축해 온 억제체계는 단순히 해군력이나 미사일 전력만으로 이뤄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이란은 직접 충돌보다 주변 세력을 활용하는 비대칭 전략을 발전시켜 왔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세력, 이라크와 시리아의 친이란 무장조직들은 모두 이러한 전략의 일부였다. 이들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란의 전략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특히 헤즈볼라는 이란이 보유한 가장 중요한 전략 자산 가운데 하나로 평가돼 왔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헤즈볼라는 단순한 국경 지역의 무장단체가 아니다. 수많은 로켓과 미사일, 조직화된 전투 경험, 그리고 이란과의 긴밀한 연계를 갖춘 실질적 위협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와 헤즈볼라 시설을 지속적으로 공격하는 이유 역시 단순한 보복 차원을 넘어선다. 그 목적은 이란의 외곽 억제망을 약화시키는 데 있다.
이란은 자국 영토 안에서만 미국과 이스라엘을 상대하지 않는다. 여러 지역에 분산된 영향력과 대리세력을 통해 상대의 전략적 계산을 복잡하게 만들어 왔다. 반면 이스라엘은 이러한 연결고리를 하나씩 제거함으로써 이란의 행동 공간을 축소하려 하고 있다.
최근의 군사 행동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헤즈볼라의 군사적 능력이 약화될수록 이란은 더욱 직접적인 수단에 의존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커지는 것이 바로 호르무즈 해협이다.
다시 말해, 육상에서의 억제력이 약화될수록 해상에서의 억제력은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이란이 최근 해상 위협과 통항 통제 가능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핵시설이 압박받고, 대리세력의 활동 공간이 줄어들수록 이란은 자신이 여전히 국제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새로운 수단을 필요로 한다.
또 다른 측면도 존재한다. 미국과 이란 사이의 협상이 진행될 때마다 중동 지역에서는 예상치 못한 군사적 긴장이 반복적으로 발생해 왔다. 이는 협상 자체를 무산시키기 위한 의도적 행동이라기보다, 협상 과정에서 각자가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에 가깝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고 있으며, 이란은 자신이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행위자임을 보여주려 한다. 결국 레바논과 호르무즈는 서로 다른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전략적 연결선 위에 존재한다. 레바논에서 벌어지는 충돌은 이란의 육상 억제력을 약화시키려는 경쟁이며, 호르무즈에서 벌어지는 긴장은 그 약화를 보완하려는 해상 억제력의 경쟁이다.
따라서 오늘날 중동의 전략적 중심은 단순히 어느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지는가에 있지 않다. 오히려 누가 더 효과적인 억제 수단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있다. 그리고 그 경쟁의 최종 무대가 바로 호르무즈 해협으로 수렴하고 있다.
VI. 호르무즈는 새로운 억제력인가
냉전 시대 이후 국제정치에서 가장 강력한 억제 수단은 핵무기로 인식돼 왔다. 핵무기는 상대가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가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전쟁을 억제하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억제력의 개념은 점차 변화하고 있다. 오늘날 국가들은 반드시 핵무기를 보유해야만 상대를 압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와 공급망, 금융과 정보망, 해상교통로와 같은 전략적 흐름을 통제하거나 위협할 수 있는 능력 역시 강력한 억제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러한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란은 미국과 같은 군사력을 보유하지 못했다. 핵무기 역시 공식적으로 보유하고 있지 않다. 핵시설은 반복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으며, 경제 제재 역시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국제사회는 여전히 이란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이란이 세계 경제의 중요한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봉쇄하지 않더라도, 봉쇄 가능성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국제 에너지 시장은 반응한다. 상선 한 척에 대한 공격이나 통항 제한 경고만으로도 보험료와 운송비, 원유 가격이 움직인다. 시장은 실제 피해보다 잠재적 위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호르무즈는 전통적인 의미의 핵 억제력과 일부 유사한 특징을 갖는다. 핵무기가 상대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군사적 비용을 상기시킨다면, 호르무즈는 상대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적 비용을 상기시킨다. 핵무기가 물리적 파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호르무즈는 공급망과 에너지 시장의 불안정성을 보여준다.
물론 양자는 동일하지 않다. 핵무기는 절대적 파괴력을 기반으로 한다. 반면 호르무즈의 힘은 흐름과 연결성에 기반을 둔다. 핵무기가 순간적인 충격을 상징한다면, 호르무즈는 지속적인 비용과 불확실성을 상징한다.
그러나 전략적 효과라는 측면에서 보면 두 수단은 공통점을 가진다. 상대가 행동하기 전에 계산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호르무즈 문제를 단순한 군사작전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해협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에너지 충격과 글로벌 공급망 혼란, 국제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날 이란이 지키려는 것은 단순한 해협이 아니다. 그것은 국제사회가 이란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도록 만드는 전략적 영향력이며, 군사력의 열세를 보완할 수 있는 지정학적 자산이다.
이란은 핵시설이 공격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군사력만으로는 미국을 상대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 경제가 여전히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다. 바로 그 점에서 호르무즈는 오늘날 이란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전략 자산이며, 어쩌면 핵무기보다 더 현실적인 억제 수단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에필로그
많은 사람들은 중동의 긴장을 여전히 핵문제 중심으로 이해한다. 물론 핵은 중요하다. 그러나 최근의 흐름은 또 다른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란은 핵시설이 공격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고, 군사력만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서기 어렵다는 점도 확인했다. 그럼에도 이란이 여전히 국제사회의 중요한 변수로 남아 있는 이유는 핵탄두만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호르무즈 해협이 있다. 오늘날 세계 경제는 에너지와 물류, 공급망이라는 거대한 흐름 위에서 움직이며, 호르무즈 해협은 그 핵심 관문 가운데 하나다. 이란은 오랫동안 이러한 전략적 가치를 활용해 왔으며, 이번 위기를 통해 그 중요성을 다시 입증했다.
미국의 AFIB가 해상 질서를 유지하려 한다면, 이란의 TIB는 그 질서에 지속적인 비용을 부과하려 한다. 완전한 봉쇄나 전면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언제든 흐름을 흔들 수 있다는 인식만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 결과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국제해협을 넘어 군사력과 경제, 공급망과 시장 심리가 동시에 경쟁하는 전략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21세기의 억제력은 더 이상 핵무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세계가 의존하는 흐름에 불확실성을 부여할 수 있는 능력 역시 강력한 전략적 영향력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란은 핵보다도 호르무즈를 쉽게 포기할 수 없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이 앞으로도 호르무즈 해협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바다 가운데 하나로 남게 만들 것이다.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국방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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