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기의 K스트리트 - 美버지니아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사진전
당시 쓰인 태극기·성조기 등
참전 용사 영상·물품도 전시
사진작가 ‘라미’ 2013년부터
22개국 오가며 2700명 기록
“평균 나이 90세… 시간 없어
만나서 숭고한 삶 기억할 것”
비엔나(버지니아주)=글·사진 민병기 특파원
미국 버지니아주 비엔나 시의 한 건물 2층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미동맹의 상징’인 한국전쟁(6·25전쟁) 참전 용사 윌리엄 웨버 전 미국 육군 대령을 가운데로 21명 용사들의 전신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전쟁 당시 오른팔과 오른 다리를 잃고도 후송을 거부하고 전투를 지휘했던 웨버 대령은 전역 후에도 미국 워싱턴DC에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 공원·기념비 조성을 이끈 인물이다. 웨버 대령의 왼쪽에는 영국 리버풀 국왕 연대 소속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던 트레버 존 병장(참전 당시 계급)이, 오른쪽에는 가장 가혹했던 전투로 꼽히는 장진호 전투의 생존자인 존 콜 하사(참전 당시 계급)가 서 있었고, 국적도 성별도 다르지만 한국전에 삶을 바쳤던 영웅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이 21명의 흑백 전신 사진은 사진작가 라미(현효제) ‘프로젝트 솔져’ 대표가 전 세계를 돌며 참전 용사 각각을 사진으로 남긴 것을 대형 벽에 하나로 모은 기록이다. 지난 2013년부터 시작된 프로젝트 솔져 작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동시에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의 희생과 삶의 집대성이기도 하다.
지난 5월 20일, 같은 달 1일부터 버지니아주 비엔나 시에서 열리고 있는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사진전을 찾았다. 그리 넓지 않은 전시 공간이었지만 참전 용사들의 사진과 인터뷰 영상, 그들이 기증한 스크랩북과 당시의 사진, 문서는 영웅들의 헌신, 그리고 전쟁의 참혹함과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전시실 한편에서 곧 있을 뉴저지주 출장을 준비하고 있던 라미 대표는 사진 한 장 한 장에 담긴 참전 용사들의 삶을 설명했다. “많은 용사들이 한국전쟁 당시 상황에 대해 말하는 것을 힘들어해요. 아예 저희가 찾아가기 전까지는 가족들에게도 밝히지 않았던 분들도 있습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앓고 있는 분들도 많았고, 수많은 인명 피해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결과가 압도적 승리도, 충격적인 패배도 아니어서 한국전쟁이 ‘잊어진 전쟁’(forgotten war)으로 불리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게 라미 대표의 설명이다.
라미 대표는 2013년부터 전 세계 22개국을 오가며 2700여 명의 한국전쟁 참전 용사를 기록해 왔다. 그리고 지난해 12월부터는 아예 미국 버지니아주로 활동 거점을 옮겼다. 이미 참전 용사들의 평균 연령이 90세를 넘긴 상황에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박함이 가장 컸다. 아울러 미국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참전 용사들과 ‘제복’에 대한 예우와 감사를 체감한 것도 미국에 새로 거점을 차린 이유다.
전시실의 또 다른 벽에는 큰 태극기가 걸려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사용된 미군의 야전 군수품과 함께 보관돼 있던 태극기를 라미 대표가 구한 것이다. 당시 한국군은 열악한 상황에서 태극기를 프린트해서 썼지만 이 태극기는 하얀 바탕에 태극 문양과 건곤감리 문양을 모두 천을 잘라 박음질한 방식으로 제작됐다.
라미 대표는 이 태극기에 참전 용사들의 사인을 직접 받아 전시실에 걸어뒀다. 그리고 그 태극기 아래에는 POW·MIA 깃발(YOU ARE NOT FORGOTTEN)도 걸려 있다. 전쟁 포로(Prisoner of War)를 뜻하는 POW와 전투 중 실종자(Missing in Action)를 의미하는 MIA와 함께 ‘YOU ARE NOT FORGOTTEN(당신들은 잊어지지 않았다)’ 문구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2019년 연방의회의 법안 통과로 미국 주요 연방 정부 건물들은 성조기와 함께 이 깃발을 게양하고 있다. 또 다른 벽면에는 한국전쟁 당시 사용됐던 성조기도 전시돼 있었는데, 아직 알래스카와 하와이가 미국에 편입(1959년)되기 전에 사용돼 왼쪽 하단의 별의 수가 48개다. 성조기의 하얀색 줄마다 참전 용사들이 직접 이름과 함께 참전 연도 혹은 자신이 복무했던 부대명을 적었다. 깃발 아래에는 전쟁 당시 쓰였던 수동 타자기, 군용 조명등과 전화기 등이 전시돼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쓰였던 블러드 칫(Blood Chit)도 눈길을 끌었다. 공군 전투기 조종사나 정보 요원들이 적진에 추락하거나 고립되었을 때, 현지 민간인들에게 보여주고 도움을 받기 위해 전투기용 재킷 안감에 꿰매거나 주머니에 소지하고 다녔던 서바이벌 키트의 핵심 품목으로, 한국어를 포함한 10개 언어로 “저를 도와주세요”라는 문구가 인쇄돼 있었다.
전시실 또 다른 벽에는 “Helmets protect soldiers. Soldiers defend freedom”(철모는 군인을 보호하고, 군인은 자유를 수호한다)이라는 문구와 함께 참전 용사들이 실제 착용했거나 그들이 복무했던 부대의 고증에 맞춰 철모 위에 이름과 군번 등을 적은 것도 전시해 뒀다. 사진 속에서 노병들은 그 철모를 두 손으로 소중하게 감싸 안고 있었다.
“정말 당시 상황에 대해 어떤 말도 못 하던 용사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 철모를 보여준 순간 흰색 펜으로 자신의 이름과 소속 부대, 참전 전장을 쓰더니 눈물을 끝없이 흘렸습니다.” 그렇게 이 전시 공간은 단지 노병의 사진과 한국전쟁 당시 기록이 아니라 자유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렸던 용사들의 처절함과 숭고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라미 대표는 기자와 만난 이틀 뒤에는 뉴저지로 떠났다. 용사의 옆집에 사는 이웃의 제보로 1951년부터 철원에서 육군 45사단 보병 분대장으로 복무했던 96세 노병 로버츠 밀러 용사를 만나기 위해서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원한다면 내가 왜 신경을 써야 하나’며 한국에 도착했지만 인천에 도착한 뒤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밝혔다. 인터뷰 말미, 그는 라미 대표에게 “내가 살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을 때”라고 말했다. 한국에 세 번 초청받았지만 “아픈 기억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정중히 거절했다고도 밝혔다. 라미 대표는 7월에는 플로리다 보카러톤으로 떠날 계획이다. 한국전쟁 미 육군 24사단 참전 용사의 딸이 근처 커피숍에 붙어있던 포스터를 보고 전시장을 찾으며 인연이 이어졌다. 그는 “버지니아에서 왕복 33시간 거리,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비용을 마련해 7월에 꼭 찾아뵐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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