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선거는 과거를 심판하는 절차이면서 동시에 미래를 예고하는 정치적 신호다. 6·3 선거 결과를 놓고도 “누가 이겼는가”가 아니라 “민심이 무엇을 경고했는가”를 보는 게 중요하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의 막판 역전극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 현 시장인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는 당 지도부와 거리를 두고, ‘이재명 픽’으로도 불린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상대로 이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6·3 지방선거는 단순한 승패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민주당은 부산을 포함한 12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승리했고, 국민의힘은 서울과 영남권 3곳을 지키는 데 그쳤다. 민주당이 전반적으로 승리했다고 볼 수 있지만, 곧 장기 지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내부 계파 갈등이 심해지고 특정 지역과 세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가 고착된다면 오히려 위기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지방권력을 대거 넘겨준 국민의힘 역시 새로운 지도자와 새로운 메시지, 새로운 지지층을 형성한다면 재건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보수 내부의 균열이다. 영남 중심의 전통 보수와 수도권 중심의 확장 보수 사이의 긴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과거 보수가 안보와 이념 중심의 정치에 의존했다면, 오늘날 수도권과 청년층은 공정·기회·미래 경쟁력·생활 문제 해결 능력을 더 중요시한다. 기존 보수 세력이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중도·청년층 이탈은 더 가속화할 것이다.
정당은 선거 조직이 아니다. 사회 변화에 맞춰 새로운 유권자 연합을 형성하고 시대정신을 담아낼 때 생존할 수 있다. 미국 정치학자 제임스 선드퀴스트는 기존 정당이 변화한 사회 균열과 새로운 이슈에 적응하지 못할 때 정당 재편성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치가 직면한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여의도 정치가 이러한 사회적 불안과 변화 요구를 해결하기보다 진영 대결과 감정 동원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일랜드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이 시민과 연결되지 못할수록 민주주의 공간이 비어가고 극단주의가 강화된다고 경고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팬덤 정치와 정치 혐오의 확산은 바로 그 현상과 닮아 있다. 유권자들의 투표 행태 역시 과거에는 정당 충성도가 강했다면 지금은 감정지형이 선거를 움직인다. 분노는 강성 지지층을 결집하고, 불안은 중도층 이동을 촉진하며, 피로감은 기존 정당 이탈을 확대시킨다. 이번 선거 역시 변화에 대한 기대와 기존 정치에 대한 피로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지방선거 뒤 핵심 과제는 정치 정상화다. 왜 국민이 정치에 불신과 피로를 느끼는지 직시해야 한다. 정당은 팬덤 조직이 아니라 국가 전략을 설계하는 공적 플랫폼이어야 한다. 특히, AI 시대에는 폐쇄적 계파 정당이 아니라 시민 참여와 데이터 기반 정책 역량을 갖춘 플랫폼 정당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한국 정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이번 선거는 단순한 지방 권력 재편이 아니라 기존 정치 질서에 대한 경고장에 가깝다. 여야가 여전히 진영 대결과 감정 정치에 머문다면 정치 불신과 사회 갈등은 커질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계기로 정당 혁신과 정치 정상화의 길로 나아간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새로운 출발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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