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구 기자의 캐릭터 리뷰

-‘만달로리안과 그로구’의 만도와 그로구

만달로리안과 어깨 위에 앉아 있는 그로구.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만달로리안과 어깨 위에 앉아 있는 그로구.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먼저 레전드 SF 시리즈 ‘스타워즈’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자. 조지 루카스가 각본을 쓰고 감독한 ‘스타워즈’는 1977년 최초 개봉됐다. 벌써 49년 전의 일이다. 은하 제국이 우주를 지배하는 머나먼 미래, 시골 소년 루크 스카이워커가 제다이의 힘(포스)을 깨닫고 연합군과 함께 은하 제국에 맞서는 모험 활극을 그리고 있다. 아직 컴퓨터 그래픽(CG)이 조악한 때였지만 우주라는 광대한 공간과 시간, 그 안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서사와 다채로운 캐릭터의 향연이 뛰어났다. 많은 팬덤을 만들어냈다. 루크 스카이워커, 오비완 케노비, 레아 공주, 한솔로, 제다이, 포스, 그리고 악역인 다스 베이더까지 등장인물과 장비(무기)가 관객의 뇌리에 단단히 박히며 ‘스타워즈’만의 세계관을 창조했다. 1977년부터 1983년까지는 이른바 오리지널 3부작이었고, 식지 않는 열기 속에 1999∼2005년까지는 프리퀄(전편) 3부작, 2015∼2019년까지 시퀄(후속편) 3부작이 계속해서 만들어졌다. 애니메이션과 드라마, 소설로까지 재창조됐으니 미국 할리우드 역사상 이만한 히트작을 다시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초대형 서사의 뒤를 이어받은 게 만달로리안이다. 만달로리안은 영화가 아니라 디즈니+의 오리지널 드라마로 처음 시작됐다. 제다이 등 기존의 캐릭터들은 퇴장했고, 은하계 최고의 전사이자 현상금 사냥꾼 만달로리안 딘 자린(페드로 파스칼)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만달로리안과 그로구’는 이것의 영화 버전이다.

만달로리안(만도)과 그의 귀여운 녹색 꼬마 파트너 그로구는 신 공화국군의 리더 워드(시고니 위버) 대령으로부터 비밀 업무를 부여받고 다시 우주로 향한다. 쌍둥이 헛에게 조카인 로타 헛을 찾아다 주고 제국 잔당의 수괴인 코인의 정보를 제공받기 위함이다. 그러나 로타는 피신한 행성에서 격투기 선수로 인기를 얻고 있었고, 돌아가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쌍둥이 헛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음흉한 계략을 꾸미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만도는 로타의 도움으로 코인을 체포한 후 로타를 자유롭게 풀어준다. 하지만 자신들을 배신했다는 걸 안 쌍둥이 헛이 다른 현상금 사냥꾼을 고용해 만도를 붙잡아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뜨린다. 만도가 흉칙한 괴물과의 사투 끝에 독에 중독돼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이, 이번엔 파트너 그로구가 실력을 발휘한다. 말 한마디 못하고, 장난만 치던 아기 그로구는 아빠 같은 만도를 살리기 위해 온갖 애를 쓰다가 스스로 포스를 각성하고, 정신을 차린 만도와 힘을 모아 쌍둥이 헛을 물리친다.

사실 줄거리는 뭐 그리 대단할 게 없다. 1970년대 서부극(마카로니 웨스턴)이나 최근의 ‘존 윅’ 시리즈 등의 복수극 스릴러에서 ‘전문가’가 어떤 사건을 의뢰받고 해결하러 갔다가 ‘목표 대상’의 갸륵한 사정을 알고는 인간적인 연민을 보이고, 대신 피도 눈물도 없는 조직으로부터 무자비한 대가를 치르게 되지만 결국 정의는 승리한다는 전형적인 스토리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만도와 그로구엔 기존의 SF나, 복수 드라마, 혹은 반전 스릴러에서 볼 수 없던 게 몇 가지 있다. 바로 만도의 캐릭터다. 만도는 매우 시크(Chic)하다. 질질 끌거나 질척거리는 법이 있다. 모든 사건은 계약대로 정확하게 이행하고 대가를 챙긴다.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 강철 헬멧의 모습 그대로 항상 감정이 일관되고 냉정하다. 그래서 강인함이 더욱 두드러진다.

그런데 만도가 생명처럼 여기는 헬멧을 벗는 장면이 딱 한 번 나온다. 132분의 비교적 긴 러닝타임 동안 단 몇 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야기가 3분의 2쯤 흐른 지점, 만도가 쌍둥이 헛에게 붙잡혀 죽음의 위기에 몰렸을 때다. 헬멧이 강제로 벗겨지고, 그동안 목소리로만 인지하던 페드로 파스칼의 얼굴이 드러난다. 헬멧 안의 얼굴에도 큰 폭의 감정 변화를 찾아보긴 어렵다. 약간 찌푸린 듯한 미간, 그 아래 쏘아보는 듯한 눈빛, 옹골찬 의지가 서린 입매 정도… 만도는 탈출을 시작하면서 다시 헬멧으로 얼굴을 가리고 건조한 반격 액션에 나선다.

헬멧을 벗고 얼굴을 드러낸 만달로리안 역의 페드로 파스칼.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헬멧을 벗고 얼굴을 드러낸 만달로리안 역의 페드로 파스칼.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이 정도 분량이라면 왜 굳이 페드로 파스칼 같은 유명 배우가 이 배역을 맡았을까 하는…. 배우라면 모름지기 영화에서 자기 분량이 얼마나 많이 나오냐를 따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출연료가 더 싼 배우를 썼어도 된다. 이렇게 된 건 파스칼의 꾸준한 필모그래피에서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파스칼은 이름에서 비치듯 칠레계 미국 배우다. 칠레 산티아고의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정치적 이슈로 미국에 망명하면서 이방인의 삶을 살게 됐다. 1996년 단편영화로 연기 데뷔한 이후 17년간 수많은 드라마의 단역과 조연을 전전했다. 무명생활이 제법 길었다. 그러다가 비로소 얼굴을 알린 작품이 2013년 ‘왕좌의 게임’ 시즌4다. 이를 바탕으로 2015년엔 ‘나르코스’에서 주연을 맡았고, 뒤이어 ‘킹스맨: 골든 서클’(2017) ‘원더우먼 1984’(2020), ‘판타스틱4: 새로운 출발’(2025) 등으로 할리우드에서 가장 많이 찾는 배우로 거듭났다. 오랜 무명배우의 시간이 지금의 단단한 그를 만든 셈이다.

만도와 세트로 움직이는 그로구의 존재감도 대단하고 독특하다. 만도가 사경을 헤맬 때 조막만한 손으로 흙더미를 쌓아서 그를 숨기고, 간호하는 모습이 참으로 대견하면서도 안쓰럽다. 만도를 돌보다가 지쳐서 그의 품에서 잠드는 모습은 마치 아버지의 품에 안긴 아들 같다.

퍼펫으로 표현한 그로구와 그의 작은 친구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퍼펫으로 표현한 그로구와 그의 작은 친구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재미있는 것은 액션 동작이 많은 그로구를 굳이 퍼펫(인형)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젠 실물 뺨치는 CG가 얼마든지 가능한데 부자연스럽게 뒤뚱뒤뚱 걷는 퍼펫을 사용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퍼펫 그로구를 보고 있으면 은근한 친근감이 느껴진다. 감쪽같은 CG에 대한 피로감이랄까. 오히려 허술해 보이는 퍼펫의 움직임이 정겹고 유쾌하다. 그로구를 도와주는 키 작은 우주선 수리업자들도 퍼펫이다. 이들이 함께 등장할 때는 잠시 긴장감이 사라지고, 장쾌한 판타지 액션은 휴먼 동화로 장르를 탈바꿈한다. 존 파브로 감독의 영리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도와 그로구는 ‘스타워즈’의 새 길을 열어줄 작품이 될 것 같다. 만도의 액션 어드벤처, ‘베이비 요다’ 그로구의 성장 드라마 어느 쪽이든 좋다. 12세 이상 관람가.

김인구 기자
김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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