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전자제품, 장식품은 물론 청소도구마저 청소해야 할 지경인 어느 집의 상태가 이 그림책의 첫 장면이다. 하늘에는 비행기가, 땅에는 빌딩이, 바다에는 배들로 꽉 찼다. 심지어 우주도 각종 기기로 가득하다. 정말이지 세상은 포화 상태다. 매 순간 새로운 상품이 출시되고 정보가 범람하며 모든 것은 터져버릴 듯이 쌓여간다.
그림책 속 과학자는 텅 비고 고요한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 몰두한다. 그는 온갖 실험 끝에 마침내 기계를 하나 개발했고 거기엔 정말로 아무것도 없다. 그가 그토록 꿈꾸던 것이었다. 오랜 연구에 지친 그는 그 안에서 처음으로 푹 자고 일어난다. 그는 사람들에게도 ‘텅텅 펌프’가 필요할 것이라는 걸 직감한다. 알록달록한 놀이터에서도, 물건이 빼곡한 마트에서도, 정신없는 회사에서도 이 커다란 허공은 유용했다. 사람들은 거대한 벽에서 벽돌을 빼내 빈 공간을 만들기 시작한다. 세상을 가득 채운 것들을 차츰 덜어내자 그곳에는 자연만이 조용히 남아 있다. 푸른 잔디와 흰 구름이 있는 곳에서 비로소 사람들은 느긋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
어느 피아니스트의 꿈은 자신이 사라져버리고 음악만이 거기에 남는 것이라고 했다. 명성과 환호와 역사를 지우고 오직 음악이 압도하는 시공간을 상상해 본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자신마저 잊어버린 그런 순간이야말로 우리를 도약시키고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정신적 빈곤에 처하는 사태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한다. 미니멀리즘에 따라 대대적인 집 청소나 요가 수련 등을 하며 비워내는 연습을 하는 사람이 많다. 그 안에서 잃어버린 것을 찾고 진짜 자신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48쪽,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