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5일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과천청사에서 대국민 사과문 발표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사상 초유의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사태’를 둘러싼 후폭풍이 결국 사정당국의 전면적인 수사로 비화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검찰과 경찰의 ‘합동수사본부’ 구성을 지시하며 선거관리위원회를 정조준하면서다. 시민단체의 연이은 고발로 경찰 수사가 막 첫발을 떼려던 찰나에 매머드급 수사기구가 띄워지며 진상규명에 탄력이 붙게 됐지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선관위 관계자들에 대한 실제 형사처벌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깐깐한 법리적 관문인 ‘고의성 입증’을 넘어서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7일 정치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SNS인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심각한 참정권 훼손으로 규정하고, 책임 소재와 사건의 전모를 철저히 규명할 검경 합수본 구성을 전격 지시했다.
이에 대검찰청은 즉각 입장문을 내고 “경찰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효율적으로 수사함으로써 국민적 의혹을 엄정히 규명하겠다”고 화답했다. 대검과 경찰청은 조만간 합수본 사무실 위치와 파견 인력 규모 등을 조율하기 위한 실무협의에 돌입할 방침이다.
합수본 출범 지시에 앞서 경찰은 이미 보수성향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 등이 선관위 간부들을 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고발한 사건을 배당받아 수사에 착수한 상태였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은 당장 8일부터 고발인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합수본 체제로 전환되면서 수사의 판이 완전히 커지게 됐다. 선거범죄 수사에 잔뼈가 굵은 검찰이 전반적인 수사의 주도권을 쥘 것으로 보이지만,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검찰의 선거범죄 수사개시권이 사라진 만큼 직무유기 외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경찰이 실무를 전담하는 형태의 묘한 공조가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정경유착 비리 의혹 수사 당시 김태훈 대전고검장이 합수본부장을 맡았던 전례가 이번 수사 체제 구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사정당국의 칼끝이 선관위를 정면으로 겨누고 있지만, 종착 지점인 사법처리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핵심 쟁점은 선관위 측의 ‘고의성’ 여부다. 수사 과정에서 선관위 관계자들이 유권자들의 투표를 노골적으로 방해할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투표용지를 적게 인쇄했다는 사실이 명확히 입증돼야만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해 형사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단순히 업무상 실수나 무능, 수요예측 실패에 따른 ‘직무태만’으로 결론 날 경우 형사처벌의 문턱을 넘기는 매우 어렵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단순한 태만인지 악의적 목적이 개입됐는지를 가르는 것, 즉 선관위가 어떤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투표용지 출력 비율을 결정했는지를 샅샅이 파헤치는 것이 이번 수사의 성패를 가를 핵심”이라고 내다봤다.
만약 합수본이 대대적인 수사에도 불구하고 고의성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사태의 파장에 비해 수사결과는 담당자 징계 촉구 수준의 용두사미로 끝날 공산이 크다. 과거 정치권의 거센 의혹제기로 특검까지 출범했던 서울남부지검의 ‘관봉권 폐기’ 사건 역시 고의성 입증에 실패해 관련자 징계와 제도개선 선에서 무혐의 종결된 바 있다. 다만, 합수본 수사를 통해 형사처벌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선관위 공무원들의 중대한 과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될 경우,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유권자들을 향한 국가의 대규모 손해배상 책임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과거 법원은 공무원의 과실로 투표를 하지 못한 유권자에게 1인당 2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하며 참정권 훼손에 대한 국가의 엄중한 배상 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