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을 살리는 사람들 - (23) 대전 계족산 황톳길 일군 조웅래 ㈜선양소주 회장

 

2006년 맨발로 계족산 하산뒤

경이로운 해방감에 조성 시작

지자체 지원 없이 210억 투입

 

맨발 황톳길 조성 붐의 원조

사재 털어 무료 숲속 음악회도

 

소주 1병 판매에 5원씩 적립

충남지역 인재들에 장학금도

조웅래 선양소주 회장이 지난달 28일 대전 대덕구 계족산 황톳길에서 비가 내려 말랑해진 황톳길을 맨발로 밟으며 환한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전=박윤슬 기자
조웅래 선양소주 회장이 지난달 28일 대전 대덕구 계족산 황톳길에서 비가 내려 말랑해진 황톳길을 맨발로 밟으며 환한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전=박윤슬 기자

대전=김창희 기자

가랑비가 촉촉이 내리던 지난 5월 28일 오전 대전 대덕구 계족산 황톳길은 녹음의 생기로 가득 차 있었다. 사흘간 이어진 비를 머금어 말랑말랑해진 황토는 발바닥이 닿을 때마다 차갑고 부드러운 감촉을 온몸으로 밀어 올렸다. 울창한 참나무와 소나무 숲길 사이로 피톤치드 향이 짙게 배어 나오는 이곳에, 어김없이 맨발 차림의 한 남자가 나타났다. 충청권 대표 향토기업 ㈜선양소주를 이끄는 조웅래(67) 회장이다.

그의 명함에는 ‘회장’ 대신 ‘황톳길 작업반장’이라는 직함이 새겨져 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도중에도 빗속을 뚫고 전국에서 몰려든 체험객들이 그를 알아보고 연신 환호를 보냈다.

“회장님, 이 좋은 길을 만들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지역 주민들의 감사 인사에 조 회장은 특유의 소탈한 웃음을 지으며 격의 없이 손을 맞잡았다. 이날 황톳길에서 만난 울산 농협주부대 소속 중년 여성 80명은 조 회장을 둘러싸고 “우정 여행을 왔는데 황톳길 원조를 만나 감격스럽다”며 단체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 천안에서 온 30대 청년들, 충남 서천에서 발걸음을 한 중년 남성들까지 연달아 사진 촬영을 요청했음에도 조 회장은 지친 기색 없이 연신 포즈를 취했다.

길 위에서 만난 유경자(78·대전 동구 성남동) 할머니는 “3년 전부터 협착증이 심해 도수치료를 받으러 다니며 고생했다”면서 “정형외과 가는 대신 이 황톳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허리 아픈 것과 무릎에 물 차는 증세가 싹 사라졌다”며 활짝 웃었다. 조 회장은 이에 대해 “바로 이 맛에 황톳길을 관리한다”며 “이곳은 전 국민이 몸과 마음의 면역력을 얻어가는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 하이힐에서 시작된 21년의 ‘맨발 기적’

계족산 황톳길 탄생은 햇수로 21년 전인 2006년 4월의 우연한 경험에서 출발했다. 당시 지인들과 계족산을 찾았던 조 회장은 하이힐을 신고 와 걷지 못하는 여성 지인에게 자신의 운동화를 벗어주고 맨발로 돌길을 걸어 내려왔다.

“그날 밤, 평소와 달리 깊은 숙면을 취한 뒤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 이거구나!’ 싶었죠. 이 경이로운 해방감을 나만 알기엔 너무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산길 임도에 황토를 깔아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황톳길 조성이 올해로 21년째를 맞이했다. 총연장 14.5㎞에 달하는 이 길을 유지하기 위해 선양소주는 매년 전북 김제 등지에서 질 좋은 황토를 2000t 넘게 공수해 오고 있다. 현재까지 투입된 비용만 무려 210억 원에 달한다.

최근에는 대외 여건 악화로 비용 부담이 더욱 커졌다. 조 회장은 “비가 와서 수분을 머금었을 때 트랙터로 길을 뒤엎어 줘야 딱딱해지지 않고 푹신한 촉감이 유지된다”면서 “올해는 물류비와 운반비가 너무 올라 25t 트럭 80대를 동원하는 데만 운반비로 7000만 원 넘게 들었는데, 한 번도 지방자치단체 예산 지원을 받지 않고 순수 기업 비용으로 충당했다”고 말했다.

조 회장의 뚝심이 담긴 이 길은 한국관광 100선에 4회 연속 선정되는 등 대한민국 대표 ‘맨발걷기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과거 지역 주민이나 찾던 무명의 계족산을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찾는 전국적인 힐링 명소로 탈바꿈시켰다. 특히 최근 전국 지자체들 사이에 일고 있는 ‘맨발 황톳길 조성 붐’의 시초이자 독보적인 원조가 바로 이곳 계족산이다. 관공서 예산 지원 한 푼 없이 오롯이 향토기업의 자산과 진정성만으로 일궈낸 이 상생 모델은, 대한민국 전역에 맨발 걷기 신드롬을 선도하는 기폭제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 회장은 대전의 또 다른 명소인 성심당과 비교하며 황톳길에 대한 자부심을 설명했다. “성심당에 가면 줄을 서서 빵을 사고 돈을 쓰지만, 계족산 황톳길에 오면 줄을 서지 않고도 무료로 행복과 건강을 한 아름 얻어갑니다.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상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조웅래 선양소주 회장이 지난달 28일 계족산 황톳길을 대전의 대표적인 힐링 명소로 가꿔온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대전=박윤슬 기자
조웅래 선양소주 회장이 지난달 28일 계족산 황톳길을 대전의 대표적인 힐링 명소로 가꿔온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대전=박윤슬 기자

◇ 문화예술을 입히고, 에코힐링 경영으로 ‘신뢰 자산’을 쌓다

조 회장은 단순히 길을 까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기에 ‘문화예술’이라는 숨결을 불어넣어 산중에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맨발로 산을 오가는 시민들이 자연을 더 오래 음미할 수 있도록 2007년부터 사재를 털어 숲속에 피아노를 올렸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주말 상설 무료 음악회 ‘뻔뻔(FunFun)한 클래식’이다.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 매주 토·일요일 오후에 열리는 이 공연은 클래식과 개그, 뮤지컬을 접목해 3대가 함께 즐기는 축제의 장이 됐다. 나무가 배경이 되고 햇살이 조명이 되는 숲속 극장은 에코힐링(자연치유)의 정수다.

이 같은 오랜 진정성은 선양소주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됐다. 지난해 대기업 주류 회사들의 물량 공세와 전반적인 소주 소비 감소 흐름 속에서 국내 소주 기업들이 일제히 매출 감소를 겪었지만, 선양소주만 유독 9%의 이례적인 매출성장을 기록했다.

조 회장은 그 비결을 ‘신뢰’라는 무형의 자산에서 찾았다. “요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화두지만, 저는 21년 전부터 환경과 사회적 책임을 결합한 에코힐링 경영을 실천해 왔습니다. 매년 10억 원 넘는 돈을 지역사회를 위해 꾸준히 쓰는 것을 보며 지역민들이 기업에 대한 깊은 신뢰를 보내주신 결과입니다. 신제품을 내놓아도 ‘선양이 만든 거라면 믿을 수 있다’며 먼저 손을 뻗어 주십니다.”

소주 한 병이 팔릴 때마다 5원씩 적립해 대전·세종·충남의 우수 인재들에게 기부하는 ‘지역사랑 장학캠페인’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까지 누적 적립액만 9억1000만 원에 달하며, 10년간 40억 원 고지를 향해 착착 나아가고 있다.

◇ 멈추지 않는 에너지… 코리아둘레길 최초 완주 이어 유럽 종주 꿈꾼다

정보기술(IT) 벤처 1세대로 성공 신화를 썼던 조 회장은 주류업계에서도 가장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경영자로 통한다. 동시에 그는 풀코스 마라톤을 86회나 완주한 소문난 마라톤 마니아다. 수년 전에는 한반도 외곽을 연결하는 5228㎞의 ‘코리아둘레길’을 주말마다 달려 국내 최초로 완주하는 대기록을 세우며 한국기록원에 등재되기도 했다.

“뛸 때 뇌에서 분비되는 베타엔도르핀은 세상 그 어떤 영양제보다 강력합니다. 비워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채워진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7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의 체력은 청년 못지않다. 최근에는 자전거도로와 국도를 중심으로 유럽 1만㎞를 종주하는 새로운 프로젝트 구상을 하고 있다. 캠핑카를 활용해 숙식을 해결하며 달리는 또 다른 도전이다. 매일 아침 몸의 유연성을 위해 빼놓지 않는 ‘요가 스트레칭’이 그의 지치지 않는 스태미나의 비결이다.

조 회장은 스스로 선양소주의 메인 CF 모델로 나서는 것은 물론, 유튜브·인스타그램·틱톡·페이스북 등 여러 SNS 플랫폼을 종횡 무진하는 ‘크리에이터 오너’이기도 하다. 지난해에만 SNS 누적 노출 수가 2억5000만 뷰를 돌파했다. 최근 서울 동묘시장을 방문했을 때는 그를 알아본 MZ세대 팬의 사진 촬영 요청으로 시장 통행이 마비될 정도였다. 일주일에 2∼3회 전국을 돌며 자신의 인생철학을 나누는 특강 스케줄을 소화하기도 바쁘다.

“술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고, 마라톤은 자신과의 벽을 깨뜨립니다. 제 건강 비책은 단순합니다. 잘 마시기 위해 잘 뛰는 것입니다. 90세가 되었을 때도 이 계족산 황톳길을 맨발로 달리고, 마라톤 풀코스를 당당히 완주하는 것, 그것이 제 최종 목표입니다. 인생은 마라톤입니다.”

김창희 기자
김창희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1
  • 감동이에요 1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