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런’(사진 왼쪽)과 ‘사랑스런 당신’(오른쪽)은 서로 마음을 전하는 부부의 모습을 질구이(테라코타)로 형상화했다.
살갑다. 상냥하고 부드럽다. 김주호가 만든 사람 조각들. 동네 아저씨와 아줌마, 마트나 장터에서 만나는 이웃, 촛불이나 응원봉을 든 청춘 남녀, 샐러리맨들 등 주변에서 쉽게 마주치는 사람들. 입을 크게 벌리고 웃거나, 삐죽거리거나, 돋보기를 들여다보거나, 눈을 흘기는 수직의 인물들은 한결같이 여유가 있다. 삶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희로애락을 담아내며 형상을 마무리하는 작가의 표현성은 부드럽되 말랑말랑하지 않고, 상큼하되 달달하지 않으며 해학적이되 가볍지 않다. 납작한 수직 원통이 기본 구조인 그 인체들은 전통 민속 조각 양식에서 유래했다. 미륵 세상을 희구하며 민중들이 만들었던 운주사 석불, 마을 입구의 장승(벅수), 무덤 앞 문(무)인석 등인데, 거기에 해학과 유머가 가득하다. 그것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건, 김주호 조각에 담긴 내용과 함께 거기에 스민 민예적 무작위, 무기교, 졸박미의 담백한 형식 때문일 터다.
김주호는 생활 반경 내에 있는 사소한 재료로 작업한다. 강화도의 거친 황토나 옹기토를 주무르고 구워서 만든 질구이(Terra Cotta) 작품. 야산에서 채집한 나뭇가지 공작. 버려진 폐기물을 재활용한 푸어 아트(Poor Art)나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경향의 작업. 플라스마로 철판을 오리고 구부려서 만든 즉흥적 스틸 드로잉(Steel Drawing). 작은 목판화. 한 호흡에 그린 먹 드로잉 작품 등…. 대부분 머릿속에 떠올린 이미지나 주제를 곧바로 작업으로 옮기기 적당한 질료다. 원재료가 가진 속성을 유지하며 직관적으로 형상을 구성하는 이런 방식은 초등학교 공작 시간의 자유로운 발상과 유희의 재귀 같다. 작업의 즐거움이 감지된다. 그래선가 김주호 특유의 투박한 날것의 물질성과 순발력 넘치는 표현성은, 공간을 긴장감으로 점유하는 서구식 조각의 위계성과 달리 질박하다.
김주호는 왜 이런 태도로 작업을 진행해 왔을까. 한번 돌아보자. 그의 습작기인 1960∼1970년대는 서구 모더니즘 미학이 우리나라 조각계에서 엄숙한 이데아로 주류를 형성하던 시기였다. 김주호는 그런 현대성과 국제성이라는 ‘위로부터의 미학’과는 별개로, 우리 전통과 일상에 내재한 ‘아래로부터의 조형성’을 모색했다. 본인의 체질과 감수성, 인식이 어우러진 조각 개념, 즉 ‘한국성’의 탐색이었다. 질구이는 그런 과정에서 집중한 장르다. 흙가래를 말아서 타래 쌓기로 형상을 만든 뒤, 약 1000도로 소성하는 초벌구이 기법이다. 옹기나 토우 제작 방식의 연장선상인데, 김주호는 그 소박한 민간 방식을 한국적 조각의 근원으로 수용했다. 그 바탕에서 간단한 도구와 수공 제작으로 무심하게 빚은 김주호의 직립 인체는 간결하고 수수하고 수더분한 미감을 도출한다. 거기에 때 묻지 않은 인물 표정이 천연덕스러운 위트를 더한다. 그의 작업 노트 한 구절, “로댕 할아버지보다 더 능숙하게, 브랑쿠지 선생님보다 더 간략하게”. 즉흥적으로 쓱싹쓱싹 빚어낸 사람들은, 결국 김주호 본인의 삶, 마음, 이웃, 세계, 조각에 대한 미적 태도를 표출하고 형상화한 것이라 하겠다.
2018년 김포국제조각공원에서 열린 조각전 ‘북쪽방향’ 전시장에 서 있는 김주호(위 사진) 작가와 2012년 아트사이드갤러리의 ‘함께라면’(아래)의 전경.
사실 그렇다. 김주호는 격의가 없는 사람이다. 타고난 성격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단란한 가족사와도 무관치 않다고 여겨진다. 그가 했던 이야기에 단서가 있다. 한국전쟁 때, 평남 맹산에 살던 그의 가족이 고생스레 탄 피란 열차가 남하하다가 멈춘 종착지가 경북 김천 ‘평화동’이었고, 이름이 좋아 그 동네에 정착한 부친이 생계를 위해 차린 가게 이름은 ‘평화상회’였다. 어려운 시기 한가족의 실존에 대한 위기가 본능적으로 반영되었으되, 동시에 무언가 낙천적인 뉘앙스가 풍기는 작명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말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김주호의 심리에는 부친과 같은 화평에의 지향과 의지가 자리 잡았으리라. 평화동과 평화상회 덕분에 “먹고 살며, 대학을 마치고 조각가가 된” 본인 작품에는 “기본적으로 평화가 스며있다는” 익살스러운 논리에 진지한 의식이 엿보이니까 말이다. 기실, 요즘 평화라는 어휘를 화용론적으로 보자면, 정치인들이나 구사하는 레토릭으로 뻔하고도 식상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 우리는 평화롭게 살기 위해 힘듦을 견딘다.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행위의 궁극적 지향점이 평화로운 삶이 보장된 세상 아니겠는가. 김수영이 설파했던바 “온갖 식구와 온갖 친구와 온갖 적들과 함께/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는 이유도 그것일 테고.
김주호 작품이 돋보이는 지점은 세상과 인간을 따뜻하게 보고 말하는 조각 형식에 있다. 관객을 소외시키는 현대미술의 제도적·미학적 구조나 논리와 달리, 그는 사람과 미술 사이를 교통할 수 있는 일상적 내용과 형식의 통일에 집중했다. 날카로운 공격성보다는 삶의 고단함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키는 능동성으로, 타자에 대한 공감과 연대를 조각 문법에 담은 것이다. 이는 계급이나 정치적 입장을 떠나 모든 사람을 마음으로 모시는(侍) 것이자, 현상과 이치를 어긋나지 않게 수용하는 원융무애(圓融無애)의 실행이다. 이런 태도로 이웃을 미륵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이 그의 작업일 것이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동시대 현실에 대해 예리하게 발언하는 작업도 있다. 12·3 내란을 먹으로 그린 대형 드로잉이나 극우 시위에 나선 이들을 풍자한 서사적 작품 등이 그것이다. 그런 유형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2018년 김포국제조각공원 아트홀에서 열린 ‘북쪽 방향’ 개인전의 설치 작품이다. 문수산 등산로 입구 숲 속 전시장은 벽면 3면이 통유리인 산만한 공간이었는데, 전시 환경의 악조건에 개의치 않고 김주호는 질구이 62점의 시선이 한 방향을 향하도록 설치했다. 북쪽으로 응집되는 시선이 전시 내용이 되고, 그 응시가 관객에게 감각적으로 현시되고 전유되며 주제를 소통시키는 개념적 실험이자 시도였다. 실향민 김주호가 자신과 이웃의 염원인 평화와 통일에의 희구를 어떤 슬로건도 없이 묵언으로 상징화한 것이었다. 이 전시를 관람한 평론가 성완경은 “기존 조각들의 시선 변주만으로 새로운 주제를 도출한, 상황 제시조차 없이 개념적 전치와 실험이 파동과 울림으로 관객에게 전유되는 탁월한 작품”이라고 필자에게 소감을 전한 바 있다. 이 작품은 정치적 입장이나 비판적 공격성을 취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에 적극 개입한 경우다. 자연주의적 시선의 김주호가 대하적 리얼리스트이자 실험적 작가로 조각 문법을 확장한, 순발력이 도드라진 실례 중 하나였다.
이렇듯 지난 50여 년간 제도권 외곽에서 김주호는 여러 시도를 해왔다. 탈서구·비상업성·비장식성·탈중심의 태도로 전통성·민중성·주체성·졸박미·골계미 등의 한국적 정서를 당대성에 담아냈다. 자신의 지향성을 온몸으로 밀고 온 그 긴 시간은 녹록하지 않고 외로웠을 터다. 그런 힘든 여정에 대한 위무였을까, 2025년 김주호는 ‘김세중 조각상’과 ‘김종영 조각상’을 연이어 수상하게 된다. 그 수상은 한국미술이 서구 콤플렉스를 벗어난 실례 중 하나라고 여길 정도의 ‘사건’ 같다. 모더니즘 형식주의나 민중미술의 정치성과는 거리를 둔 채, 개별적으로 한국적 형상성을 개진해 온 질긴 과정과 결과가 온전하게 인정받은 것이다. 이는 김주호의 작품이 한국 현대 조각의 한 성좌에 비로소 위치한 것이고, 닫힌 기득권 구조였던 미술계가 열림으로 전환하는 신호 중 하나라고 하겠다.
근래 김주호는 도깨비를 연구하며 작업을 하고 있다. 도깨비를 우리 기층문화의 저수지로 여겨서다. 당분간 도깨비 작업에 매진할 기세다. 성공한 “세계적 작가”보다는 특유의 뚝심으로 친근한 “동네 작가”가 되기를 원하는 김주호가, 팔순 문턱에서 이웃인 ‘미륵 도깨비’들의 한판 대잔치를 창출해 내려는 것이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작품으로 우리에게 평화와 웃음을 주는 김주호야말로 정작 이 ‘미륵 도깨비’의 현신 아닌가. 그가 벌이려는 살가운 도깨비 잔치가 기다려진다.
김진하 미술평론가·나무아트 대표
지난해 ‘김세중·김종영 조각상’ 연이어 수상
■ 김 조각가는
나뭇가지 형태를 그대로 살린 후 아크릴로 채색한 ‘미국이라는 나라’(2005).
조각가 김주호(77)는 서울대 미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그가 대면했던 이웃과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적 모습들을 따뜻하게 또 때로는 비판적으로 포착해왔다.
판소리와 같은 정서에 촌철살인의 해학과 풍자 코드를 더하며 당대 서민의 삶을 골계미로 전형화했다는 것. 한편으로 보면, 소탈하고 여유롭고 익살스럽게 이웃의 모습을 미륵처럼 형상화하며 선한 자신의 내면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 바탕에는 운주사 석불, 장승(벅수) 등의 전통 민간 조각 형식을 차용한 질구이(테라코타), 석조, 철조, 목조, 목판화, 드로잉, 기타 생활 폐기물의 집적 작업 등 다양한 시도가 있다. 이는 서구 모더니즘 조각 양식과 미학보다는 우리 전통 미의식에 바탕을 둔 주체적인 자기 조각 개념과 언어를 개척했다는 점으로 연결된다. 이른바 김주호식 독자적 양식과 미학을 창출했다는 것이다.
2025년 ‘김세중 조각상’과 ‘김종영 조각상’을 연이어 수상했다. 화단 주류나 유행하는 사조로부터 독립해서 긴 시간 외롭게 자기 조각 세계에 천착한 결과가 작품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여겨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