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함 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집권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5일 조정식 국회의장을 비롯한 후반기 의장단을 선출한 데 이어 18개 상임위원회 위원장 배분을 놓고 기 싸움을 벌일 태세다. 이는 6·3 지방선거 때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항의해 분노한 시위와 중첩되면서 시국을 혼란스럽게 한다. 다수의 2030 청년과 유모차가 여타 정치인의 개입과 후원금을 거부하고 참정권 박탈에 대한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평화 시위를 주도하고 있어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국민이 선출한 입법 권력이 임명된 다른 국가 권력기관보다 우월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민주당 정권으로서는 국민의 주권이 유린당한 사태를 제쳐놓고 야당과 원 구성을 둘러싼 정략적 대립만을 할 수 없는 처지다. 헌법적 독립기관이라며 각종 감사와 감찰을 거부해 온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옹호해 온 민주당으로서는 스스로 국정감사와 특검을 통해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할 처지이다. 제22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이 원만하게 진행돼야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민주당의 행태로 봐서는 여전히 입법 독주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문재인 정부 때이던 제21대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 의석의 민주당이 효율적인 입법을 추진한다는 명분으로 법제사법위원회를 포함한 모든 상임위원장을 독차지했다. 이로써 원 구성 합의와 국회 개원이 늦어졌고, 후반기에는 정기국회 회기를 맞추기에 바빴다. 장기간의 식물국회로 민생 법안과 예결산 심사가 무기한 연기됐고, 여야의 첨예한 갈등이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저버렸음은 물론이다.
지난 3월 추미애 법사위원장이 물러났을 때 국민의힘이 자기들 차례라며 관례를 주장하자, 정청래 당 대표는 ‘야당이 맡은 상임위는 도저히 진척이 안 된다’며 상임위원장 민주당 독식론을 폈다. 한병도 원내총무와 조정식 국회의장도 이에 동조하는 발언을 했다. 이러한 독식론은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60%를 웃도는 여론조사에 고무되기도 했다. 무기력하고 리더십 없는 야당의 존재도 한몫했을 것이다.
민주적 ‘견제와 균형’의 원칙에 기초해 원내 제1당이 국회의장을 맡고, 제2당이 법사위원장을 맡는 등 의석 비율에 따른 위원장 배분은 1987년 민주화 이후 1988년 여소야대의 제13대 국회에서 쌓은 의회민주주의의 기념비적 업적이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는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정부 견제를 명분으로 법사위원장 자리를 요구했고, 이후 제1야당이 맡는 것이 국회 불문율로 자리를 잡았다. 2016년 제20대 국회에서 여당이던 새누리당이 국회의장을 포기하는 대신 법사위를 가져갔지만, 견제와 균형 원칙은 지켜졌다.
그런데 지금 여당은 민주적 관례를 무시한 상임위원장 독식으로 강력한 입법 추진력을 발휘해 이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뒷받침하겠다는 태세다. 일사불란한 의사결정의 입법 체제를 완성해 이 대통령에 대한 공소취소 등을 기획한다면, 여론의 역풍이 반드시 일 것이다. 국민은 다수의 횡포를 자행하라고 입법권을 준 게 아니다. ‘입법권은 국민의 명령’이라는 여당 주장은 ‘국민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people) 통치한다는 파시스트(파쇼) 독재를 공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민주화의 역군들이 그 역기능을 자임하다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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