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유석의 ‘배(梨)’, 높이 35㎝, 세라믹, 2025.
나유석의 ‘배(梨)’, 높이 35㎝, 세라믹, 2025.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들은 점잖은 시적 삽화 같은 양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미지의 반역’에서 담배 파이프 하나 그려놓고는 ‘이건 파이프가 아니다’라 한 태연자약이 익살스럽기까지 하다. 허무 개그 같은 맥락이지만, 이미지의 관성과 배후를 흔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의 초현실주의는 스마트한 데가 있다.

도예가 나유석의 정물 작업을 볼 때, 유사한 컨텍스트가 발견된다. 배(梨) 이미지를 도자로 모델링하고 있는데, 조형의 조건들은 대체로 이미지와 유리되어 있다. 고도로 계산된 의도와 소성 과정의 우연성이 결합된 효과로서의 크랙과 부분적 함몰. 이 대목에서 우리의 시지각은 대상의 형태와 유리된 자율성을 띤다.

‘이건 배가 아니야’라는 문장만 생략하고 있을 뿐이다. 어떤 정령 같은 미의식이 단순히 ‘배’라는 형상에 빙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경험 속 정보들과는 동떨어진 물성이 말하고 있는 바를 경청하고 상상할 것을 요구한다. 이렇듯 실험적인 도자 조형에서만 볼 수 있는 창의적 양식은 작지만 기념비적이다.

이재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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