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경 산업부 차장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1년여 전. 당시 야당 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이 꺼낸 부동산 1호 공약은 ‘공급 확대’였다. 서울 노후 도심에선 재개발·재건축 장벽을 낮추고, 4기 신도시도 개발하겠다는 구상이었다. 한 유튜브 채널이 연 생방송 대담에선 “세금으로 집값을 잡지 않겠다”고도 밝혔다. ‘부자 몸조심’ 전략으로 한동안 침묵했던 이 대통령은 역대 진보 정권과는 다른 부동산정책을 약속했다. 취임 1년이 된 지금, 괴리감은 크다. 정권을 잡자 공약과 정반대로 규제를 앞세웠다. ‘선거용’ 오른쪽 깜빡이를 끈 채 좌회전한 것이다. 결과값은 노무현·문재인 정부와 같다.
시장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수급 원리는 냉정하게 작동했다. 지난달 양도소득세 중과가 되살아나자 매물은 사라졌다. 매매·전세·월세 가격은 ‘트리플 상승세’다. 실거주를 강요하는 토지거래허가제 등 규제 탓에 전월세 매물이 급감해서다. 서울 아파트값은 70주째 치솟았다. 2020년 6월부터 85주 연속 올랐던 이후 역대 두 번째로 긴 기록이다. “정부를 이기는 시장은 없다”는 이 대통령의 엄포는 반짝 효과에 그쳤다. 수요는 규제가 생기면 규제가 없는 곳으로, 모든 곳이 규제되면 이익이 많은 곳으로 간다. 그 결과, 서울 외곽지와 경기 구리·화성시 등에선 ‘불장’이 펼쳐지고 있다.
정책 취지와 시장은 따로 놀고 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이들은 중산층과 저소득층이다. 대출 한도를 옥죄자 집을 사지도, 팔지도 못한 시장이 됐다. 전월세 대란은 임계점으로 치닫고 있다. 인식도 우려된다. 이 대통령은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전세 감소는 정상화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전세난은 ‘공급 가뭄’과 실거주 의무, 대출 규제 등이 맞물린 부작용이다. 전세는 무주택자에겐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사다리’인데, 이를 걷어차는 셈이다. 이미 청년세대는 ‘월세 지옥’에 갇혔다. 올해 1분기 2030세대는 전체 연령대에서 유일하게 소득이 감소한 반면, 월세 등 주거비 부담은 급증했다. 주거 불안에 허덕이던 이들은 ‘닥치고 공급’을 외친 야당 서울시장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문 정부보다 여건은 좋지 않다. 현 정부에서 입주 물량은 거의 없다. 당장 이달 서울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0’건이다. 기준금리를 올린다고 해도 집값을 잡기 힘든 실정이다. 금융수익, 성과급 등 소득은 늘었고, 확장 재정으로 유동성이 많이 풀려 있다. 통화량(M2)이 늘면 인플레이션으로 집값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공약은 식언이 됐다. 지방선거가 끝나자 증세 카드를 바로 꺼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보유세 인상 방침을 공식화했다. 집은 필수재가 아닌 사치재가 됐다. 세금을 버티지 못한 다주택자들이 내놓는 매물은 공급 여력이 될 것이라고 봤다. 시장은 정부 뜻대로 움직일까. 1주택자도 집을 옮기지 못하는데 세금만 올리면 매물 잠김만 극심해질 수 있다. 세금도 세입자에게 전가되기 쉽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갈라쳐도 공급 부족과 규제를 둘러싼 불만을 잠재울 순 없었다. 이번 선거가 그랬다. 정부가 다음 달 보유세를 올리면 국민은 내년 7월부터 12월까지 고지서를 줄줄이 받게 된다. 2028년 총선을 넉 달 앞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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