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재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원가 상승 압박을 언제까지 감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 장기 고착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국내 산업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지출 비용 중 달러 비중이 높은 항공·정유·석유화학업계는 물론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하는 중소·중견기업과 내수업체도 “팔수록 손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9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환율이 10% 상승할 경우 단기적으로 국내 기업의 38.2%가 영업이익률이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비용 인상분을 판매가에 반영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는 국내 기업의 80.1%가 수익성 악화를 겪게 될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연구원이 2016~2024년 매출·영업이익이 있는 2만여 개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다.
당장 비상이 걸린 곳은 항공업계다. 항공유와 항공기 리스료, 정비비, 공항 사용료 대부분이 달러로 결제되는 항공사 입장에선 환율 상승이 곧 비용 증가를 의미한다. 대한항공은 최근 분기보고서를 통해 환율이 10원 변동할 경우 약 550억 원 규모의 외화평가손익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3월 말 기준 연간 예상 달러 부족 규모는 약 16억 달러(약 2조4500억 원)에 달한다. 원유를 달러로 사 오는 정유업계도 비상이다. 지난 4월 기준 국내 원유 수입량은 전년 동월 대비 22.8%가 줄었지만, 수입금액은 오히려 13.1% 늘었다.
식품업계도 원가 압박을 받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올해 1분기 보고서를 통해 환율 10% 상승 시 외화평가손익 등 세후이익이 67억3541만2000원 줄어든다고 밝혔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물가 안정에 대한 정부 기조 영향으로 가격 인상을 못 하고 있지만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산업 역시 고환율로 인한 단가 상승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 역시 중소·중견업체를 중심으로 순수입 기업 수 비중이 53.8%에 달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사정은 더욱 절박하다. 한 금속가공기업 대표 A 씨는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해온 원청에 최근 고환율로 원자재 수급이 어렵다고 난색을 표하자 ‘다른 업체를 찾겠다’는 공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A 씨에 따르면 연초만 해도 t당 50만 원 하던 원자재가 현재는 60만 원까지 오른 상황이다. 그는 “오히려 원청에선 긴축을 하고 나서며 고충이 커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도료 납품을 하는 업체 대표 B 씨는 “납품 단가가 오르자 현재 고객 업체들이 중동 사태 안정과 환율 인하를 기다리며 공사를 미루는 중”이라고 하소연했다.
소상공인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고장수 전국카페사장협동조합 이사장은 “석유제품 가격 상승으로 일회용 컵 가격도 50%나 올랐는데 이 같은 추세는 결국 커피 가격 인상 등으로 이어져 소비자들에게 직접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