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눔 실천하는 초록빛 능력자들
노인가정에 생신상 챙기는 정옥자씨
“겨울 따뜻한물 건네던 부모님
‘봉사는 내가 해야 할 일’ 생각
저장강박 어르신 집 청소하다
‘외로움 덜어줘야겠다’ 다짐해”
초록우산·의료단체 정기 후원
유산기부 ‘그린레거시’도 가입
대구 동구에 사는 정옥자(여·75) 씨의 나눔은 특별한 계기로 시작되지 않았다. 겨울이면 따뜻한 물을 끓여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한 잔씩 건네던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자라서인지 어려운 이웃에 관한 신문 기사를 읽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정 씨의 마음속에는 일찌감치 봉사라는 씨앗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본격적인 첫 나눔은 1995년 남편과 함께 시작한 조리 봉사였다. 부부는 부엌에서 나란히 복지관 어르신들을 위한 식사를 만들고 밑반찬을 준비했다. 그는 정성을 다해 반찬을 만들던, 나눔의 첫 시작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이후 정 씨는 꼬박 30년 동안 노인 가정을 찾아 반찬을 전달하고 생신상을 챙기는 일을 꾸준히 이어왔다. ‘이 음식 드시고 오늘 하루 든든하게 보내세요’라는 작은 마음을 담아 시작했던 일이 어느새 삶의 일부가 된 것이다.
오랜 봉사활동은 그가 지역사회 곳곳의 외로움을 마주하게 했다. 30년 봉사 중 가장 잊히지 않는 장면은 한 독거 어르신 집에서의 경험이다. 밑반찬을 들고 방문했다가 저장강박 어르신의 집 안 청소를 도왔는데, 정수기 옆에서 오래전 죽은 쥐를 발견했다. 어르신은 그 사실조차 모른 채 생활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그는 ‘사람의 외로움’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좀 더 자주 들여다봤더라면, 손 한 번 더 잡아드렸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이후 어르신 댁을 찾을 때마다 단순히 반찬만 전달하지 않고, 눈 맞추며 안부를 묻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또 기억에 남는 사람은 후원했던 아이 ‘민수(가명)’다. 처음 후원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어린아이던 민수는 어느덧 성인이 됐다. 민수는 종종 정 씨에게 편지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그는 민수의 편지를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다.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뿐이었는데, 번듯하게 커서 사회의 일원이 된 민수가 30년 봉사 인생을 통틀어 가장 큰 보람이라고 한다. 정 씨는 “아이들을 사랑해서인지, 어린이날이 되면 길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에게 용돈을 쥐여 주기도 한다”며 “민수처럼 한 아이가 잘 자라 누군가에게 베푸는 어른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봉사와 함께 후원 역시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초록우산을 비롯해 의료·인권 관련 단체 등에 정기후원은 물론이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나눔을 권하며 후원자를 연결해왔다. 초록우산 유산기부자 모임인 ‘그린레거시클럽’에 가입하고 대구 동구 ‘까치밥 캠페인’ 1호 기부자로도 참여했다. 그가 유산기부를 결심한 것은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까치가 먹을 감 하나를 나무 꼭대기에 남겨두는 전통문화에 착안한 캠페인 취지를 접한 뒤, 살아가는 데 무리가 없는 범위에서 남은 재산의 일부를 조금씩 사회에 환원하기로 한 것이다.
그에게는 6·25 참전용사 어르신들을 돕고자 하는 목표도 있다. 젊은 나이에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켜준 사람들과 그 후손에 대한 마음의 빚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들의 큰 공에 비해 누리는 게 너무나도 적은 현실이 항상 마음에 걸린다고 한다. 또 요즘 그는 ‘외로운 아이들’이 신경 쓰인다. 부모님이 바빠서 혼자 밥을 먹는 아이들, 마음을 털어놓을 어른 없이 혼자 끙끙 앓는 아이들이 많은 게 그의 걱정이다. 그는 어른들이 먼저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더 행복해지는 길.” 정 씨에게 나눔의 의미다. 그는 통장에 돈이 많은 사람이 부자가 아니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진짜 부자라는 것을 30년 동안 부엌에서 배웠다고 한다. 그는 “옆집 어르신께 반찬 한 가지 나눠드리는 것, 길에서 마주친 아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 모두 다 나눔”이라고 강조했다. 또 “나눔은 결국 작은 실천이니 한번 크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더라도 길게 이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 초록우산 공동기획
김지현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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