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서울대, 단백질-RNA 복합체 형성 원리 밝혀
RNA 치료제 설계 기반 제시
기초과학연구원(IBS)과 서울대 공동 연구팀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핵심 단백질인 ‘아고넛’이 활성화되는 과정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대사질환이나 알츠하이머병 등 특정 유전자가 과도하게 발현돼 생기는 난치성 질환의 RNA 치료제를 더 정교하게 설계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IBS RNA 연구단 김빛내리 단장과 서울대 생명과학부 노성훈 교수 공동 연구팀이 유전자 조절 단백질 아고넛의 형성·활성화 원리를 규명했다고 10일 밝혔다. 이번 연구 성과는 11일 저명한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됐다.
아고넛은 세포 안에서 불필요하거나 과도하게 발현되는 유전자 정보를 찾아 제거하는 단백질이다. 마이크로 RNA(miRNA)와 결합한 뒤 표적이 되는 전령 RNA(mRNA)를 찾아 분해하거나 억제한다. miRNA가 세포 안에서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려면 아고넛과 결합해 ‘RNA 유도 침묵 복합체’(RISC)를 형성해야 한다.
그러나 miRNA가 아고넛에 탑재돼 실제 기능을 갖추는 과정은 그동안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세포 안의 아고넛 대부분이 이미 miRNA와 결합한 상태로 존재해, 결합 직전의 중간 단계를 포착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RNA 치료제 개발에도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아고넛의 구조 형성을 돕는 ‘샤페론’ 단백질에 주목했다. 샤페론은 세포 안에서 다른 단백질이 정상적인 3차원 구조를 갖추도록 돕는 단백질이다. 연구팀은 샤페론에 결합한 아고넛 복합체를 세계 최초로 분리·정제하고, 초저온 전자현미경(Cryo-EM) 기술로 원자 수준의 구조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샤페론은 아고넛을 완전히 열린 형태로 붙잡아 miRNA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공간에 miRNA가 들어가 결합하면 샤페론은 떨어져 나가고, 아고넛은 유전자를 조절할 수 있는 닫힌 형태로 완성됐다. 연구팀은 이 결합 과정을 시험관 안에서 재현해 완성된 아고넛 복합체가 표적 mRNA를 정확히 잘라내는 기능도 정상적으로 수행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특히 세포 안에 존재하는 원래 형태인 이중가닥 miRNA가 있을 때만 아고넛이 안정적으로 작동했다. miRNA가 없거나 단일가닥 형태일 때는 정상적인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miRNA가 단순히 아고넛에 실리는 대상이 아니라, 아고넛이 올바른 구조를 갖추도록 돕는 핵심 인자라는 점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또 어떤 RNA가 아고넛에 효율적으로 탑재되는지도 분석했다. RNA의 화학적 특성, 이중나선 구조, 20~24개 염기의 길이 등이 아고넛과 정상적으로 결합하는 데 필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임상에서 쓰이는 siRNA 치료제의 화학적 변형이 아고넛 조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함께 확인했다.
siRNA 치료제는 특정 유전자의 활동을 선택적으로 차단해 질병 원인 단백질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는 RNA 기반 치료제다. 체내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화학적 변형을 적용하지만, 그동안에는 변형의 종류와 위치 조합이 많아 대규모 스크리닝에 의존해야 했다. 이번 연구는 아고넛에 잘 탑재되는 RNA의 조건을 분자 수준에서 제시했다는 점에서 RNA 치료제 설계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기반으로 평가된다.
대표적인 RNA 치료제로는 코로나19 mRNA 백신을 비롯해 유전성 아밀로이드증 치료제 ‘온파트로’와 고지혈증 치료제 ‘렉비오’ 등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siRNA 치료제가 있다. 이번 연구는 이 가운데 siRNA 치료제 설계의 핵심인 아고넛 탑재 원리를 분자 수준에서 밝힌 성과로 평가된다. 대표적 siRNA 치료제인 온파트로는 2012년 임상시험을 시작해 201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기까지 약 6년이 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빛내리 단장은 “그동안 시행착오에 의존하던 RNA 치료제 설계에 분자적·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것”이라며 “이를 이용해 보다 효율적이고 안전한 siRNA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노성훈 교수는 “이미 완성된 구조가 아니라 단백질이 기능을 갖춰가는 과정을 직접 관찰한 데 의미가 크다”며 “단백질 조립 원리를 규명함으로써 생물 현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혁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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