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이의 올댓클래식 - 헨델의 대관식찬가 ‘사제 차독’

 

‘사제차독’ 가사, 구약성경 바탕

현악기 긴장 쌓아올리다 합창

관악기와 팀파니 찬연한 연주

 

왕 즉위 공적 승인 → 군중갈채

대관식과 챔스리그 의식 유사

브리튼 작곡 ‘앤섬’ 모티브 돼

월드컵의 계절이 돌아왔다. 우리 시간으로 12일 새벽 개막전을 시작으로, 우리는 다시 축구장의 함성을 듣게 된다. 녹색 그라운드로 나오는 선수를 클로즈업하는 카메라, 트로피를 치켜드는 우승팀,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의 열기…. 오늘날 축구는 스포츠를 넘어 영웅의 등장, 승리, 환희의 서사를 갖춘 거대한 의례에 가깝다.

이런 면모를 선명하게 들려주는 음악이 있다. 최근 종료된 유럽 축구 클럽의 챔피언을 가리는 챔피언스리그의 주제가 ‘UEFA 챔피언스리그 앤섬(UEFA Champions League Anthem)’. 이 테마곡이 흐르면, 축구장의 공기는 단숨에 바뀐다. 선율과 함께 중계 화면은 하늘에서 내려다본 스타디움과 선수, 대중을 차례로 보여준다. 음악은 이 모두에게 일종의 권위를 부여한다. 경기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무언가 성대한 의식이 시작된다고 느낀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곡의 뿌리가 대관식장에 있다는 점이다. 1992년 토니 브리튼(Tony Britten)이 작곡한 작품은 헨델의 대관식 찬가 ‘사제 차독(Zadok the Priest)’을 모델로 삼았다. ‘사제 차독’은 1727년 영국 조지 2세의 대관식을 위한 곡으로, 이후 역대 영국 국왕의 즉위식 때 연주되며 왕의 탄생을 알리는 곡이 됐다.

영국 조지 4세의 대관식 연회 장면. 오른쪽 사진은 2026년 FIFA 월드컵 결승전이 열릴 예정인 메트라이프 경기장.
영국 조지 4세의 대관식 연회 장면. 오른쪽 사진은 2026년 FIFA 월드컵 결승전이 열릴 예정인 메트라이프 경기장.

‘사제 차독’ 가사는 구약성경 열왕기 상권 1장 39∼40절을 바탕으로 한다. 솔로몬이 임금으로 추대되는 장면을 노랫말은 이렇게 표현한다.

사제 차독은 솔로몬에게 기름을 붓고, 나탄 예언자는 즉위를 지지한다. 사람들은 나팔 소리와 함께 “솔로몬 임금 만세!”를 외친다. 왕의 즉위에는 사제와 예언자, 그리고 군중의 칭송이 있다. 왕권이 공적 승인과 갈채 속에서 비로소 모습을 갖춘다는 것, 광휘로운 선율은 그 사실을 일깨운다.

헨델은 그 순간을 소리로 빚어낸다. 시작은 조용하다. 현악은 낮은 곳에서부터 긴장을 조금씩 쌓아 올리고, 합창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계속되는 유예 속에서 무언가 곧 나타날 것 같은 예감. 그러다 마침내 합창이 “사제 차독(Zadok the Priest)”을 외치는 순간, 이는 하나의 선포가 된다. 트럼펫 세 대와 두 대의 오보에 및 바순 같은 관악기와 팀파니 역시 찬연한 느낌을 준다. 왕이 왕좌에 오르고, 민심이 그를 기리는 순간이 열띤 고양감과 함께 터져 나온다.

여기서 축구장과 대관식장은 통할 수 있다. 한 선수가 골을 넣고 수만 명의 관중이 동시에 열광할 때, 그는 경기장 중심에 선다. 대중은 선수에게 상징적 권위를 부여하고, 그는 잠시 왕과 같은 존재가 된다. 축구장은 그렇게 순간적인 주인공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UEFA 챔피언스리그 앤섬’이 헨델 ‘사제 차독’을 차용한 것은 단순히 이 곡이 웅장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대관식 음악의 구성 요소가 현대 스포츠의 의례성과 통해서다. 찬가가 흐르는 동안 선수들은 왕과 같이 국가를 상징하는 대표성을 지니며, 관중은 그 축제를 완성하는 합창단이 된다.

그래서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헨델의 ‘사제 차독’을 들어보는 일은 흥미롭다. 축구는 의도적으로 제왕의 등장과 민중의 찬양을 기억하는 음악을 소환한다. 오늘날 축구는 옛 대관식과 유사한 국가적 제전(祭典)이기 때문이다.

음악 칼럼니스트 ‘음악과 이미지’ 저자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