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회의 뒤집어보는 상식
“척 보면 알지.” 일상에서 자주 쓰는 표현이다. 상대의 의도나 상황을 눈빛 하나만으로 금방 파악했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 말은 워낙 익숙하다. 그래서 대부분 의심 없이 넘어가지만, 표현 속 ‘척’의 정체에는 흥미로운 오해가 숨어 있다.
많은 사람은 ‘척’을 전통 길이 단위인 한자어 ‘척(尺·자)’에서 온 말로 짐작한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척’은 매우 중요한 길이 단위였다. 조선 시대는 물론 중국과 일본에서도 오랫동안 생활 속 단위로 자리 잡았다. 옛사람들은 물건 전체를 다 펼쳐보지 않아도 일부 길이만 보고 품질이나 상태를 판단하는 일이 많았다. 천이나 목재, 종이 같은 물건은 특히 그랬다. 숙련된 상인은 천 한 자(약 30㎝)만 만져봐도 품질을 알아냈고, 목수는 나무 일부만 보고 재질과 상태를 간파했다. 한 자만 봐도 전체를 안다는 경험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이다. 언뜻 들으면 꽤 그럴듯한 서사로 읽힌다.
그러나 후대에 지어낸 속설일 뿐 문헌적 근거가 없다. 국어학적으로 “척 보면 안다”의 ‘척’은 한자어 ‘尺’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때의 ‘척’은 ‘지체 없이 행동하는 모양’이나 ‘어떤 일을 시원스럽게 해내는 모양’을 뜻하는 순우리말 부사다. 흔히 쓰는 “척척박사”나 “일을 척척 해내다”의 ‘척’과 어원이 같다.
행동을 거짓으로 흉내 낼 때 쓰는 의존명사 ‘척’과도 뜻이 다르다. 잘난 척이나 아는 척처럼 거짓으로 꾸미는 태도와 무관하다.
결국 “척 보면 안다”의 ‘척’은 한자어 단위에서 온 명사가 아니다. 허세를 부리는 흉내와도 거리가 멀다. 어떤 상황을 마주했을 때 망설임 없이 본질을 간파해 내는 우리말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부사적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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