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권 자유분권포럼 대표, 전 한국재정학회장
역대 정부는 지방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수많은 예산을 지방에 투입했다. 혁신도시도 만들고, 공공기관도 이전하고, 각종 지역개발사업도 추진했다. 그러나 지방은 발전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방은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하고, 정치권은 더 큰 지방 발전 공약을 내놓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광주·전남에 반도체 생산 공장 건설을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런데 만약 정치권이 권력을 동원해 반도체 생산기지를 결정하려 한다면, 이는 과거의 잘못된 지방정책보다 훨씬 위험한 발상이다. 예산 낭비는 돈을 잃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기업의 입지를 정치적으로 강제 배분하는 것은 그 후유증이 수십 년, 아니 몇 세대에 걸쳐 이어진다. 돈을 뿌리는 정책이 소총이라면, 기업 입지를 권력으로 결정하는 것은 핵폭탄에 가깝다.
지역발전은 중앙정부가 만드는 게 아니다. 중앙이 권력으로 만드는 발전은 진정한 발전 아닌 지역의 예속화다. 지역은 스스로 발전할 능력과 책임을 잃고 중앙의 지원만 바라게 된다. 중앙의 보조금이 끊기면 생존할 수 없는 구조가 된다. 이것이 ‘지방 살리기가 지방을 죽인다’는 역설이다. 지역발전의 핵심은 돈이나 기업의 강제 배분이 아니라 정책의 자유다. 지역을 발전시키겠다고 기업을 배치할 게 아니라, 지역이 스스로 기업을 유치할 수 있도록 규제와 제도의 자유를 줘야 한다. 지역이 경쟁력 있는 세제와 산업정책을 설계하고, 기업이 스스로 투자하고 싶어지는 환경을 만드는 게 진정한 지역발전이다.
우리 헌법의 경제질서는 자유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한다. 국가권력보다 개인과 기업의 자유로운 선택이 우선한다는 뜻이다. 기업의 입지 결정은 단순한 부동산 선택이 아니라,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수십조 원이 투입되는 반도체 공장은 시장 접근성, 인력 확보, 협력업체 네트워크, 물류와 전력·용수 등 많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된다.
기업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스스로 책임진다. 잘못된 투자는 손실로 이어지고, 경우에 따라 기업의 존립 자체를 위협한다. 경제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나 정치권이 기업의 자유를 박탈하고 입지를 결정한다면 책임은 사라지고 정치만 남는다. 그 결과 기업 경쟁력은 약해지고 지역경제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지 못한다.
중앙 권력은 종종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말한 ‘치명적 자만’(fatal conceit)이다. 정치권은 자신들의 결정으로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지만, 역사적 경험은 정반대를 보여준다. 권력이 만든 지역발전은 실패했고, 시장과 자유가 만든 발전만이 지속됐다.
삼성과 SK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정권은 4년짜리 시한부 권력이지만 기업은 수십 년, 수세대에 걸쳐 존속한다. 삼성과 SK는 특정 정권의 정책 수단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를 떠받치는 국민의 기업이다. 정치적 요구가 아니라 경제적 판단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지방을 살리는 길은 기업을 강제로 지방에 보내는 게 아니라, 지역에 자유를 주는 것이다. 기업의 위치를 중앙이 정하는 나라가 아니라 지역이 자유롭게 경쟁해 끌어오는 나라가 돼야 한다. 그것이 기업도 살고 지방도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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