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 때문에 불안하다는 착각
다우치 마나부 지음│김정환 옮김│부키
상품보다 먼저 불안부터 판매
‘상대적 박탈감’ 메시지 부풀려
공포 마케팅 조장할수록 수익
서둘러 투자하면 대부분 낭패
노후 대비법엔 ‘돈’ 이외에도
경험·지식·동료 선택지 다양
우리는 항상 돈에 쪼들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살아간다. 땀 흘려 일해 돈을 벌고, 아껴서 저축하며 사는데, 남들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누구는 집값이 올라서 떵떵거리고, 누구는 투자해서 수십 배를 챙겼다는 말이 연일 들려온다. 인구는 감소하고, 물가는 상승하고, 노후 자금은 부족한데, 이대로 가만있으면 안 될 듯한 불안에 마음이 초조하기만 하다.
해소되지 않는 불안은 강박이 된다. 그 탓에 오늘날 한국 사회는 돈 때문에 반쯤 정신이 나가 있다. 노년을 위해 현금 10억 원이 필요하다는 공포 마케팅, 주식과 코인과 부동산 등에 ‘투자 안 하면 손해’라는 유혹은 멀쩡한 사람을 ‘돈미새’로 만든다. 너도나도 ‘삼전닉스’를 외치고, ‘텐배거’를 부르짖고, ‘달까지 가자’고 소리 지른다.
‘돈 때문에 불안하다는 착각’에서 일본 작가 다우치 마나부는 ‘돈 있으면 안심’이란 관념을 강하게 비판한다. 사람들은 흔히 앞날을 대비하려면 넉넉한 자산, 든든한 통장 잔액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믿음은 돈에 대한 불안을 조장하고, 그걸 이용해 큰 이득을 얻어 온 세력이 퍼뜨린 허위의식이다.
저자는 투자의 최전선인 골드만삭스에서 16년간 일하면서 이를 깨달았다. “돈에 대한 불안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돈에 대한 불안을 계속 부풀리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상품을 팔기 전에 먼저 불안부터 판매한다. 언론과 광고를 통해서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하고, ‘투자가 노동보다 유리하다’ ‘빨리 투자 안 하면 뒤처진다’ 등의 메시지를 퍼뜨려 초조함을 유발한다.
국가도 불안을 부추긴다. 2019년 일본 금융청은 ‘노후 자금으로 2000만 엔 부족하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그 금액은 이후 3000만 엔, 4000만 엔으로 늘었다. 이 말을 믿고 ‘돈의 불안’에 쫓기던 사람들은 서둘러 투자에 뛰어들었다가 대부분 낭패를 봤다. 펀드 매니저 출신으로서 다우치는 거듭 강조한다. 돈의 프로도 투자로 돈을 버는 건 무척 어렵다. ‘개미’가 투자해서 쉽게 돈을 버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자산 운용에 대한 책 대신 돈에 대한 불안을 무찌르는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이유이다.
직접적 계기는 ‘돈 때문에’ 허우적대는 청년들을 자주 만나면서부터다. “사랑, 동료, 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에 ‘돈’이라고 답하는 학생이 대다수였다. 자아실현보다 높은 연봉을 중시하는 청년도 늘었다. 노력하면 보상받는다는 전제가 붕괴한 사회에서 청년들이 투자 수익에 매료되는 건 자연스럽다. 그러나 청년 시절 우선할 건 돈 계산보다 내면에 가치의 축을 세우는 일이다.
다우치는 ‘멜론 주스 구매’를 예로 든다. 1000엔짜리 멜론 주스를 반값에 팔기에 사 마셨다. 그런데 다음 날 300엔에 팔고 있었다. 500엔에 산 나는 손해를 본 것일까? 숫자에만 주목하는 사람은 정답을 모른다. 진짜 중요한 건 주스 맛이다. 주스가 형편없다면, 어떤 값이든 손해일 뿐이다. 손익보다 먼저 내가 무엇에 만족하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가치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돈 불리기에 몰두하면 인생 초점은 어긋난다.
돈 있으면 안심이라는 착각은 관계 단절과 공동체 붕괴를 낳는다. 호혜에 바탕을 둔 돌봄을 상품과 서비스로 대체할수록, 돈 없으면 죽는다는 불안은 커지고 사회적 고립감은 깊어지는 까닭이다. 그러면 단단한 사회안전망을 바탕으로 노후에도 일할 수 있는 경험과 지식(인적 자본)을 쌓거나, 친구나 동료와 강한 유대(사회적 자본)를 이룩해 서로를 돌보는 선택지는 사라진다. 돈을 모아 안정을 사라는 메시지(금융자본)만 강조될 뿐이다. 그런데 노후 불안은 본래 인구구조와 사회복지 문제라 국가가 해결할 과제다. 개인이 감당하려 하면 해결은커녕 불안만 커진다.
흥미롭게도, 다우치는 청년들에게 투자하는 사람보다 투자받는 사람이 되라고 권한다. 저출생 고령화로 장차 돈이 있어도 나를 위해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사회가 온다. 이 사회에선 일할 수 있는 힘의 가치가 높아져, 노력으로 인생 역전할 기회가 증가한다. 그러니 자기 가치를 믿고 새 영역에 도전해서 투자받는 걸 목표로 하는 게 유리하다. 게다가 일에서 얻는 경험, 친구나 동료는 평생 사라지지 않는다.
돈에 대한 불안은 결국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집에 대한 갈망이다. 불안과 초조를 퍼뜨리는 세계에 맞서 나만의 경험을 쌓고, 친구나 동료와 함께 사회를 더 좋은 곳으로 이끌려 애쓰면, 자연스레 안심할 수 있는 거처가 생겨난다. 투자에 몰방해서 노후를 거는 대신 다른 삶을 꿈꾸는 이들이 마음에 담아둘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다. 272쪽, 2만 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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