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영채의 인문 디톡스

- (6) 죽음의 미메시스 :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계몽의 변증법’

 

근대 유럽서 탄생한 계몽 이성, 야만의 상태로 전락

진보 동력 합리성 퇴보… 신화 동경하는 대중에 가짜신화 줘

지식의 생산자 되려면 진리·지혜의 틀 깨고 나와야

 

몸을 기둥에 묶어 사이렌 유혹 버틴 오디세우스처럼

인공지능의 시대, 가혹한 ‘죽음의 미메시스 길’ 열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1.프랑크푸르트학파 두 거장의 공저 ‘계몽의 변증법’은 1947년 암스테르담의 크베리도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독일어책이 네덜란드에서 나온 것은, 전후 독일의 폐허와 같은 상황 때문이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냉전 시대로 접어든 서독의 반공주의 때문이었다. 크베리도 출판사는 히틀러 시대의 망명 지식인들에게 독일어 출판의 메카였던 곳이다. 나치가 몰락하고 전쟁이 끝난 이후인데도 ‘계몽의 변증법’이 여전히 망명지 출판사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지 않을 수 없다.

하버마스는 ‘계몽의 변증법’에 대해, 책의 판매 부수와 영향력이 극단적으로 불일치하는 책이라고 썼다. 전후 서독에서 구할 수 없었던 책의 어두운 통찰력과 매력은 소문을 타고 돌아다녔으며,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 프랑크푸르트대와 베를린자유대 학생들은 등사기 복사본을 만들어 책을 묶어 유통시켰다. 68혁명의 주역이 된 그 시대 젊은이들에게는 사도들이 숨겨둔 비밀문서와 같은 책이 ‘계몽의 변증법’이었던 셈이다.

‘계몽의 변증법’의 저작 과정과 구성도 독특한 모습이다. 미국에 망명한 두 저자가 원고를 등사기로 긁어서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 주변 동료와 지인들에게 회람시킨 것이 책의 출발점이다. 책의 구성은 세 장의 본문과 말미에 붙은 단편들, 그리고 첫 장에 딸린 두 편의 부록으로 이루어진다. 첫 장 ‘계몽의 개념’은 책의 주지를 요약적으로 담은 것으로 내용상으로 본문에 해당하지만, 부록으로 실린 호메로스와 사드에 대한 분석은 본문을 넘어서는 분량과 중요성을 지닌다. 이와 같은 기형적 구성도 전쟁 중이었던 시대의 긴박한 호흡을 감지하는 사람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2.‘계몽의 변증법’이 제기하는 기본 질문과 대답은 책 제목에 함축돼 있다. 근대 유럽에서 새로운 빛으로 등장했던 계몽 이성이 오히려 정반대 모습으로 전락했다는 것, 진보의 동력이었던 합리성이 인류에게 거대한 어둠을 초래했다 함이 논리의 바탕을 이룬다. 당시 전 세계 인구의 5%, 1억 명 가까운 인명 피해를 초래한 두 차례 세계대전의 참화가 그 배후에 있다. 전쟁의 엄청난 비극 앞에서 망명지의 저자들은 묻고 있는 것이다. 계몽의 빛을 추구했던 인류가 어쩌다 이런 야만 상태에 빠졌는가.

대답을 찾는 ‘계몽의 변증법’의 시선은 계몽 자체의 동력, 곧 근대 이성을 향해 모인다. 계몽이란 외부의 권위에 기대지 않고 자기 힘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상태이며, 중세의 미신으로부터 벗어난 합리성의 사유와 그로 인해 출현한 탈마법화된 세계가 요체를 이룬다. 그것이 왜 문제라는 것인가. 근대 문명을 만들어낸 계몽 이성이 자기가 만든 덫에 갇혀버렸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냉철한 이성이 냉정한 지배의 도구가 되어버렸다는 것, 자연 지배를 향한 인간의 의지 자체가 자기 지배의 폭력성을 품고 있었다는 것, 그럼으로써 진보는 퇴보가 되었고 계몽은 그 자체가 미신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의 대표적 사례가 자본주의와 파시즘의 작동 방식이다. 계몽의 산물인 자본주의는 냉정한 등가교환의 형식으로 신화의 세계를 파괴하고, 파시즘은 거꾸로 영혼의 폐허에서 신화를 동경하는 대중에게 가짜 신화를 제공한다.

신화는 죽은 자들을 살아 있는 존재로 대접하지만, 자본주의는 살아 있는 사람을 생명 없는 물건처럼 다룬다. 계몽된 종교로서 프로테스탄티즘은 비합리적인 제례와 교리 대신 성경 말씀을 믿음의 근거로 내놓지만, 그들이 정작 의지하는 것은 성경이 아니라 문자의 정합성일 뿐이다. 합리성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숫자가 계몽의 경전이 되고, 계산 가능성과 유용성이 윤리의 기본 척도가 된다. 논리가 복잡해질수록 체험 능력은 빈곤해지고, 판단 능력을 상실한 대중이 생겨난다.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몰개성과 단순성의 세계, 억압적 획일성은 파시즘의 묘판이 된다. 요컨대 파시즘의 가짜 신화는 계몽의 주체들이 조작 가능한 대중으로 변질되는 곳에서 옹립된다는 것이 ‘계몽의 변증법’의 진단이다.

3.‘계몽의 변증법’이 내놓는 현실 진단에서 가장 크게 울려 나오는 두 개의 명제가 있다. ‘자기보존의 노력이 덕의 유일한 기초’라는 스피노자의 말, 그리고 ‘아는 것이 힘’이라는 베이컨의 금언이다. 둘 모두 17세기, 근대성의 초입에 이정표처럼 놓여 있는 명제들이다.

스피노자가 세계의 기본 원리로 내놓은 주체의 자기보존이라는 명제는 근대성의 기본 원리가 된다. 이 원리는 바로 생존주의의 윤리, 생존 경쟁을 위한 전쟁터의 논리로 연결된다. 사회 진화론에서 확인되듯이, 객관적 원리가 도덕의 형식으로 변환될 때 문제가 생겨난다.

근대성의 전사들은 자기보존의 원리 속에서 윤리적 안식을 얻고, 배타적 생존주의의 이기심을 도덕의 굴레로부터 해방시킨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감정을 배제해야 하고, 자연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자기 지배가 선행되어야 한다. 자연은 주체의 몸 안에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가적 자기 관리의 실상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이자 ‘쥘리에트 이야기, 악덕의 번영’으로 대표되는 사드의 작품이며, 이들과 조응하고 있는 게 칸트와 니체의 윤리학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베이컨의 금언은 ‘지식이 권력이다’라는 또 다른 번역문과 정확하게 같은 말이다. 두 문장의 현저한 어감 차이는 명제 자체의 본질을 보여준다. 힘써 공부하라고 학생들을 독려하는 훈육자와 그것을 내면화한 학생의 순정한 시선은, 출세와 성공을 욕망하는 주체의 끈적이는 시선으로 덧씌워진다. 권력에 의한 통제 대상이자 지배 수단으로서의 지식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이들을 감싸고 있다.

이 명제가 지닌 진정한 문제성은 시선을 주체의 외부로 돌릴 때 드러난다. 자기에게 주어진 과제에 머리를 틀어박고 있는 한 왜소한 인간의 형상은, 밖에서 볼 때라야 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여전히 지식은 권력이지만, ‘지식=권력’이 앎의 지배자가 됨으로써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다.

4.대학이 진리의 전당이라 불렸던 때도 있었지만, 산학 연계의 현실 속에서 요구되는 것은 진리나 지혜 같은 것이 아니라 유용한 지식이다. 지식의 생산자가 되기 위해서 계몽의 주체는 진리와 지혜의 틀을 깨고 나와야 했다. 진리·지혜·지식은 ‘계몽의 변증법’의 용어로 말하자면 미메시스와 신화, 형이상학의 세계에 해당한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계몽의 행로는 하방이자 몰락의 길이다.

이제 한 세기가 지나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리는 중이다. 계몽의 변증법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가. 진리와 지혜의 세계에서 내려온 오늘날의 지식 생산자들은 이제 두 걸음 더 몰락해야 한다. 지식의 세계 밑에는 돈이 되는 지식으로서 정보의 세계가 있고, 또 그 아래에는 대용량 고속 처리를 기다리는 데이터의 세계가 있다. 더욱 가혹해진 생존주의 현실이 열리고 있다.

진리에서 데이터로 이어지는 몰락의 길은 몰두의 길이기도 하다. 과제 속에 머리를 파묻어야 하는 주체에게는 옆과 위가 보이지 않는다. 몰락과 몰두를 통해 생존에 성공한 주체가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 제 몸을 마스트에 묶어 사이렌의 유혹을 버텨낸 오디세우스처럼, 생존을 위해 내가 포기한 삶이 있다. 그 두 생 사이에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 내 안의 자연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죽음의 미메시스가 있다.

문학평론가

인물 설명

호르크하이머(1895~1973)와 아도르노(1903~1969)

이 책의 공저자 호르크하이머(1895∼1973)와 아도르노(1903∼1969)는 독일계 유대인으로서 프랑크푸르트대에서 만나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을 공유함으로써 지적 동반자가 된다. 호르크하이머가 프랑크푸르트대의 사회연구소 소장이 되고 아도르노가 합류하면서 비판이론의 명문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기틀이 마련된다. 나치가 정권을 잡은 후 두 사람은 뉴욕으로 망명해 사회연구소를 유지한다. 전후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연구소를 재건, 독일 비판이론의 중심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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