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서의 종말
로버트 D 카플란 지음 | 이영래 옮김 | 한국경제신문
T S 엘리엇이 1차 세계대전 직후의 정신적 폐허를 노래한 시 ‘황무지(The Waste Land)’가 한 세기 만에 지정학 책의 제목으로 돌아왔다. ‘지리의 복수’의 저자이자 미 국방부 국방정책위원을 지낸 로버트 D 카플란은 신작 ‘질서의 종말’(원제 Waste Land: A World in Permanent Crisis)에서 오늘의 세계를 1차 대전 패전 후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에 빗댄다.
정통성 있는 권위가 사라진 자리에 위기가 일상이 된 체제, 그리고 그 끝에는 히틀러가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그 무대가 지구 전체라는 점이다.
기술과 도시화로 세계는 전례 없이 긴밀해졌다. 하지만 이를 조율할 지배자도 정치적 일관성도 없다. 한 지역의 재앙이 실시간으로 전 지구적 위기로 번지는 구조에서 “통합된 세계는 숨을 곳이 없는 세계”가 된다. 과거 미국은 두 대양의 보호 속에 강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방어벽은 예전만큼 작동하지 않는다.
카플란은 구조의 힘만으로 역사를 설명하는 데 반대한다. 히틀러가 없었다면 홀로코스트도 없었듯, 때로는 개인이 역사를 움직인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스탈린 이후 가장 위험한 러시아 지도자이고, 시진핑(習近平)은 마오쩌둥(毛澤東)만큼 이념적이다. 문제는 독재 체제일수록 ‘불편한 진실’이 보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단기간에 승리를 거둘 것으로 오판했던 것처럼. 주요 강대국들이 독재자의 손에 있는 지금 세계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질서의 종말’ 시대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질서는 자유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질서 없이는 누구도 자유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홉스의 명제를 빌려 대중 민주주의가 아니라 안정과 역사적 자유주의를 통해 바이마르의 운명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차 대전 직전의 유럽이 한 세기의 평화를 당연하게 여겼듯, 우리도 지금의 질서를 영구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비극을 피하려면 비극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황무지에서 카플란이 건져 올린 교훈이다. 296쪽, 2만 원.
박세영 기자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