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통일융합연구원장

지난 10일 벨기에 브뤼셀 한·유럽연합(EU) 정상회담 공동성명은 분명했다.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불인정, 북·러 불법 군사협력 규탄, 북한 인권 개선 촉구가 담겼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겪는 유럽의 안보 인식과 북한 위협을 직접 마주한 한국의 현실을 보여줬다. 정부로서는 부담스러웠겠지만, 적어도 국제사회 앞에서는 원칙을 밝힌 셈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정부는 국내 설명에서 그 의미를 축소했다. “새로운 내용은 없다” “EU요구로 강도가 높아진 게 아니다”라는 말이 나왔고, 북한을 자극해 실익이 없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그러나 북핵은 우리의 생사를 위협하는 안보 문제이고, 북한 인권은 북녘 동포와 납북·억류된 우리 국민의 생사 문제다. 유럽도 선명하게 말하는 사안을 정작 당사자인 우리가 북한 심기부터 살핀다면, 그것은 신중함이 아니라 스스로 권위를 낮추는 일이다.

선택적 조심성과 선택적 단호함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5월 20일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우리 국민 억류에 격노해 강경 대응을 주문했고, 활동가 2명은 다음날 석방됐다. 그렇다면 북한에 10년 넘게 억류된 선교사들 앞에서는 왜 같은 분노와 집요함이 보이지 않는가. 지난해 12월 3일 기자회견에서 “처음 듣는 얘기”라는 대통령의 답변 뒤 정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석방과 송환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6개월이 넘도록 국민이 들은 것은 그 다짐뿐이다.

전임 정부의 평양 무인기 논란에는 우리가 먼저 유감을 표했고, 대통령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반발을 이해하는 듯한 뉘앙스마저 보였다. 그렇다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금강산 관광객 피살, 아웅산 테러, KAL기 폭파에 대해 북한이 단 한 번이라도 사과했는가. 국민 보호도, 인권도, 안보도 상대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

언제나처럼 북한은 고마워하긴커녕 더 날을 세웠다. 한·EU 공동성명 이튿날 북한 외무성 산하 ‘10국’은 “평화의 가면을 벗어던졌다”며 한국을 적대국으로 대하는 원칙은 불변이라고 못 박았다. 국내에서 애써 낮춘 문구를 북한은 가장 예민하게 받아쳤다. 북한의 반발을 피하려던 말의 조절은 북한의 적대 인식조차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14일 바티칸 성 바오로 대성당 미사에서, 전날 우리 정부를 비난한 북한을 향해 체제 존중과 평화공존을 말했다. 문재인 정부도 비핵화 의지를 대변해 주고 종전선언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힘을 쏟았지만, 북한은 “삶은 소대가리” “겁먹은 개” 같은 모욕으로 답했다. 포용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포용이 상대의 적대와 모욕 앞에서 침묵하는 일이 돼서는 안 된다. 우리만 조심하고, 우리만 사과하고, 우리만 평화를 읊는다면 그것은 균형도 전략도 아니다. 비굴함이 평화를 불러온 역사는 없다.

더욱이 외교·안보에서 일관성은 미덕이 아니라 생존과 신뢰의 조건이다. 유럽에서 할 말을 했다면 국내에서도 당당히 설명해야 한다. 이스라엘에 분노했다면 북한에도 분노해야 한다. 공동성명에는 원칙을 담고 국내 발표에서는 흐리는 외교, 국제무대에서는 비핵화와 인권을 말하면서 현실의 억류자와 핵 위협 앞에서는 북한의 선의에 기대는 외교는 누구도 안심시키지 못한다. 동맹에는 불안을, 북한에는 오판 여지를, 국민에게는 혼란을 줄 뿐이다. 우리만 홀로 참는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그것은 굴종이다.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통일융합연구원장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통일융합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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