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경제부 차장
지난 주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증시를 언급한 부분이었다. 그는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코스피 5000 달성’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금 코스피는 8000선을 오르내린다. 이 대통령은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을 “비정상의 정상화 과정”이라 했다. 한국 증시는 제도 탓에 저평가됐고 개인투자자들에게 불리한 구조였다는 의미다. 주식으로 돈 벌 기회를 이재명 정부가 준 것이란 정치적 메시지인 셈이다.
경제 이슈가 정치와 엮일 때 그 파괴력은 대단하다. 특히, 정부의 경제 실정에 대중의 분노가 화학적으로 결합할 때 더욱 그렇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이 그랬다. 당시 갖가지 규제로 치솟는 집값에 분노한 대중은 차기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을 표로 심판했다. 이런 전철을 아는 이 대통령은 발상의 전환, 즉 부동산으로 흐르는 자금의 물줄기를 증시로 틀어버리는 시도를 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목표로 한 상법 개정,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은 증시 부양에 좋은 재료가 됐다. 부동산에서 비롯된 서민들의 박탈감과 분노는 자신의 주식이 오를 것이란 기대감에 상쇄됐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라는 행운도 따랐지만, 이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이 코스피 8000 돌파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
하지만 돈을 향한 욕망은 끝이 없다. 자본시장 정책이 언제나 투자자들 편에서만 이뤄질 수도 없다. 주식 가치 역시 오를 때가 있으면 떨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대중은 자신의 주가가 떨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국내 주식거래 활동계좌 수가 약 1억500만 개(2026년 5월 기준)를 돌파했으니, ‘개인투자자=유권자’라고 해도 무방하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치 재료가 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선 합리성보다는 정치적 셈법이 더 우위에 선다. 선거를 앞둔 정부와 여당은 개인투자자들이 손해 보는 정책을 쓸 수 없었고, 지금 시장은 과열을 넘어 투기판으로 변질되는 듯하다. 반도체 일부에만 투자가 집중되고 있을 뿐 다른 기업들은 ‘돈맥경화’에 허덕인다. 시장 유동성은 넘치지만 정작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기업공개(IPO) 등의 시장성 자금조달이 어려워 은행 대출에 기대는 아이러니가 나타나고 있다.
주가 상승이 가계 자산을 늘리는 데 그치면 일시적 호황이지만, 그 자금이 기업의 신규 투자·R&D·고용 창출로 이어져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면 구조적 도약이 될 수 있다. 1980년대 일본은 막대한 시가총액을 누렸지만, 그 자금이 신산업으로 가지 못하고 부동산·주식 재매입에 머물며 ‘잃어버린 30년’을 겪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책은 증시 자금이 산업으로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 과정이 개인투자자들의 이익에 항상 부합하진 않겠지만, 정부와 여당은 냉정을 찾아야 한다. 정책의 시야가 ‘코스피 10,000’에 갇히는 순간, 증시는 거대한 투기판으로 전락하고 증시의 정상화는 증시의 정치화로 변질된다. 증시 정상화의 성패는 5년 뒤 잠재성장률이 얼마나 올랐는지에 달려 있다. 선거는 끝났고 시장의 열기를 가라앉힐 시점이다. 막대한 증시 유동성이 기업 성장과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게 하는 방안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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