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東京) 도심 재개발 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강제 퇴거 압박’이 다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일본 거품경제 시절 벌어졌던 방화와 폭력은 물론 최근에는 임대료를 대폭 올리거나 통행을 방해하는 방식까지 동원되면서 수법도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니혼게이자이(日本経済)신문에 따르면 일본 경찰은 지난 2월 도쿄 시나가와(品川)구 재개발 예정지 인근 주택가에서 연쇄 방화를 저지른 혐의로 부동산 개발업체 직원 등 6명을 체포했다. 이들은 토지 매입에 끝까지 응하지 않는 주민들을 압박해 이주시키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지역의 공시지가는 올해 1월 기준 1㎡당 228만 엔(약 2150만 원)으로 10년 전(128만 엔)보다 약 80% 상승했다. 재개발 사업이 늦어질수록 금융 비용 부담이 커지자 일부 개발업체들이 무리하게 사업 속도를 끌어올리려다 극단적인 수법까지 동원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에는 노골적인 폭력 대신 법의 허점을 이용한 압박도 늘고 있다. 2023년 도쿄 네리마(練馬)구에서는 퇴거를 거부하는 주택 주변에 철제 펜스를 설치해 귀가를 어렵게 만들고 개인 소유 도로(사도)의 콘크리트 일부를 무단 철거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해 도쿄 세타가야(世田谷)구에서는 노후 아파트 주민들을 상대로 퇴거 소송을 제기했다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자 임대료를 기존보다 1.5배 인상하겠다며 다시 소송을 제기해 압박한 사례도 있었다. 결국 주민들은 이주비를 받고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 같은 현상이 1980년대 후반 일본 거품경제 시절 벌어졌던 이른바 ‘지상권 분쟁’을 떠올리게 한다고 보도했다. 당시에도 개발업체와 투기 세력이 토지를 확보하기 위해 폭력조직을 동원하거나 강압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일이 잇따랐다.
전문가들은 재개발 사업 과정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나카조 야스히코(中城康彦) 메이카이(明海)대 부동산학부 교수는 “불법 행위와 악성 토지 매입을 막기 위해 재개발 지역 등에 한해 거래 전 전문가가 권리관계나 소송 여부, 리스크 등을 면밀하게 파악하는 자산 실사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윤정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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