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 연화사에서 열린 ‘청년밥심’ 에선 사찰음식 명장 선재스님의 레시피대로 조리된 점심 차림이 제공됐다.  박동미 기자
지난 16일 서울 연화사에서 열린 ‘청년밥심’ 에선 사찰음식 명장 선재스님의 레시피대로 조리된 점심 차림이 제공됐다. 박동미 기자

“아, 진짜? 선재스님이 오세요?” “우와, 오늘 선재스님이 해준 밥 먹는 거예요?”

‘흑백요리사2’로 잘 알려진 선재스님의 당근국수를 맛볼 기회가 갑자기 생겼다. 선재스님은 인기 셰프들과 심사위원들이 내내 상찬했던 사찰 음식의 명장 아닌가. 그리고 호기심과 미식을 자극했던 바로 그 요리. 심지어 무료다.

지난 16일 낮 12시.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에 자리한 사찰 연화사에 모인 대학생들은 잔뜩 상기된 표정이다. 매주 화요일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는 ‘청년밥심’에 당첨돼 공양간(식당)을 찾은 이들. 이날은 총 120명이 초청됐다. 청년밥심에 선재스님이 출격했다고 하니 취재진도 기대감이 차오르는 걸 감출 수 없는데, 평소처럼 ‘공짜 밥’을 신청했다가 절에 와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된 학생들은 ‘로또’라도 당첨된 듯 환호했다.

지난 16일 서울 연화사의 ‘청년밥심’에서 학생들에게 직접 배식하는 선재스님. 연합뉴스
지난 16일 서울 연화사의 ‘청년밥심’에서 학생들에게 직접 배식하는 선재스님. 연합뉴스

당근국수만 있나. ‘오늘의 점심공양’ 메뉴를 보면, 절로 배가 부른다. 연입밥, 두부짜글이, 죽순오이무침, 상추겉절이, 양배추흑임자무침, 애호박·가지전, 참외무침, 오이지무침, 그리고 과일방아화채…. 하나하나 선재스님의 레시피(요리법)대로, 스님과 함께 이 사찰 신도들로 구성된 청년밥심 봉사자들이 조리했다.

이날 스님은 배식 전 “음식을 꿀꺽 삼켜선 안된다”며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짧게 강연했다. 또, 배식을 직접 한 후에는 식사하는 학생들을 살피며 격려했다. 스님은 “당근이 우리 대신 뜨거운 태양을 받고, 흙 속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견뎠다”면서 “이런 음식을 먹으면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인내심이 생긴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음식은 서로의 마음을 나누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만들어 줍니다. 짜고 맵게 먹으면 성질이 급해지지만, 사찰음식을 먹으면 마음이 평화롭게 가라앉고 지혜가 생깁니다.”

지난 16일 서울 동대문구 연화사에서 열린 대학생 점심 제공 행사 ‘청년밥심’에서 선재스님이 사찰음식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6일 서울 동대문구 연화사에서 열린 대학생 점심 제공 행사 ‘청년밥심’에서 선재스님이 사찰음식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청년밥심 현장은 마치 선재스님의 팬미팅 같기도 했다. 공양간에 들어서자마자 일제히 휴대폰을 들고 선재스님의 사진을 찍던 학생들은 식사를 마친 후엔 다시 스님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오래도록 사찰을 떠나지 못했다. “흑백요리사에 나온 스님을 본 것도 신기한데, 그분의 요리까지 맛보다니 믿기지 않아요.” 얼른 식사를 마치고, 강의실로 돌아가야 한다고 한 경희대 학생 A씨는 “이 정도 ‘깜짝 선물’이면 수업에 조금 늦어도 어쩔 수 없다”며 웃었다. 이탈리에서 온 교환학생 B씨는 “한국의 사찰 문화를 경험하고, 점심도 공짜로 해결할 수 있어서 매주 연화사에 온다”고 했다. 이어, “흑백요리사는 안봤지만 친구들로부터 유명한 분이라고 들었다. 오늘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16일 서울 동대문구 연화사 ‘청년밥심’ 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차담을 나눈 도륜스님(왼쪽부터), 선재스님, 묘장스님.  박동미 기자
16일 서울 동대문구 연화사 ‘청년밥심’ 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차담을 나눈 도륜스님(왼쪽부터), 선재스님, 묘장스님. 박동미 기자

이날 배식은 선재스님뿐만 아니라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 도륜스님, 연화사 주지인 묘장스님까지 합세했다. 그리고나서 드디어 취재진에게 제공된 선재스님의 사찰 음식. 처음엔 다소 슴슴하다 싶었는데, 이내 그 깔끔함과 담백함에 매료된다. 연잎밥은 찰지고, 참외와 당근은 달고, 흑임자는 고소하다. 재료 본연의 맛이란 이런 것이구나, 저마다 감탄한다. 그런데, 이 맛이 과연 20대들에게도 통할까. 한국외대에서 영어 통번역을 전공한다는 C씨는 “평소 간이 센 배달음식을 자주 먹는데, 모처럼 건강식으로 내 몸을 아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방송을 보며 상상했던 맛과는 조금 다른 건 사실이다”며 웃었다.

16일 서울 연화사에서 열린 ‘청년밥심’에서 이날 행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유철주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홍보위원(맨 앞 왼쪽)과 선재스님. 학생들이 선재스님의 사진을 찍고 있다.  박동미 기자
16일 서울 연화사에서 열린 ‘청년밥심’에서 이날 행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유철주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홍보위원(맨 앞 왼쪽)과 선재스님. 학생들이 선재스님의 사진을 찍고 있다. 박동미 기자

연화사의 ‘청년밥심’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인근 경희대, 한국외대, 한국종합예술학교 학생들이다. 묘장스님이 3년 전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대표를 맡았을 때 만든 사업이다. 지금은 고려대 인근 개운사, 숭실대·중앙대 근처 상도선원도 동참하고 있다. 재단이 일정 비용을 대고, 나머지는 각 사찰이 충당하는 방식. 현재 조계종 기획실장인 묘장스님은 “청년밥심의 ‘심’은 마음 심(心)을 쓴다”며 “그저 한끼를 때우는 게 아니라 집밥 같은 편안함으로 청년들의 헛헛한 마음까지 달래주고 싶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재단 측은 앞으로 청주, 부산, 경산 등 지역 사찰로도 이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등 지속적인 운영을 약속했다.

박동미 기자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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