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6·25전쟁은 한때 미국에서 잊어진 전쟁으로 불렸다. 북한의 남침으로 발생한 전쟁이 중국의 개입으로 인해 교착상태에서 휴전으로 끝난 데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의 여파가 워낙 커서 6·25 참상은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탓이다. 6·25전쟁 당시 미군 전사자는 3만7000명, 부상자는 9만여 명에 달하는데도 비긴 전쟁이라는 오명 속에 참전 용사들도 침묵했다. 이후 대한민국이 전쟁의 폐허를 넘어 선진국으로 부상하자 6·25 참전 용사들은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자부심을 갖게 됐다.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전사들로 예우도 받게 됐다.

6·25 전시 납북자들은 휴전 후 73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망각된 존재들이다. 전시 납북자 규모는 10만 명으로 추산된다. 북한 김일성은 인민군 충원 및 강제 노동 등을 위해 조직적으로 납치해갔는데 납북자는 서울 지역이 2만3000명으로 가장 많다. 이어 경기 1만8000명, 충북 1만3000명, 강원 9000명 순이다. 이 가운데 유력 인사도 많았는데 독립운동가 김규식·조소앙, 소설가 이광수, 시인 정지용, 국학자 정인보, 사학자 손진태, 언론인 안재홍 등이 대표적이다. 전시 납북자 송환 문제는 1953년 정전협정에 포함되지 않았고, 후속 정치회담에서 다루기로 했지만, 흐지부지됐다. 전시 민간인 납치는 국제법상 전쟁범죄인데도 그냥 넘어간 것이다.

최근 방한한 줄리 터너 미 국무부 부차관보 대행이 납북자와 북한 억류자 가족 등을 만났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는 지난 10일 주한 미대사관에서 가진 터너 부차관보 대행 면담 때 “납북자 중 단 한 사람도 돌아오지 못했고, 대한민국 어떤 정부도 이 문제를 북한에 제기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납북자 생사 확인 등을 북한에 요구해달라는 서한을 전했다. 국민 보호는 국가의 제1 책무인데, 이를 방기한 것은 직무유기다. 하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기자회견 때 북한 억류 국민 관련 질문을 받고 “한국 국민이 잡혀 있다는 게 맞느냐”고 했다. 제 국민의 북한 억류 사실조차 모르는 지도자에게 납북자 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건 무리일까? 6·25 76주년을 앞두고 납북자 가족이 미국 대통령에게 요청한 것을 보면서 국가의 존재 의미를 새삼 되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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