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판준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장
해마다 맞는 호국보훈의 달 6월이지만, 2026년 6월은 회한으로 남을 것 같다. 졸속으로 추진 중인 정부의 ‘사관학교 통폐합과 육군사관학교의 지방 이전’이 가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로 개교 80주년을 맞은 육군사관학교는 국군의 모체인 국방경비대가 1946년 1월에 창설, 호국의 간성인 육군의 군사 리더를 육성해온 요람이다. 또한, 지난 80년간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등 전투 현장과 대(對)침투작전 및 교육훈련장에서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킨 호국용사들의 얼이 서린 곳이다.
특히 육사생도 1·2기는 계급도 군번도 없는 사관생도 신분으로 6·25전쟁에 투입돼 절반 정도가 목숨을 잃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이 열악하고 조악한 무기로 ‘맨주먹 붉은 피’로 공산군과 싸우고 버틴 전적지이자 역사의 현장이 지금의 육사 자리다. 위국 헌신과 군인 본분을 신조로 하는 국군의 성지나 다름없다.
이러한 상징성과 대표성을 가진 곳에 아파트를 건설하겠다며 육사를 지방으로 보내고 각 군 사관학교는 통폐합하겠다는 것이 온당한 정책인가? 가칭 ‘국군사관대학교’로 통합해 1·2학년 때는 공통으로 기초소양 교육을, 3·4학년 때는 육사·해사·공사로 각각 복귀시켜 전공 심화교육을 한다는 것이다. 목표 연도가 2028년이니 2년밖에 안 남았다. 교육시설이 채 준비되지 않아 통합 교육은 대전 자운대의 군부대 시설에서 임시로 하고, 교육이 끝나면 육사는 서울 아닌 전남 장성의 육군 상무대 군 시설로 이전시킬 것이라고 한다. 서울 육사는 폐교하고 전남 장성에서 재개교토록 한다는 것으로, 육사의 전통과 정신문화의 맥을 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부가 사관학교를 통폐합한다는 방침을 결정해 놓고 그 명분으로 찾아낸 것이 합동성 강화이나, 합동성은 고도로 숙달된 각 군의 전문성과 군사적 경험이 축적돼 잘 어우러져야 나올 수 있다. 중견간부 정도 경력이 돼야 구현할 수 있음을 예비역은 물론 현역들도 기본적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겨우 생도 1·2학년을 대상으로 2년간 교양 과목 소개 수준의 교육을 한 뒤 3·4학년 때 각각 분리 교육해 합동성이 강화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합동성 강화가 아니라, 단기간의 획일성 실험일 뿐이다. 사관학교별 고유의 전문성과 특수성을 무시한 획일성 교육을 2년간 한 다음 다시 육해공군의 특성에 맞는 교육을 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연구하고 검증해야 할 요소가 한둘이 아니다.
그동안 두 차례에 걸쳐 국회의원회관에서 정책 진단을 위한 전문가 포럼을 열어 객관적·논리적·이성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부는 어떤 반향도 없다. 오직 대통령 공약 사항이니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는 식이다. 국가안보의 백년대계를 좌우하는 중차대한 국방정책을 제대로 된 연구나 검증도 없고, 더구나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은 외면한 채 아무런 사회적 합의도 없이 밀어붙이니 우려가 크다.
정부는 ‘사관학교 통폐합과 육사 지방 이전’ 계획을 이달 말까지 최종 확정해서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열아홉 살 청춘의 끓는 피를 조국의 산하에 뿌리고 호국의 신이 된 생도 1·2기를 비롯한 수많은 호국 용사들에게 송구하고, 추모할 면목이 없는 2026년 6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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