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환 경남대 초빙석좌교수, 전 주파키스탄 대사
미국과 이란의 정상이 17일 종전 양해각서(MOU)에 서명함으로써 지난 2월 28일 개전 이후 109일 만에 전쟁이 멈추고 19일부터 스위스에서 후속 협상을 할 예정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개발 능력과 중동 지역에서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군사행동에 나섰고, 이란은 이에 맞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역내 무장세력 지원으로 대응해 왔다. 그 결과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세계 공급망이 흔들려 국제 경제도 큰 충격을 받았다.
이제 호르무즈 해협은 다시 개방되고, 국제 원유 공급도 정상을 되찾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호르무즈 해협 일대에 묶여 있던 선박들의 운항이 재개돼 에너지 수급 불안이 완화될 것이다. 그러나 미·이란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국제정치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의 세계라는 점이다. 미국은 자국의 안보와 국익이 걸렸을 때 군사력을 동원했다. 반면, 다수의 국가는 사태를 관망하거나 외교적 지지에 머물렀다. 냉전 종식 이후 기대했던 국제사회의 집단안보 체제가 실제 위기 상황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지난 1월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은 전 세계 전문가 13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응답자의 50%는 현재의 국제 정세를 ‘극도로 위험하다’, 40%는 ‘위험하다’고 평가했다고 발표했다. 중동에서는 이스라엘과 이란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져 왔고, 2022년에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서도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 지정학적 불안을 느낀 비핵국가들은 핵무장을 시도하면서 강대국 중심 체제인 핵확산방지조약(NPT)을 무력화하고 있고, 민간인을 겨냥한 테러까지 자행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14일 미·중 정상회담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면 미국이 방어할 것이냐”고 물었다고 공개한 바 있다. 중국이 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의 대결도 숨기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서 구축한 국제질서,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는 눈에 띄게 약해지고 있으며, 유엔안전보장이사회도 강대국의 거부권으로 인해 세계 평화 유지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만일 핵으로 무장한 북한이 군사적 도발이나 기습공격에 나선다면 과연 어느 나라가, 어떤 방식으로 한국을 도울 것인가? 이제는 1950년 6·25전쟁 때와 같은 국제적 대응을 기대하긴 어렵다. 미국은 동맹국들에 파병 요청을 했지만, 적극 호응한 국가는 거의 없었다. 국가안보는 냉엄한 현실 인식 위에서 설계돼야 한다. 우리는 자강 능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한편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해 나가야 한다.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 문제도 원자력추진잠수함 등 전략적 억제 능력을 확보한 뒤에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이번 종전 협상에서 기억할 인물은 파키스탄의 셰바즈 샤리프 총리이다. 필자는 주파키스탄 대사 재임 당시 펀자브주 총리였던 샤리프 현 총리와 한·파키스탄 관계 발전 방안을 여러 차례 협의한 바 있다. 최근 그가 보여준 끈질긴 대화와 중재 노력은 미·이란 간 군사행동 중단 합의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평화 중재 노력은 국제사회로부터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며,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기에 충분한 업적이다. 우리 정부도 이를 적극 검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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