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1표제가 시행됨으로써 이제 더불어민주당은 당원이 주인인 당원주권정당의 면모를 갖추게 됐습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지난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당헌 개정을 환영하며 쏟아낸 말이다. 전날 중앙위원회 의결로 8·17 전당대회부터는 당비를 내는 권리당원의 한 표가 대의원의 한 표와 똑같은 값어치를 인정받게 됐다. 이전까지 대의원의 한 표는 권리당원 약 17표의 대우를 받았다. 정 대표는 1인1표제 시행으로 국회의원들이 계파 보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의정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면서 “정당 민주화와 정당 개혁 깃발을 올린 노무현의 꿈도 이뤄지고, 민주적 국민정당을 주창한 이해찬의 꿈도 실현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1인1표제 도입은 민주당이 추진해 온 직접민주주의 강화 프로젝트의 연장선에 있다. 특정 계파나 보스가 당의 주요 결정과 공천을 좌우하면 민심에 반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2002년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 당시 당심(黨心)과 민심(民心)의 괴리를 막겠다며 국민참여경선단에 투표권을 내준 국민경선제가 시초다. 믿을 건 일반 국민밖에 없던 혈혈단신 노무현이 당권파 동교동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이인제를 꺾는 파란을 일으켰고, 이는 쉽지 않아 보였던 대선 본선 승리로까지 이어졌다. 지금의 1인1표제는 직접민주주의를 공천뿐 아니라 당 운영 전반으로 확대하는 의미를 갖는다.
국민주권주의가 민주공화국 정통성의 근원이듯, 정당이 당원주권주의를 추구하는 것에 이의를 달긴 어렵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의 폐해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민주주의의 역설’이 국내외 현실 정치에서 분명하게 확인되고 있다. 1인1표제가 민주당을 건강하고 유능한 정당으로 만드는 초석이 될 것이라는 정 대표 말에 물음표를 찍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무엇보다도 1인1표제는 당심과 민심의 심각한 괴리를 낳을 우려가 있다. ‘민주주의 하겠다는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민주당 강성 당원들의 파워는 이미 과거 계파 보스 못지않다. ‘범죄자 천국을 만들 거냐’는 우려에도 밀어붙인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삼권분립 원칙을 무시한 사법부 흔들기, 법치주의 근간을 흔드는 이재명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 추진 등 민주당의 잇따른 무리수는 강성 당원들의 압박을 빼곤 설명하기 어렵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온 한 민주당 인사는 “과거 계파는 시간의 중력을 거스를 수 없었지만, 이제 지지자들에게 한 번 찍히면 미래가 없다”고 했다. 이들에게 휘둘리는 정당이 국민 다수 여론에서 멀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민주당 권리당원 구성이 호남 지역과 40·50대는 과대대표하고 20·30대는 과소대표하는 구조라는 점도 당심과 민심의 괴리를 키우는 요인이다.
책임정치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도 1인1표제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당 지도부와 국회의원 등 직업정치인의 책무는 위임받은 권력을 행사하고 그 결과에 무한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주요 결정을 당원들 몫으로 떠넘기고 거수기나 꼭두각시 노릇에 머무르는 게 ‘주권자의 뜻을 따르는 일’로 포장되곤 한다. 이는 무책임 정치, 모험주의 정치로 이어진다. 검수완박을 주도해 온 민주당 인사들이 국가 수사역량 붕괴 우려에 대해 “일단 검수완박 해 보고 문제가 있으면 그때 보완하면 된다”고 말하는 게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강성 당원과 지지자들 입맛에만 맞는 정책을 추진하다 결과가 잘못되면 그때 가서 당원들 탓을 하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 당헌·당규상 매월 1000원 이상 당비를 6개월 이상 납부하면 투표권 있는 권리당원이 될 수 있다. 이들의 막강한 권한에 비춰보면 그 조건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전문가들은 선진국의 전통 있는 정당 중 이렇게 쉽게 당원이 돼 이렇게 큰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사례는 없다고 말한다. 강성 당원의 득세는 당심과 민심을 더 멀어지게 할 게 자명하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6·3 지방선거 결과가 분명하게 보여줬다. 민주당 지도부와 정치인들은 직시해야 한다. 당원주권 철학을 부정할 순 없지만, 직접민주주의는 절대선(絶對善)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