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기준금리를 31년 만에 최고치인 연 1%로 올린 일본은행의 우치다 신이치 부총재의 고백이다. 2024년 3월 마이너스 금리를 종료한 데 이어 이제 정상 경제로 복귀했다는 평가에도 불구, 불확실성에 몸서리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저금리 유지를 바랐던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의 신호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엔화 약세를 공격하는 미국의 경고(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와 뉴노멀이 된 ‘전쟁 인플레이션’에 짓눌렸다. ‘잃어버린 시대’의 출구가 고통의 끝이 아니라 연장임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때도 외환시장이 시발점이었다. 1980년대 일본은 인위적인 엔저로 수출에 날개를 달았다. 미국은 대일 무역적자에 시달렸다. 급기야 엔화 절상을 요구했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환율이 절반 수준이 됐다. 가격 경쟁력을 잃은 일본 수출이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와 부동산 대출 규제를 완화했다. 광풍이 불었다. 기업과 중장년층이 대박을 꿈꿨다. 부동산 불패에 주식 재테크 신화가 버무려졌다. 주가 상승→현금·담보가치 증가→대출 증가→부동산 투자로 주식과 부동산이 서로를 끌어올렸다.
닛케이 225 지수가 1985∼1989년 기간 3배 수준으로 상승했다. 시가총액 세계 50위 중 일본 기업이 33개였다. 도쿄 도심 땅값은 1985∼1990년 기간 2∼4배 상승했다. ‘황궁 땅값이 미국 캘리포니아보다 비싸다’는 말이 유행했다. 일본 정부는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1988년 9월 2.50%→1990년 12월 6.00%, 거의 수직 상승이었다. 거품이 터지기 시작했다. 닛케이 지수는 1989∼2003년 80% 폭락했다. 부동산은 1991년 기준 1500조 엔(현 환율 약 1경4253조 원), 인구 1인당 1210만 엔(약 1억1500만 원)의 자산이 사라졌다. 도쿄 상업지 가격은 1991∼2005년 기간 약 70∼80% 하락했다. 잃어버린 10년은 어느새 30년이 되고, 2024년 닛케이 225 지수가 옛 고점을 회복할 때까지 34년이 걸렸다.
주식·부동산·기업부채·가계부채가 동시에 터진 게 치명적이었다. ‘복합 자산 버블’의 폭발력이다. 경고가 왜 없었겠는가. 일본 정부는 “이번에는 다르다”고 자신했다. 경제 체질이 개선됐다고 했다. 일본식 경영, 일본 제조업을 치켜세우며 “미국을 추월한다”고 득의양양했다. 그런 기세였으니, 어설프게 강경 대응에 나섰다가 경착륙을 자초했을 것이다. 집값과 주가가 오르는 것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니다. 문제는 자산가격 상승이 부채 증가 속도를 추월할 때다. 과거 버블들이 똑같은 과정을 밟았다.
이재명 정부가 더 잘 알고 있을 버블 붕괴 스토리다. 반도체 초호황에 코스피 지수가 1년 새 3배 수준으로 급등했다. 삼성전자는 세계 시총 순위 10위 기업에 들었다. 서울 아파트는 매매·전세·월세의 트리플 강세를 71주째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의 월간 증가 폭이 21개월 만에 가장 컸다. ‘빚투’ 급증에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이미 4월에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반도체 호황의 부동산 시장 영향도 확연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일본과는 다르다’고 버티는 것 같다.
낙관론도 닮았다. 반도체 사이클 우려에도 ‘이번에는 다르다’는 말에 묻어가려 한다. 지난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기 대비 1.8%로 집계되자,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명목 GDP는 10.5% 성장해 50년 만에 두 자릿수를 달성했다”고 자랑했다. 고성장 시대가 다시 열린 것 같은 ‘착시’를 갖게 했다. 5월 취업자 수가 17개월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 20대 취업자가 43개월 연속 감소한 것, 가구소득 1분위(하위 10%)의 소득이 감소세로 돌아선 것,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26개월 만에 3%를 웃돈 것,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때 고점에 육박한 것 등에는 “경각심 유지”라는 상투적 답변만 한다. ‘보유세·양도세 인상’ 엄포(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 정도로 잠재울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버블 위기는 출구에서 터진다. 선제적 대응 없이, 자산시장 불꽃놀이에 빠져 있을 때다. 글로벌 긴축은 머니무브를 머니쇼크로 돌변케 하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 시장이 정부에 묻는다. 출구 비용, 감당할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