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국무회의가 끝나자 이재명 대통령이 A 장관을 따로 불렀다. “점심이나 하시죠.” 두 사람은 오찬을 함께하며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오래전 한국에서도 개봉된 영화 ‘레버넌트’ 얘기가 주요 소재로 등장했다. A 장관은 “대통령이 사석에서 종종 레버넌트 얘기를 하신다”고 밝혔다.
◇죽음에서 돌아온 자
‘레버넌트(Revenant)’는 ‘죽음에서 돌아온 자’라는 뜻을 가졌다. 19세기 아메리카 대륙의 산림 속에서 곰으로부터 습격당하고 비정한 동료로부터 반복적으로 살해당할 뻔했던 사냥꾼이 생존해 복수한다는 얘기다. A 장관은 “대통령은 ‘레버넌트’ 속에서 몇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나든 자신의 정치역정을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의 정치적 삶을 몇 차례에 걸친 ‘정치적 살해’ 시도와 연관시켜 설명하고자 하는 대통령의 인식은 X에 직접 올린 글에서도 나타난다. ‘검찰의 조작기소를 통한 사법살인, 테러범을 동원한 흉기살인, 조작언론을 동원한 명예살인. 이 위중한 3대 살해 위협으로부터 국민, 곧 하늘이 저를 살려 주셨습니다.’(5월 9일 X)
하지만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권력을 잡은 후에도 X에서 거론했던 ‘위중한 3대 살해 위협’ 중 해결되지 않은 게 하나 있다. ‘검찰의 조작기소를 통한 사법살인’이다. 대통령의 최대 희망사항 중 하나는 자신의 사건에 대한 검찰의 ‘조작기소’를 밝혀내 ‘공소취소’를 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미완의 생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취임 후 1년은 공소취소를 실현하려 분투했던 1년이기도 했다. 그는 지난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공소취소 이슈에 대해 “법과 상식대로 하면 된다. (검찰이) 잘못됐으면 취소하고, 잘못 안 됐으면 놔두는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은 “야당 입장에서는 중립적인 특검을 하는 게 낫지 않나”라고도 했다. 이는 공소취소 내용을 담은 ‘조작기소 특검’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됐다. 대통령 입장에서 죽음에서 돌아온 레버넌트 서사의 완성은 공소취소의 실현에 달렸다.
◇연어술파티
대통령 재판 관련 사건 중 조작기소 의혹과 직접 관련 있는 사건은 단연 ‘쌍방울 대북송금’이다. 경기지사 시절 측근이었던 이화영 전 평화부지사는 대법원에서 징역 7년 8개월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최대 쟁점은 이 전 부지사가 당시 지사였던 대통령에게 대북송금 사실을 사전 보고했는지 여부다. 그 결과에 따라 대통령에게 치명적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여기서 ‘연어술파티 위증’ 사건이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수사검사가 이 전 부지사를 연어술파티로 회유해 당시 지사였던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근거로 대통령을 재판에 넘겼다고 주장해왔다. 조작기소라는 것이다.
민주당은 피고인의 주장을 권력형 조작기소의 결정적 증거처럼 밀어붙였고, 이를 공소취소까지 가능한 조작기소 특검법 논의와 연결했다. 민주당은 실제로 6·3 지방선거 후 대통령 사건의 공소취소 권한을 특검에게 부여하는 내용의 ‘조작기소 특검법’을 추진 중이다.
민주당의 의혹 제기는 진상 규명이라기보다는 조작기소 - 공소취소를 위한 전략적 프레임에 가까웠다. 연어술파티 의혹은 대통령 관련 대북송금 재판의 정당성을 공격하는 정치무기가 됐다. 피고인인 이 전 부지사의 방어권은 여당의 공격권이 됐고, 수사검사는 조리돌림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법원은 이 전 부지사의 연어술파티 위증 혐의에 대해 유죄라고 판단해 징역 4개월을 선고했다. 거대한 정치적 동원 끝에 남은 법적 실체는 왜소했다. 국민참여재판 1심 법정에서 조작기소를 향한 용감한 증언이라는 거대한 서사는 권력 보위를 위한 위증으로 판별됐다. 연어술파티 위증으로 권력의 자기구제 개입 시도는 위기에 빠지게 됐다.
◇권력의 습성
연어술파티 의혹은 피고인의 진술 번복을 집권세력의 재판 무력화 서사로 가공한 사건이었다. 법정은 그것을 위증으로 판단했지만, 민주당은 이미 거짓을 사실처럼 유통시킨 뒤였다. 문제는 한 사람의 거짓말보다, 그 거짓말을 국가적 의제로 키운 권력의 습성이다.
권력자가 자기 재판을 지우기 위해 소추기관을 부도덕한 조작기소 세력으로 몰아간 사례는 적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형사기소들을 “무기화한 사법기관의 음모”라고 불렀다. 재집권 뒤에는 그 프레임을 국가 공식문서의 언어로까지 끌어올렸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부패 혐의로 기소되자 검찰을 향해 “마녀사냥” “쿠데타 시도” “조작 수사”를 했다고 주장했다. 네타냐후 사례는 한국 상황과 닮은 부분이 많다. 그는 자신의 형사사건을 단순 방어하지 않고 ‘선출된 지도자를 제거하려는 사법·검찰 쿠데타’로 재구성했다. 네타냐후에게 법치주의는 ‘정치투쟁의 하위 장르’에 불과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전 총리는 자신의 부패 사건을 둘러싼 재판에서 검찰과 판사를 정치적으로 우파 지도자를 박해하는 ‘좌파 사법권력’으로 몰았다. 수사·기소기관을 조작세력으로 뒤집어씌우는 방식도 동원됐다.
권력자가 자기 재판을 지우려 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수사기관을 범죄기관으로 몰아세우는 일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는 권력의 습성일 수도 있겠다. 연어술파티 의혹 역시 같은 문법 위에 있다. 민주당은 검찰이 대통령 측근을 회유해 위증하게 했고, 그 위증으로 대통령을 조작기소했다는 서사를 만들었다. 이 서사의 결론은, 대통령은 피고인이 아니라 피해자이며 따라서 기소와 재판은 정치공작이라는 것이다.
◇미완의 프로젝트
연어술파티 위증 사건을 복기해 보면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당시의 검찰 수사를 ‘내란 체제의 정치공작’으로 재분류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민주당이 지난 3월 11일 ‘윤석열 정권 조작기소 국정조사요구서’를 제출했을 때 국정조사 간사 이건태 의원은 “조작기소도 내란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재판 결과는 연어술파티 의혹이 집권세력의 내란청산 서사를 완성하는 사슬의 약한 고리임을 드러냈다. 집권여당은 뒤늦게 ‘실질적 무죄론’을 들고나와 조작기소 특검을 강행한다는 방침이지만, 민심이 용납할지는 의문이다. 대통령에게 레버넌트는 아직 미완의 프로젝트다.
전임기자, 행정학 박사
■ 용어설명
‘레버넌트’, Revenant의 사전적 의미는 저승에서 돌아온 자.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수차례 죽을 고비에서 살아남아 복수를 완성하는 휴 글래스 역을 맡았으며, 오스카 남우주연상 등 수상.
‘무기화한 사법기관’은 트럼프가 2020년 대선 결과 전복 시도 관련 형사소추와 재판에서 쓴 표현. 그는 재집권 후인 2025년 ‘연방정부의 무기화’를 조사·시정하겠다는 행정명령을 내리기도 함.
■ 세줄 요약
죽음에서 돌아온 자: 대통령은 죽음에서 돌아온 스토리인 ‘레버넌트’를 좋아해. 그의 입장에서 많은 살해 위협에서 살아남았지만, 아직 ‘조작기소를 통한 사법살인’은 해결 안 돼. 레버넌트 서사의 완성은 공소취소에 달려.
연어술파티: 이 시점에 이화영의 ‘연어술파티’ 증언이 대두. 민주당은 이 증언을 검찰 조작기소의 결정적 증거로 밀어붙여. 하지만 1심 법원의 연어술파티 위증 유죄 판결로 권력의 자기구제 개입 시도는 위기에 빠져.
미완의 프로젝트: 민주당은 피의자의 위증을 국가적 의제로 키우며 수사기관을 범죄화해 공소취소를 강행할 태세. 하지만 연어술파티 의혹은 내란청산 서사의 약한 고리. 대통령에게 레버넌트는 미완의 프로젝트로 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