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이 일어난 지 76년이 됐다. 포성은 멈춘 지 오래지만, 북한이 핵 협박 강도를 높이고 있어 또 도발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을 지울 수 없는 현실이다. 6·25 남침 직후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통해 유엔군 파병을 이끌며 북한을 격퇴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 덕분에 대한민국은 전쟁 폐허 속에서도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를 이뤄냈다. 서울시가 23일 광화문 광장 감사의 정원에서 개최한 6·25 참전 23개국 ‘감사의 빛’ 점등 세리머니는 그래서 더 각별하다. 자유 진영이 제2의 6·25를 막기 위해 한국과 함께할 것임을 재확인한 자리다.
1950년 1월 미국은 동북아 방어 최전선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실책을 범했다. 소련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은 미국이 애치슨라인을 긋자 한반도 공산화의 시간이 왔다고 판단했다. 북한 지도자 김일성은 남침 시 지하 남로당원의 대대적 봉기가 있을 것이라고 스탈린을 설득해 전쟁 승인을 받아냈다. 그러나 미국은 아시아의 공산화 도미노를 우려해 신속 개입했고 남로당의 봉기는 없었다. 6·25전쟁은 스탈린의 자만에 김일성의 오판이 겹쳐지며 발생한 비극이다.
대부분의 전쟁은 6·25처럼 국제 정세에 대한 오판 등이 중첩될 때 발생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1년 8월 탈레반 세력의 아프가니스탄 카불 점령에 쫓겨 미군이 굴욕적인 철수작전을 벌인 6개월 후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행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장악 때 수수방관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처럼 조 바이든 대통령도 불개입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가 나토(NATO)를 중심으로 자유 진영 연대를 이끌며 무기를 지원하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결사항전을 하자 수렁에 빠져들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베이징(北京)회담 때 “대만 문제를 잘못 처리하면 충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귀국길에 기자들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방어할 것이냐”고 묻자 “시 주석도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 답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시 주석의 도발적인 대만 관련 질문보다 충격적인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모호한 태도다. 그는 이후 중국 눈치를 보며 대만에 약속한 첨단 무기 판매까지 보류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 저자세가 시 주석의 대만 침공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때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 낫다”고 해 논란이 된 바 있다. 평화를 강조하는 취지였지만, ‘굴복하더라도 피를 흘리는 건 막아야 한다’는 뜻으로 적의 오판을 부추길 수 있다. 이 대통령은 6·25 75주년 때 SNS에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올렸고, 국무회의에선 “싸울 필요가 없는 평화가 진짜 안보”라고 했다. 그 전제 조건은 혹독한 훈련과 철통같은 대비 태세다. 함께 싸울 동맹이 있으면 더 좋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나토에 가입한 것은 지켜줄 동맹이 절실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최근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을 ‘비수(dagger)’라고 해 논란이 일었는데 이 발언은 분쟁 방지를 위한 준비 태세를 강조하기 위해 동원한 비유일 뿐이다. 비수 표현에 신경을 쓰다간 본질을 놓칠 수 있다. 그는 육군전쟁대 팟캐스트에서 “중국에서 볼 때 한국은 아시아 심장에 꽂힌 비수, 일본은 남중국해에서의 방패 같은데 그 남동쪽에 필리핀이 있다”고 3각의 지정학을 설명한 뒤 “세 동맹국과 소통·감시 체제를 만들면 전쟁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이 3국과 감시·정찰 시스템 킬 웹(Kill Web)을 구축해 중국의 대만 침공이나 북한의 도발을 막자는 게 핵심이다.
이 대통령이 전쟁 방지에 진심이라면 브런슨 사령관 제안에 귀 기울여야 한다. 군사주권을 내세워 허세를 부리며 전시 작전통제권 조기 전환에 집착하기보다 킬 웹을 검토해야 한다. 동맹·우방과 함께 북한을 육·해·공·우주에서 감시하면 제2의 6·25는 막을 수 있다. 험악해지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동맹국과 철벽 방어 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적의 도발 오판 틈새를 없애는 것이라는 점에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