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일기자의 여행 - 장마철 여행에 안성맞춤… 경기 안성

 

시인 박두진 고향 문학길 조성

호수 · 숲 경관 중심… 감탄 절로

SNS 명소가 된 하늘전망대도

 

걷는 중간엔 ‘강건너빼리’ 식당

외지 사람에게 추천하는 명소

선착장서 배 타고 들어갈 수도

 

원도심에는 ‘7080 추억의 거리’

오래전 학교 앞의 문구점 풍경

청년 공방과 마을 벽화도 볼만

 

공도읍엔 공장 같은 ‘올드타임’

아폴로·콩알탄 · 낡은 탈곡기…

옛 물건 가득 근현대사 박물관

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날 박두진문학길을 걷는 이들이 우산을 쓰고 금광저수지 수변의 하늘탐방로를 걷고 있다. 나무 덱을 초록의 숲 사이의 허공에다 놓아 만든 길이 S자로 유연하게 굽어 있다. 이 길은 저수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하늘전망대로 이어진다.
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날 박두진문학길을 걷는 이들이 우산을 쓰고 금광저수지 수변의 하늘탐방로를 걷고 있다. 나무 덱을 초록의 숲 사이의 허공에다 놓아 만든 길이 S자로 유연하게 굽어 있다. 이 길은 저수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하늘전망대로 이어진다.

안성=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이제 곧 시작될 장마에 때맞춘 여행을 제안한다. 여기는 ‘비가 와도’ 좋은 곳이 아니라 ‘비가 와서’ 더 좋은 곳이다. 경기 안성. 여행목적지로는 좀 낯설지도 모르겠다. 장마 여행 목적지로 안성을 꼽는 이유는 여럿이다. 우선, 수도권에서 가깝다. 장맛비를 맞으며 떠나는 여행이라면 가볍고 짧을수록 좋다. 두 번째 이유는 안성에 싱그러운 초록이 있어서다. 비가 내리면 자연의 초록 색감은 한층 더 짙고 깊어진다. 가장 근사한 초록의 색감이 금광저수지 수변에 있다. 수변을 끼고 이어지는 건 ‘박두진문학길’이다. 감성을 자극하는 빗소리를 들으며 시를 읽거나 걸을 수 있는 근사한 길이다. 박두진 시인의 자취와 만난다는 게 안성을 매혹적인 여행지로 꼽는 세 번째 이유다. 이 외에도 안성에는 ‘여행의 이유’가 참 많다. 도심에는 오래된 문구점의 추억을 장식으로 삼은 카페가 있고, 감각적인 공방과 사진관이 늘어선 ‘추억의 거리’도 있다. 오래된 물건을 가져다 만든 추억의 공간도 있다. 여기 소개하는 모든 곳이 다 비 오는 날에 더 좋은 곳들이다.

# 박두진 시인을 만나러 가는 길

안성이 자랑스러워하는 인물 중 단연 첫 번째가 박두진 시인이다. 박두진은 박목월, 조지훈과 함께 ‘청록파’로 활동했던 시인이다. 고향 안성에서 그는 가난했다. 훗날 가난했던 시절을 시인은 이렇게 회상했다.“나는 가난 속에서 자랐으나, 그 가난이 비굴함이 아닌 고결함으로 남기를 바랐다.”

고향에서의 삶은 가난했지만 그는 늘 고향을 그리워했다. 시인이 나이 쉰두 살 때 고향에 다녀와서 쓴 글을 읽어보자.“고향 안성, 내가 이 세상의 생을 받아 나서 잔뼈가 굵고…(중략)…나는 사실 모든 것들 이 고향 땅에서 얻었음에도 아무것도 이 고향을 위해 바친 것이 없다. 미안하다 미안하다.”그는 고향에 마땅히 돌려준 게 없어 못내 미안하다고 자책했다.

시인에게 고향 땅은 가난했으되 과묵하고 강직했던 아버지로 투사된다. 시인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 아무 말 없이 먼 곳을 바라보곤 했던 장면으로 남아있다. 6·25전쟁 중 피란생활을 마치고 수복된 서울로 돌아가기 직전에 아버지 묘소에 들른 시인은 시 한 편을 남긴다. 제목은 ‘고향’이지만, 시는 ‘아버지 무덤’ 얘기다.

“석죽(石竹)이랑, 산국화(山菊花)랑 한 묶음 산꽃들을 꺾어다 놓고 / 아버님! 부를 수도 울 수도 없이 /한나절 빈산에 목메어 본다. / 어쩌면 나도 와서 묻힐 기슭에 / 뜬구름 바라보며 호젓해 본다.” -박두진 시인의 시 ‘고향’ 중에서.

산꽃 몇 개 꺾어 ‘가난한 묶음’을 만들어서 아버지 무덤 앞에 바친 시인은, 흐느끼다 결국 꺼이꺼이 소리를 내어 울었다고 나중에 산문에 썼다.

1998년 세상을 떠난 시인은, 그 앞에서 그토록 목놓아 울었던 기좌리 선산의 아버지 무덤 바로 아래 묻혔다. 시에서 그가 ‘어쩌면 나도 와서 묻힐 기슭’이라고 예언처럼 말했던 자리다. 아버지 무덤 앞에서 울었던 자식이 그 옆에 묻혀 아버지가 됐고, 그의 자식은 또 그 앞에서 다시 꽃을 바치리라. 그렇게 고향은, 대를 잇는다.

안성 팜랜드의 초지에서 관광객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뒤로 보이는 줄 맞춰 자라는 나무가 측백나뭇과의 상록관목 ‘블루애로우’다.
안성 팜랜드의 초지에서 관광객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뒤로 보이는 줄 맞춰 자라는 나무가 측백나뭇과의 상록관목 ‘블루애로우’다.

# 시인이 고향에 돌려준 것들

고향에 마땅히 돌려준 게 없다고 시인은 자책했지만, 시인의 이름을 내걸어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근사한 걷기 길이 안성에 있다. ‘박두진문학길’이다. 힘찬 기운과 격정, 혹은 차고 맑은 정신이 스민 그의 시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선비같이 곧은 삶을 산 시인이 아니었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길이다. 그러니 시인의 문학적 자산에 힘입은 이 길은, 그가 만들지 않았어도 ‘그가 만든 길’이며 그가 ‘고향에 돌려준 길’이기도 하다.

박두진문학길은 금광저수지 수변을 따라 이어진다. 은퇴 후 고향으로 돌아온 시인은 말년에 저수지 북쪽 오흥리에 집필실을 내고 황혼의 시간을 보냈다. 박두진의 마지막을 함께한 고향의 자연이 바로 금광저수지였던 셈이다. 그를 기리는 길이 저수지를 끼고 만들어진 이유다.

박두진문학길은 1, 2, 3코스가 있다. 코스가 3개라지만 1코스 길 끝에 2코스가, 2코스 끝에 3코스가 이어지는 이른바 ‘주파식’ 코스는 아니다. 세 코스의 길 모두 시작점과 종점이 ‘청록뜰’로 같다. 청록뜰에서 출발해서 그곳으로 되돌아오는 건 1, 2, 3코스가 같지만, 1코스의 동선은 짧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되돌아오고, 2코스는 좀 더 크게, 3코스는 가장 큰 동그라미를 그린다.

1코스는 청록뜰에서 출발해 하늘전망대와 시인의 호를 따서 이름 붙인 정자, 혜산정을 보고 출발지점으로 되돌아오는 1.7㎞ 구간. 다 걸어도 25분쯤이다. 2코스는 혜산정에서 ‘강건너빼리’와 ‘데크(덱)쉼터’를 들렀다가 청록뜰로 되돌아온다. 3.1㎞에 46분이 소요된다. 청록뜰과 혜산정, 그리고 강건너빼리. 이런 특이한 이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뒤에서. 3코스는 중간에 저수지 남쪽 끝에 있는 꽃밭 ‘수석정 수변 화원’까지 다녀오는 가장 긴 코스다. 5.1㎞로, 대략 1시간 16분쯤이 걸린다.

명사(名士)의 이름을 달고 놓인 길은 대개 지루하기 마련이다. 인물의 흔적을 빠짐없이 들러야 한다는 무거운 의무감에 짓눌려 길의 재미나 주변 경관이 뒷전인 경우가 많아서다. 하지만 박두진문학길은 그렇지 않다. 길은 줄곧 호수와 숲 경관을 중심으로 이어진다. 그냥 ‘가장 아름다운 길’만 생각하고 길을 낸 듯한데, 그건 적절한 판단으로 보인다. 생전에 시인이 산책하던 수변 길이 곧 가장 아름다운 길이었을 테니까.

안성 원도심 주택가 골목의 담에 그려진 벽화. 벽화에 조명을 설치해 밤이면 불이 켜진다.
안성 원도심 주택가 골목의 담에 그려진 벽화. 벽화에 조명을 설치해 밤이면 불이 켜진다.

# 박두진문학길이 지나가는 곳들

이제 박두진문학길을 걸어보자. 시점이자 종점은 ‘청록뜰’이다. 청록뜰은 박두진 시인의 시와 삶을 기리는 공원이자 주차장이면서, 청록이란 이름은 시인이 속했던 ‘청록파’에서 가져온 것이다. 청록뜰에는 시인의 동상이 있고, 시인의 시가 있으며, 나무 덱으로 놓은 수변 산책로가 있다.

나무 덱이 놓인 수변 산책로는 낭만적인 정취가 뚝뚝 묻어나는 곳이다. 비 내리는 날 초록의 버드나무로 둘러싸인 나무 덱의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도 좋고, 장마철에 저수지 주변 산자락에 척척 내걸리는 운무도 근사하다. 나무 덱 난간에서 빗방울 떨어지는 고요한 호수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나무 덱 산책로를 걸으며 빗물이 수면 위에 동심원을 그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각진 생각은 둥글어지고, 마음은 말랑말랑해진다.

수변 덱을 따라 걷다가 개회나무 꽃을 보았다. 꽃을 보고 나무에 걸어둔 박두진 시인의 시 ‘꽃’을 읽는다. 시인은 꽃에서 선명한 비장미를 보았던 모양이다.“…/ 한 번만의 어느 날의 아픈 피 흘림 / 먼 별에서 별에로의 /길섶 위에 떨궈진 / 다시는 못 돌이킬 / 엇갈림의 핏방울. / 꺼질 듯 보드라운 / 황홀한 한 떨기의 / 아름다운 정적…” -박두진 시인의 시 ‘꽃’ 중에서.

청록뜰을 출발해 숲길을 따라 가벼운 경사면을 오르면 이내 하늘전망대다. 하늘전망대는 2024년 8월 완공한 원통형 전망대다. 빙글빙글 돌아서 올라가는 나선형 경사로를 따라 해발 50m 높이의 전망대 정상에 오르면 금광저수지 일대를 360도로 조망할 수 있다.

하늘전망대는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른바 ‘SNS 명소’로 떠오르면서 단숨에 안성의 간판 관광명소가 됐다. 비결은 ‘사진’이다. 독특한 형태의 전망대도 그렇고, 전망대와 연결한 허공에 놓은 ‘하늘탐방로’도, 전망대에서 보는 호수 경관 등도 사진에 담기 딱 좋은 소재다. 여기다가 짧은 여행을 선호하는 젊은층의 취향 변화도 안성의 하늘탐방로 인기에 한몫했다.

옛 추억의 물건과 공간을 전시하는 레스토랑이자 박물관인 ‘올드타임’ 입구의 편집숍.
옛 추억의 물건과 공간을 전시하는 레스토랑이자 박물관인 ‘올드타임’ 입구의 편집숍.

# 배를 타고 가는 식당, 강건너빼리

박두진문학길을 찾은 외지인들은 열이면 열, 이정표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문학길 2, 3코스가 들러서 가는 ‘강건너빼리’란 장소 이름 때문이다. ‘강건너빼리’는 매운탕과 닭백숙, 오리탕 등을 파는 식당이다. 개인이 운영하는 식당 상호가 어떻게 공적인 걷기코스 이정표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을까. 그건 바로 강건너빼리가 안성 사람들에게 공적인 명소로 간주될 정도로 특별한 식당이라서다.

지금은 좁은 시멘트 포장길을 내서 차를 타고 갈 수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강건너빼리는 배를 타지 않고는 갈 수 없었던 곳이다. 손님이 저수지 건너편에서 전화를 걸면 배가 와서 손님을 데려가는 식으로 식당을 운영했다. 식당이 있는 곳의 옛 지명은 ‘배아리골’. 배를 타고 가야 한다고 해서 ‘강건너배아리골’이라 불리던 곳이 강건너빼리란 식당 상호가 됐다.

어쩌다 이런 곳에 식당을 차렸을까. 식당 주인 이숙범(76) 씨는 26년 전, 남편이 세상을 뜬 뒤에 이곳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산길을 족히 2시간은 걸어야 닿는 오지까지 들어온 건, 순전히 남편을 잃은 상실감 때문이었다.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았단다. 그래도 먹고살기 위해 식당은 해야 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 오지로 들어갔으면서도 생계를 위해 거기서 식당을 해야 했으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본래 식당 자리에는 인근 부대에 주둔하던 미군과 그의 한국인 아내가 운영하던 카페가 있었다. 이 깊은 곳까지 손님이 들어올 리 없으니 장사를 했다기보다 그냥 취미 삼아 허름한 별장처럼 쓰던 곳이었다. 이 씨는 이곳으로 들어온 첫날 밤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판잣집에 누웠는데 얼기설기 얽은 지붕 틈으로 달이 보이더란다. 그렇게 시작한 식당이 이제는 알아주는 명소가 됐다.

강건너빼리는 외지 손님을 접대할 일이 있을 때 안성 사람들이 비장의 명소처럼 꺼내놓는 곳이다. 배 타는 재미에다 호수 뷰도 있고, 한 세대 전쯤의 MT 분위기도 느낄 수 있는 곳이니 외지인 입장에서는 앞장선 안성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느낌이 들 법도 하다. 박두진문학길이 놓인 뒤부터는 이제 데려가 주지 않아도 누구든 걸어서 갈 수 있다. 낭만적 감성을 즐기겠다면 물 건너편 ‘물방울 쉼터’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면 된다.

# 신상 카페가 된 오래된 문구점

비 오는 날, 안성 원도심 산책을 추천한다. 원도심에는 ‘7080 추억의 거리’가 있다. 특이할 것 하나 없어 보이는 평범한 도심의 상가골목처럼 보이지만, 한때 이 길은 안성과 천안을 잇는 가장 분주했던 신작로였다. 신작로는 안성시장까지 끼고 있어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길 양편으로 시장에서 흘러넘친 노점이 늘 가득 차곤 했었다. 지금은 좁고 한적한 골목이라 잘 믿기지 않는 얘기지만….

사실 도시로서 안성의 위세는 예나 지금이나 어정쩡하다. 한 번도 지역의 중심이 돼서 ‘좋았던 시절’을 지내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시해도 될 만큼 작은 도시도 아니다. 그래서 그런 걸까. 번성했던 도시의 원도심에는 ‘좋았던 시절’을 대표하는 노포(老鋪)가 있기 마련인데, 안성의 골목에서는 그런 곳을 찾아볼 수 없다. 흥청거렸던 과거도 없지만, 과거가 박제된 채 남았을 만큼 쇠퇴하지도 않았다는 얘기다.

아, 굳이 꼽는다면 오래된 가게가 딱 한 곳이 있긴 하다. 1968년 개업한 문구점 ‘재건사’다. 재건사는 지금은 문구점이 아니라 카페다. 문 닫은 문구점을 눈여겨보던 조재엽(39) 씨가 2018년에 그 자리에 레트로 풍 카페를 연 것. 카페는 문구점 시절의 재건사 상호를 그대로 쓰고 오래된 간판도 그대로 뒀다. 카페 한쪽에다 문구류도 진열해놓고 판다.

재건사커피가 들어선 건물은, 60년 넘게 문구점을 했던 홍원흥(87) 씨 소유다. 처가에 빌려준 돈을 떼이는 바람에 돈 대신 처남이 하던 문구점을 받은 게 홍 씨가 문구점 재건사를 개업한 경위다. 주변에만 서너 개의 ‘국민학교’가 있었는데, 학교마다 전교생이 5000∼6000명이나 되던 시절이었으니 “반경 100m 안에만 문구점이 다섯 개나 됐는데도 장사가 잘 됐다”고 했다. 성실함과 신의도 성업의 비결이었다. 홍 씨는 “장사를 하면서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켰다”며 “400원짜리 인주를 주문한 학교 교무실에 택시비 600원을 자비로 쓰면서 배달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 현역 문구점의 안 팔리는 물건들

문구점을 운영하며 번 돈으로 홍 씨는 건물을 지어 건물주가 됐다. 건물 입구의 타일 벽에는 한자로 크게 ‘洪元興’이라고 새겨져 있다. 무슨 중국집 상호인가 싶었는데, 자기 건물을 갖게 된 게 감격스러웠던 그가 건물에 자기 이름을 새겨놓은 것이었다.

이렇다 할 노포도 없고,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풍경도 잘 보이지 않으니 ‘7080 추억의 거리’는 이름값에 좀 모자란 느낌이다. 그래도 이 골목에는 젊은이들이 하는 공방이며, 사진관, 샌드위치 가게 등이 늘어서 있다. 추억의 거리와 잇닿은 성남동 골목에는 조선 시대 흥청거렸던 안성 장과 한 세대 전쯤의 안성을 추억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어, 그걸 찾아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안성에 또 한 곳 문구점이 있다. 이번엔 ‘현역’이다. 내혜홀초등학교 후문 앞의 ‘내혜올 문구 슈퍼’. 내혜홀은 안성의 옛 지명. 1000년 전쯤 지금의 지명인 안성으로 바꾸기 전까지 안성은 내혜홀이라 불렸다. 지대가 낮아 ‘낮골’로 불렸던 게 지명 유래다.

내혜홀 문구는 이른 아침이면 가게 앞에다 가설 평상을 놓고 좌판을 펼친다. 좌판에 올려놓는 건 조악한 오래전의 장난감들이다. 죄다 꼬질꼬질 때가 묻어 있다. 한눈에 봐도 골동품 수준이다. 네모 종이 딱지, 조악한 선글라스, 유행이 20년쯤 지난 캐릭터 장난감, 색 바랜 스티커…. 하나같이 누가 사갈까 싶은 물건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등굣길 아이들이 좌판에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어쩐지 안쓰럽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했던 건, 내혜홀 문구가 오래전 누추했던 학교 앞 문방구 풍경을 닮아서다. 그런데 정작 주인에겐 낡은 장난감이 추억의 소품이 아니라 당장 팔아야 할 ‘상품’이다. “어디서 이런 오래된 물건을 가져오셨냐”고 물었더니 주인이 발끈했다. “이거 다 새 거라고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족히 몇 년을 묵었을 법해 보이는 물건을 주인은 ‘며칠 전에 가져온 것’이라고 우겼다. 과거 시간 어디쯤 있던 쇠락한 문구점이 주인까지 데려와서 잘못된 시간에 불시착한 느낌이 들었던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 올드타임이 보여주는 오래된 시간

레트로 얘기가 나온 김에 한 곳 더. 안성 공도읍의 ‘올드타임’은 레스토랑 겸 카페이자, 근현대사 박물관이다. 겉으로 봐서는 무슨 공장 같은데, 안으로 들어서면 내부는 1980년대쯤의 공간을 재현한 드라마세트장을 연상케 한다. 상호 그대로 ‘오래된 시간’이 있는 공간이다.

추억을 떠올리는 옛 물건으로 가득한 카페 겸 레스토랑에서는 ‘경양식 돈까스’를 팔고, 안쪽의 박물관에는 아폴로, 달고나 등 옛날 과자와 콩알탄, 뱀주사위놀이, 종이인형 등 오래된 장난감, 그리고 낡은 탈곡기, 초창기 전기밥솥, 라면과 소주의 시대별 상품, 선거 벽보 등의 소품 등을 전시했다. 1970년대쯤 주택가 골목을 연출한 전시실에는 가정집과 대폿집, 구멍가게, 만화방, 제과점, 비디오대여점 등을 재현해 놓았다.

전시와 연출은 올드타임을 운영하는 조각가이자 수집가이면서 전시기획자인 임영곤(72) 씨가 도맡아 했다. 임 씨는 1980년대부터 옛 물건 수집에 몰두했다. 하나둘 사들인 추억의 물건이 창고 대신 쓰는 비닐하우스 한 동을 꽉 채웠을 무렵, 분당의 한 백화점에서 전시 제안이 들어왔다. ‘그때 그 시절’을 주제로 한 추억의 전시였다. 전시가 성공을 거두자 여기저기서 전시 제안이 쏟아졌다. 수집한 물건을 가져가 전시하기도 했고, 주문에 맞춰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고, 수집한 물건을 팔기도 했으며, 필요한 옛 물건을 구해주는 일도 했다.

그러다가 2021년 11월, 지금의 자리에 레스토랑 겸 전시장 문을 열었다. 내가 마련한 공간에서 내가 수집한 물품으로 연출한 공간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에서다. 부족한 돈으로 공간을 얻자니 외진 곳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는데, 임 씨는 그걸 못내 아쉬워했다. 임 씨 말대로 여기는 접근성이 워낙 떨어져 과소평가됐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비 내리는 날에 시인의 문학길에서 시작한 걸음이 여기 추억을 담아놓은 공간으로까지 이어졌다. 차분해진 숲길을 걷는 것. 비에 젖은 숲을 내려다보는 것. 빗방울 떨어지는 수면을 가만히 보고 있는 것. 그리고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과 공간을 만나는 것. 이 모든 게 다 비 오는 날에 해보면 좋은 것들이다.

■ 목장 체험 ‘팜랜드’

올드타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농협이 운영하는 팜랜드가 있다. 옛 한독목장 자리에 문을 연 테마파크 느낌의 농축산업 체험목장이다. 목장에서는 어린이 대상의 다양한 동물체험 프로그램이 인기다. 목장 뒤쪽으로는 드넓은 초록의 구릉도 있고, 코스모스가 만발한 벌판도 있다. 이국적이고 목가적인 경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팜랜드는 본래 1964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일 친선방문에 따른 기념사업으로 독일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세운 ‘한독낙농목장’이었다.

박경일 전임기자
박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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