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1946년 5월 독일 뮌헨의 피퍼(Piper) 출판사에서 한 조선인 망명자의 자전적 소설이 출간됐다. 경성의학전문학교 재학 중에 3·1운동에 가담했다 일제 탄압을 피해 상하이를 거쳐 독일로 간 이미륵(본명 이의경·1899∼1950)의 ‘압록강은 흐른다’였다. 유년 시절 기억에서 시작해 이국의 땅에서 눈을 맞으며 어머니의 부음을 듣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소설은 출간 즉시 독일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방인의 노스탤지어가 전후 폐허 위에 선 독일인의 마음을 위로했기 때문이었다. 신문·잡지에 100여 편의 서평이 실렸고, ‘괴테 이후 가장 아름다운 산문’이라는 찬사도 나왔다. 하지만 작가는 끝내 압록강을 다시 건너지 못하고 1950년 독일에서 눈을 감았다.

1959년 작가 전혜린이 처음 번역한 이 소설이 지난주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500번째 권으로 나왔다. 1998년 시작돼 국내 세계문학과 고전 붐을 만들고 이끌어온 세계문학 전집 500번 주인공에 어울리는 타이틀이다. 이 작품은 한국 작가가 독일어로 썼기에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학과 독일문학 그 어느 쪽에서도 온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하다 드디어 대표적 한국문학으로 세계문학 리스트에 올랐다.

‘압록강은 흐른다’ 이후 80년,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한국계 작가들의 성취가 눈부시다. 이민진의 ‘파친코’, 미셸 자우너의 ‘H마트에서 울다’ 등 미국 내 베스트셀러 작품들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엔 ‘장화홍련’을 모티브로 한 한국계 미국 작가 윤지현의 ‘그리고 강은 그녀를 끌어내린다’가 11개국에 판권 수출되며 K호러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다.

이들은 미국의 오랜 ‘이민 서사’ 전통에, 2020년을 전후한 문화 다양성 요구가 더해지고, 결정적으로 노벨 문학상까지 거머쥔 한국문화의 힘과 아우라가 결합한 결과이다. 이들 작품은 해외에서 인정받은 뒤 한국에 ‘역수입’되고 있다. 이에 탄력을 받아 한국 작가가 한국어로 써서 한국에서 출판해야 한국문학으로 여겼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한국문학의 품이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 ‘압록강은 흐른다’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동시에 세계문학의 정전에 오르는 기준은 시대를 뛰어넘는 작품성과 호소력이라는 오랜 진실을 다시 한번 말해주고 있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