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국제전략학
한반도 안보정세 구조적 변화
최근 주요국 정상들 연쇄회담
한국의 실용외교 공간은 위축
중·러 정상 두만강 항행 첫 언급
물류 넘어 동해 안보에 큰 영향
韓, 예측 가능한 협력 집중할 때
지난 5월 중순부터 약 한 달간 한반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주요국 정상들의 연쇄 회담이 진행되면서 한반도 안보 환경도 구조적 변화를 맞고 있다. 5월 14일 미·중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19일에는 한·일, 20일에는 중·러, 그리고 6월 9일에는 북·중 정상이 만났다. 미국과 이란은 6월 18일 종전(終戰) 양해각서(MOU)에 전격 서명했고, 프랑스에서는 이재명 대통령도 참석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있었다.
특히, 미·중과 중·러, 북·중 정상회담이 연속으로 개최된 것은 단순 외교 활동의 범위를 넘어 한반도 안보 환경의 구조적 변환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읽힌다. 이 3차례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최대 위협인 북핵 문제가 소외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거래적 동맹관’은 공식화했다. 이란 핵 문제는 2015년의 ‘이란 핵에 관한 포괄적 협의’(JCPOA)에도 못 미치는 핵 협상 시도가 아닌지 우려가 증폭되는 상황이다.
잘 알려진 대로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핵과 한반도 문제는 후순위로 밀렸다. 미국은 ‘북한 비핵화’에 공감대를 이뤘다고 했으나,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의견 교환’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강조하는 비대칭적 온도 차를 그대로 드러냈다. 중·러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에 대한 외교적 고립과 제재 반대’라는 내용이 공동성명에 명시됐고, 북·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대북 영향력을 재확인하면서 북한을 전략적 파트너로 인정했다. 우리에게는 한반도와 북핵 외교 공간이 그만큼 좁아졌다는 의미다.
물론 한국도 전략적 대응을 계속하고 있다. 5월 19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공동 안보 현안으로 재확인하고, 한·일은 물론 한·미·일까지 연계한 대응 공조를 재확인했다. 또, 사상 처음으로 한국군과 일본 자위대의 군사적 협력 관계 구축을 위한 실무자 회담도 열어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안정 유지를 위한 협력 의지를 공유했다. 다만, 일본은 ‘북한 비핵화’를 명시적으로 제시했고,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사용해 북핵에 대한 인식과 해법의 강조점이 다를 수도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나마 G7 정상회의에서 북핵과 관련한 약간의 진전이 있었음은 다행이다. G7 정상들이 지정학 현안 성명에서 북핵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입장을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과 짧은 대화를 통해 북한 문제의 평화적 해결 주도를 요청해 북한·한반도 문제를 주요 정상 외교 의제로 유지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억제와 국제 공조 강화에 방점을 둔 기조를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당연히 북한은 김여정의 담화를 통해 ‘핵 보유는 반드시 고수해야 할 핵심 이익’이며 ‘비핵화는 절대로 물러날 수 없는 불퇴의 선’이라며 핵 보유를 정당화하고 나섰다. 트럼프가 이미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언급한 전력이 있는 만큼, 비핵화 없는 핵 동결 협상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심히 우려된다. 여기에 중·러 정상회담에서 언급된 두만강 출해권(出海權) 논의도 북·중·러의 입장이 미묘하지만, 만일 군사 협력까지 이뤄진다면 동해의 안보까지 위험해진다. 물류의 언어로 포장된 안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최근 일련의 변화 추세는 한국이 실용외교를 표방하더라도 실제 선택지는 그리 넓지 않다는 점을 확인시켜 줬다. 특히, 미·중 경쟁이 격화된 현 상황에서 미국의 전략적 선택을 수동적으로 추인하거나, 중국과의 관계 복원을 명분으로 우리가 ‘비핵화 원칙’을 흐리는 것도 피해야 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중국 관련 갈등 요인과 미국의 통상·안보 압박 사이에서 과거식 ‘균형’이나 ‘전략적 모호성’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운 현실이 전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비핵화 원칙은 실질적으로는 공동화(空洞化)됐고, 북·중·러 전략 연대가 단단해지면서 ‘두만강 출해권’이라는 새로운 안보 변수까지 동해 공간에 투영되기 시작했다. 불확실한 동맹의 시대에서는 예측 가능한 협력이 국력이 된다. 한반도의 좌표를 냉정하게 파악하고, 선제적이고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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