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논설고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노먼 빈센트 필 목사를 가장 좋아했다. 1977년 그의 첫 결혼식 주례였고 필 목사 90세 생일 때는 자신이 호스트가 돼 잔치를 열었다. 트럼프 패밀리의 목사이자 멘토였다. 필 목사는 베스트셀러 ‘적극적 사고방식의 힘’을 펴냈고, 무려 54년간 매주 NBC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자신을 믿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성공과 번영을 이룰 수 있다.” 그의 설교는 특히 기업가들에게 인기였다.
필 목사는 딱딱한 교리 대신 대중의 심리를 어루만지며 공감을 끌어냈다. 이는 미국 대형교회(Megachurch)의 뼈대가 됐다. 거대 교회의 원형인 수정교회의 로버트 슐러 목사와 레이크우드교회의 조엘 오스틴 목사는 그의 제자를 자처했다. 필 목사는 성지 곳곳을 탐방했을 만큼 이스라엘을 좋아했다. 현대 복음주의 거두였던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도 가까웠다. 그레이엄 목사는 “유대인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며 기독교 시오니즘을 주도했던 대표적 친(親)이스라엘 인사다.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때는 위기에 빠진 골다 메이어 총리 요청으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움직였다. 미국의 대규모 수송기들이 이스라엘로 향했다.
트럼프도 이스라엘에 각별했다. 유대인인 재러드 쿠슈너를 사위로 맞았고 큰딸 이방카는 유대교로 개종했다. 대선 때 후원해준 기독교 복음주의에 대한 보답으로 이스라엘 대사관까지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유대인이 예루살렘을 온전히 차지해야 한다는 복음주의 진영의 정치적 요구가 반영된 결과였다. 트럼프는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수교하도록 ‘아브라함 협정’에도 공을 들였다. 드디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손잡고 이란 폭격까지 감행했다.
트럼프가 11월 중간선거를 의식해 이란과 종전 협상을 서둘면서 애증 관계가 뒤바뀌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란 핵시설과 미사일 전력을 제거하지 못한 채 레바논에서 철수하게 될 궁지에 몰렸다. 이란 신정체제는 붕괴는커녕 오히려 입지가 더 단단해졌다. 미국과의 균열만 커졌다. 트럼프는 종전 협상에 반발하는 네타냐후에게 험한 소리까지 내뱉었다. 무조건 이스라엘을 편들던 트럼프가 국익만 따지는 냉정한 관계로 바뀔지는 두고 볼 대목이다. 마가(MAGA)는 물론 미 내부 복음주의 진영의 반발이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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