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필 한성대 국방과학대학원 안보정책학과 교수
올 연말에 발간될 ‘2026 국방백서’에 북한에 대한 주적(主敵) 개념 적시 여부를 놓고 국방부와 통일부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국방부는 이전 ‘2022 국방백서’와 마찬가지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려는 반면, 통일부는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한 상태에서 주적인 북한과 평화 공존을 추구할 수 없다’는 부정적 견해와 함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논의를 주장했다.
국방백서상 북한을 주적이라고 처음 명시한 것은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에 달했던 1995년이다. 이후 ‘2004년 국방백서’에서는 ‘직접적 군사 위협’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하면서 북한을 특정하지 않았다. 이후 주적 개념은 역대 정부별 대북 기조에 따라 등장과 퇴장을 반복해 왔다. 이처럼 국방백서상의 주적 표현은 단순한 군사용어를 넘어, 역대 정부별 대북 인식과 안보정책의 방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과거의 논쟁에 머물러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 2023년 12월, 북한 김정은 정권은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며, 단일민족을 전제로 한 기존의 통일 담론을 부정했다. 아울러, 핵무력 고도화를 헌법에까지 명문화함으로써 대한민국 헌법 제3조의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는 영토관과 통일 지향 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북한은 올해에도 수차례 동해상 무력시위를 하면서 우리의 영토와 안보를 공공연히 위협하고 있다. 통일부의 대화 및 관계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시와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일관할 뿐 한마디 호응조차 없다. 오히려 최근의 미국·이란 전쟁을 보면서 핵무력 고도화를 더욱 내세우며 한·미를 향한 공세 강화에 열을 올린다. 또한, 중국과는 혈맹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러시아와는 러·우크라이나 참전을 계기로 더욱 밀착하며, 벨라루스와도 긴밀한 협력을 통해 뒷배를 든든히 다진다. 더욱이, 중·러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거부권 행사로 대북 제재의 실효성은 크게 약해졌고, 미·중 등 주요국의 유엔 분담금 체납(전체의 40% 이상)으로 국제사회의 분쟁 해결 체계마저 크게 흔들린다. 이는 결국 북한이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날 환경 조성으로 작용한다.
한편, 국제질서의 다극화와 재편은 한반도의 안보 불안정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현재 나토(NATO) 동맹국들은 미국 의존도를 낮춘 유럽형 안보 체제를 모색 중이다. 80년 만에 재무장을 선언한 독일, 영국·프랑스의 핵 억제력 확대 논의, 일부 회원국의 유럽연합(EU) 재편입 논의 등이 그 증거다. 북한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오히려 강대국 간 틈을 활용한 도발을 통해 한반도 안보 불안정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 문제는 정치적 편의보다는 ‘군사적 조건’을 우선해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은, 한반도의 안보 현실이 그만큼 엄중하며 핵을 앞세운 북한의 실존적 위협을 명확히 인식해야 함을 무겁게 말해준다.
북한이 노골적으로 대남·대미 적대 노선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당사자인 우리가 북한의 눈치를 보며 주적이라는 표현조차 피한다면 이는 안보 주권의 포기나 다름없다. 적을 적이라 부르지 못하는 ‘정치 수사적 안보’는 말장난에 불과할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용어를 둘러싼 논쟁이 아니라, 눈앞의 엄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주적 개념을 명확히 규정하는 일이다. 그것이 국가안보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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