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난 소니가 있는 곳으로 갈 거다. 남조선도 우리하고 다 같은 민족 아니겠어.” 축구선수를 꿈꾸는 북한 소년 한광민은 잉글랜드 토트넘에서 뛰는 손흥민 얘기를 무심결에 친구에게 한 뒤 학교 소년단 지도원에게 끌려가 ‘천 번 만 번 죽을죄를 졌다’는 반성문을 쓰고 풀려난다. ‘소니 사건’으로 광민이가 의기소침해지자 그의 어머니는 최신 잉글랜드 축구 복제 영상물을 사준 뒤 “넌 소니보다 훌륭한 선수가 될 것”이라고 격려했고, 이후 아들의 미래를 위해 탈북을 결행한다. 어머니가 중국 공안에 체포된 뒤 광민이는 홀로 중국과 제3국을 거쳐 한국에 오게 되는데 힘든 탈북 여정을 견디게 해준 것은 토트넘 등번호 7번이 새겨진 손흥민 사진이었다.
작가 정수윤 씨는 소설 ‘파도의 아이들’(2024)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 열광하던 북한 소년이 손흥민에게 끌려 탈북을 하는 과정을 이같이 그렸다. 일본 문학 번역가로도 알려진 정 씨는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남북청년모임에 참석해 13년간 탈북 청소년 100명과 교유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북한 소년 광민이가 한국의 여느 10대처럼 프리미어 리그 축구를 몰래 보다 토트넘의 손흥민 팬이 됐고, 그를 북극성 삼아 한국으로 향하는 모험에 나서 성공했다는 스토리는 감동적이다. 북한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해 한국 문화 전파를 막고 있지만, K팝·K드라마·K스포츠는 북한 주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데 실패했다는 것을 ‘파도의 아이들’에 나오는 탈북 청소년들이 증명해준다.
손흥민은 2010년 국가 대표선수가 된 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부터 대한민국의 간판스타로 활동해왔다. 2015년부터 10년간 토트넘 소속 선수로 활약하며 토트넘의 레전드가 됐고 2025년 미국 프로축구 LA FC로 이적한 뒤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북중미월드컵에선 홍명보 감독과 호흡이 맞지 않은 탓인지 그의 실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 그는 12일 체코전 때 후반전에 교체된 데 이어 25일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경기 땐 선발 명단에서 빠졌고, 한국은 32강 진출에 실패했다. 차범근과 박지성에 이은 한국 축구 국가대표 손흥민 시대는 저무는 듯하다. 하지만, 그는 북한의 젊은이들에게도 희망과 영감을 준 ‘영원한 캡틴’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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