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리뷰 - 뮤지컬 ‘베토벤’
청각 잃은 고뇌 · 불우한 가족사
베토벤의 인간적인 모습 재조명
베토벤役 홍광호 성량 무대 압도
20여명 앙상블과의 조화도 볼만
내달 11일까지 세종문화회관서
3년 전 뮤지컬 ‘베토벤’이 초연될 때만 해도 흥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국내 창작 뮤지컬의 지평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지만 베토벤은 분명 우리가 다루기에 쉽지 않은 인물이니까.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이 누구인가. 독일은 물론 서양 고전 음악의 최고 피아니스트이자 ‘성인급’ 작곡가 아닌가. 그걸 독일도 아닌 한국에서 만든다니… 발상은 원대하나, 그만큼 매우 위험한 시도였다.
그러나 제작사인 EMK뮤지컬컴퍼니(대표 엄홍현)는 우려와 걱정을 딛고 베토벤을 다시 꺼내 들었다. 작사가이자 극작가인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 콤비의 가능성을 믿었다. 그리고 지난달 9일부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베토벤에는 관객들의 발길이 더 많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3일 찾은 현장의 열기는 높았다. 베토벤 역에 홍광호, 그를 지지했던 여성 안토니 브렌타노 역에 김지현이 캐스팅된 공연이었다. 앞서서는 박효신과 윤공주 등이 열연했다.
2023년 공연이 베토벤과 안토니 브렌타노의 로맨스에도 힘을 줬다면, 이번엔 베토벤의 인간적인 면모에 더욱 집중했다. 음악가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난청으로 고뇌하던 심리, 불우한 가족사가 좀 더 부각됐다. 베토벤은 하이든과 모차르트로 대변되던 18세기 말∼19세기 초 클래식계에 낭만주의 시대를 연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피아노 소나타 ‘비창’과 ‘월광’, 교향곡 ‘운명’과 ‘합창’ 등 클래식 문외한이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곡을 만든 천재 작곡가로 통한다. 특히 30대 이후 청력을 상실하는 시련 속에서도 후대에 길이 남을 역작을 만들어내 최고의 예술가로 꼽힌다. 하지만 그의 실제 삶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일찍이 아들의 천재성을 알아본 부친으로부터 혹독한 음악 교육을 받은 탓에 트라우마가 있었고, 자신을 믿고 응원해주던 동생이 먼저 세상을 떠났으며, 그 자신은 음악가로선 청천벽력과도 같은 청력 상실로 절망에 빠졌다.
뮤지컬에선 이런 베토벤의 인생이 압축적으로 펼쳐진다. 청력을 잃어가는 베토벤의 내면 투쟁과 그것이 베토벤을 변화시키는 과정에 주목한다. 천재적 예술가로서 알려진 것 외에도 그가 고민했던 인간적 번민을 담으려고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베토벤 역 홍광호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홍광호는 정확한 발음과 풍부한 성량으로 무대를 압도한다. 감정이 폭발할 때는 바리톤의 중저음과 고음으로, 내면을 드러낼 때는 부드럽고 은은한 미성으로 강약을 조절한다. 빠르게 전환하는 무대 장치, 20여 명 앙상블과의 조화로 훨씬 유연한 호흡을 보여준다. 전체 155분 중 인터미션 20분을 제외한 1부(70분)·2부(65분)의 엔딩 신은 하이라이트다. 1부 엔딩에선 홍광호가 난청에 시달리는 베토벤을 표현하기 위해 피아노 위에 올라가 울부짖고, 배경으로 ‘운명’ 교향곡이 흐른다. 2부 엔딩에선 청력 상실 중에 만들었던 교향곡 ‘합창’을 지휘한다. 베토벤이 공연 직후 관객의 박수 소리를 듣지 못하고 그냥 서 있자, 그를 돌려세워 관객의 반응을 살피게 했다는 에피소드를 그대로 연출한다.
베토벤의 명작을 51곡의 넘버에서 확인하는 재미도 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 중 대중에게 잘 알려진 8번 ‘비창’은 ‘잔인한 내사랑’에, 14번 ‘월광’은 ‘세상이 너에게’에 깔려 있고, 교향곡 3번 ‘영웅’은 ‘형제의 재회’, 6번 ‘전원’은 ‘바덴의 숲’, 9번 ‘합창’은 엔딩에 그 소리 그대로 울려 퍼진다.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결코 잘 알지는 못했던 베토벤을 이번 작품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왜 베토벤이 250년이 지난 지금도 최고의 음악가로 추앙받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클래식계의 저명한 평론가인 영국의 노먼 레브레히트는 그의 저서 ‘왜 베토벤인가’에서 “그는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으면서 언제라도 닿을 수 있는 존재로 거기 있다”며 “그는 인간의 필요와 고통을 표현하는 데 있어 실패를 모르는 작곡가다. 생각하는 삶에는 어디든 베토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연은 8월 11일까지다.
김인구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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