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학자 최재경과 그를 배우로 데뷔시킨 연출가 김제민

 

최재경 소설 희곡으로…연극 ‘113’ 3일 막올라

황순원과 이상의 문학 수학적 개념으로 재해석

 

최 “수학논문과 공연, 흥미 끌어내야하는 점 닮아”

김 “예술 즐기는 관점의 축 하나 더해주고 싶었다”

연극 ‘113’의 희곡을 쓴 최재경(오른쪽) 전 고등과학원장과 연출을 한 김제민 리멘워커 대표가 지난달 26일 문화일보 사옥 앞에서 손을 잡고 있다.  문호남 기자
연극 ‘113’의 희곡을 쓴 최재경(오른쪽) 전 고등과학원장과 연출을 한 김제민 리멘워커 대표가 지난달 26일 문화일보 사옥 앞에서 손을 잡고 있다. 문호남 기자

“고등학교 때 아인슈타인과 황순원을 둘 다 좋아했습니다. 도서관에서 뉴턴과 갈릴레오의 책을 읽으면서 수학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위인들이 너무 뛰어난 천재들이더라고요. 그래서 수학자를 포기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했죠.”

그렇게 고2 때 문과로 진학한 청년은, 다시 고3 때 이과반으로 돌아왔다. 문학 비평을 읽으며 또다시 좌절했기 때문이다.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시각과 해석이 있었습니다. ‘나는 소설가가 못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평생 수학의 길을 걸었던 학자는 “아인슈타인의 100분의 1이라도 되려고 노력한다”는 자신의 말에 누군가 “왜 황순원의 100분의 1이라도 되기 위해 글을 쓰지는 않느냐”라고 되받자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수십 년간 접어 두었던 꿈을 꺼내 들었다. 소설을 쓰고, 희곡으로 바꿨다.

극소곡면론 분야에서 세계적 성과를 거둔 수학자 최재경(73) 전 고등과학원장의 얘기다. 최 전 원장이 극본을, 김제민(서울예술대 교수) 리멘워커 대표가 연출을 맡은 연극 ‘113’의 공연을 앞두고 지난달 26일 문화일보 사옥에서 이들을 만났다.

최 전 원장에게 희곡을 쓰게 된 배경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문학소년이었던 학창 시절을 들려주며 “연극 ‘113’의 오프닝 대사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빙긋이 웃었다. 연극은 그가 수학자 역으로 무대에 등장해 작품의 시작과 끝을 열고 닫는 구조다.

수학자로서 논문을 쓰는 것과 희곡을 쓰는 것은 공통점이 떠오르기 쉽지 않다. 최 전 원장은 “수학도 문학이나 연극과 통한다”고 말했다. “수학 논문을 쓰는 것도, 희곡을 쓰는 것도 둘 다 창조적이어야 합니다. 수학은 논리에 맞아야 하고 희곡은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수학도 문제를 푸는 아이디어를 찾는 과정에서 개연성이 필요하거든요.” 그는 특히 “새로운 문제를 스스로 만들어낼 줄 아는 능력”이 수학과 문학에 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학회에서 새로운 논문을 발표하는 것 역시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야 한다는 점에서 공연과 닮았다”고 말했다.

김 대표와는 2012년 고등과학원의 초학제 프로그램에서 같은 팀으로 서로 알게 된 사이다. 김 대표는 최 전 원장이 “수학은 엄밀성을 따지지만 예술은 오류를 합쳐서 가는데, 이를 연결해 보면 좋겠다”고 연극 감상평을 보내온 것을 보고 10여 년 전 최 전 원장이 쓴 소설을 떠올렸다. 소설 속 대화체가 많다는 점에 착안, “희곡으로 만들어 봅시다”라고 제안했다.

희곡을 쓰는 것과 배우로 무대에 서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과거 최 전 원장이 ‘맥베스’의 마지막 대사를 원어로 줄줄 읊는 것을 봤던 김 대표는 내친김에 그를 배우로까지 섭외했다. 실제로 최 전 원장은 영어 단편소설을 즐겨 외우는 취미가 있다.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 ‘애러비(Araby)’를 통째로 암기할 정도였다고 한다.

연극 제목 ‘113’은 극 중 수학자의 친구인 시인이 쓴 동명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원래 소설 제목은 ‘수미쌍관’이었다. “수학 문제와 몇 년을 씨름하면서 논문을 썼는데 마지막 단계에서 오류가 발견되면 허무가 밀려옵니다. 그때 시가 써지더군요.” 최 전 원장은 “113은 세 자릿수를 어떻게 뒤섞어도 소수가 되는 수”라고 특이점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는 사실 1+1이 3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학자의 입에서 나온 ‘1+1=3’이라니…. 그 답은 위상수학의 ‘연결합’ 개념이었다. 끊어진 두 개의 세계를 이어 붙여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으로, 이는 인생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인연을 맺고 그 이상을 만들어내는 것과 닮았다는 설명이다. 수학자와 시인이 등장하고 황진이와 황순원, 이상의 문학이 수학적 연결합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들은 수학에 관심이 있든 없든 편히 볼 수 있는 연극이라고 강조했다. 사라진 시인 친구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수학자가 ‘영험한 도넛’을 먹고 시공간이 뒤틀리는 초현실적 경험을 하게 되는 ‘기묘한 연결의 드라마’라고.

관객들에게 전달하고픈 메시지는 서로를 향해 뻗어 있었다. “수학은 인생을 재미있게 보는 방법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최재경) “예술 관점의 축을 하나 더 추가해 예술을 수학적으로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습니다.”(김제민)

연극 ‘113’은 대학로 극장 쿼드에서 오는 3일부터 12일까지 관객들을 만난다.

박세영 기자
박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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