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논설고문

 

호남 반도체 靑 공개 압박 위험

외국인 7조 순매도로 시장 불안

전력·용수·인력 생태계 따져야

 

대만 가뭄 때 TSMC 반면교사

靑 완공 시기까지 압박 무리수

외국인 주주 반발도 대비해야

이재명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전영현 DS 부회장을 공개적으로 청와대로 부른 것은 위험한 장면이다. 최태원 SK 회장과 비공개로 만난 것과 딴판이다. 시장에 정치권이 특정 지역 투자를 압박한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고,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의심도 부를 수 있다. 철저히 ‘이익 극대화’를 원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정치적 명분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호남 800조 원 반도체 투자가 공식 발표되면서 시장 불안도 커지고 있다. 외국인들은 곧바로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사상 최대인 7조7000억 원 넘게 순매도했다.

정부는 호남이 반도체 팹 최적지라고 장담했지만, 반도체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광주가 후(後)공정 패키징 후보지로 꼽혔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훨씬 크고 복잡한 전(前)공정 팹 4개 이상이 들어서는 ‘반도체 클러스터’ 후보로 떠오른 적은 없다. 평택·용인 다음은 충북 청주와 경북 구미 정도가 자주 거론됐다. 반도체 특유의 전력·용수·소부장 생태계 때문이다.

반도체 클러스터의 생명은 불순물을 완벽히 제거한 ‘초순수’ 확보다. 전공정은 웨이퍼(반도체 원판) 위에 미세한 회로를 그리고 깎아낸 뒤, 이를 끊임없이 씻어내는 과정의 반복이다. 팹 하나당 하루 20만t 이상의 초순수가 필요하다. 단연 한강 수계의 이천·평택·용인이 최고의 입지다. 청주도 대청호 수계를 통한 확보가 쉽다. 낙동강 수계의 구미는 원전과 멀지 않아 전력 공급 환경도 좋다. 부근에 SK실트론(웨이퍼), LG이노텍 등 소부장 생태계도 집적돼 있다.

청주·구미의 약점은 석박사급 전문인력의 이른바 ‘기흥-화성 남방한계선’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의 전공정은 약 600개 단계로 구성돼 있고 수율을 높이기 위해 밤낮으로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공정마다 연구개발 인력과 엔지니어가 24시간 함께 붙어 일하며 미세한 불량을 잡아내는 기술 집약적 공간이다. 물리적 거리가 멀수록 수율 관리가 어려워진다. 광주는 수도권 연구개발 거점과 200㎞ 이상 떨어져 불리한 입지 조건이다. 한강·낙동강보다 유량이 훨씬 적은 영산강 수계가 대형 클러스터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2021년 대만은 56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만났다. 대만 정부는 TSMC 팹의 초순수 확보를 위해 논농사를 중단시키는 휴경 명령까지 내려 농업용수를 몰아주었다. 막판에는 생활용수까지 공업용수로 돌리기 위해 타이중 등 민간 상업 지역에 주 2일 단수 조치를 발동했다. 수백 대의 탱크로리와 급수차를 징발해 가뭄이 덜한 지역의 물을 실어 날랐다. 초순수가 바닥나 단 한 시간이라도 라인이 멈추면 수천억 원의 손실이 날 위기였다. TSMC가 일본 규슈를 첫 해외 생산기지로 낙점한 것도 풍부한 용수와 안정적인 전력 확보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규슈에는 아소산 화산 활동으로 연 6억4000만t 규모의 거대한 천연 지하수가 형성돼 있다. 적은 비용으로 대량의 초순수를 만들 수 있다. 여기에 센다이(川內)·겐카이(玄海) 원전 4기가 기저부하를 맡아 일본에서 유일하게 전력이 남아도는 지역이다.

SK하이닉스는 2006년 이천 캠퍼스에 구리 정화시설까지 도입해 증설을 시도한 적이 있다. 하지만 배출수가 서울 식수원인 팔당호로 흘러드는 남한강 수계에 위치한 게 문제였다.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발목이 잡혀 결국 실패했다. 반면, 삼성전자의 기흥과 평택 캠퍼스는 배출수가 안성천 수계를 통해 서해안으로 빠져나가 세계 최대 규모의 P1∼P6를 무리 없이 지을 수 있었다.

메모리 반도체는 돈과 시간과의 싸움이다. 입지는 정치 논리가 아니라 철저히 효율성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투자 타이밍도 중요하다. 메모리 피크 아웃이 언제 닥쳐올지 모르고, 삼성전자의 용인 클러스터 토지 보상도 37%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도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서남권 반도체 팹은 이재명 정부 내에 완공해야 한다”고 몰아붙인다. 기업 자율성을 해치는 ‘정치적 무리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자극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지분 50% 안팎을 외국인들이 쥐고 있다. 주가가 떨어지면 이들의 반발로 호남 반도체 투자가 제대로 실현될지 의문이다. 시장 논리를 거스르는 산업정책은 심각한 후폭풍을 낳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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