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전 한국정치학회장

 

정년 연장은 회피할 수 없지만

여당과 노동계 주장 위험천만

청년 취업 가로막는 벽 가능성

 

나이보다 연공 체계가 걸림돌

진입 장벽만 높이면 재앙 자초

‘세대 간 기회의 균형’이 기준

사회의 지속가능성은 기성세대의 경험과 미래세대의 가능성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갈 때 확보된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 노동시장은 이 자명한 시간의 흐름을 담아내지 못한 채 거대한 정체(停滯)의 늪에 빠져 있다. 최근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정년 연장 방안과 노동계의 법정 정년 연장 요구는 초고령화사회가 마주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늙어가는 사회에서 더 오래 일하며 삶의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요구는 정당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이제 막 사회라는 무대에 첫발을 내디디려는 청년들의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면, 우리는 이 논의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인간에게 노동은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사회적 존재로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세계와 관계를 맺는 통로다. 그러나 지금 청년들에게 노동의 문은 기회의 광장이 아니라 통과하기조차 버거운 거대한 벽이 됐다. 역사상 가장 높은 교육 수준과 역량을 갖춘 세대가 졸업과 동시에 마주하는 현실은 최근 5년 동안 최고치를 기록한 서글픈 청년실업률이다. 고용률 하락과 실업률 상승이라는 차가운 수치 이면에는 매일 아침 갈 곳을 잃은 청년들의 깊은 상실감과 존재론적 불안이 숨어 있다.

한 사회의 건강성은 내부자(Insider)와 외부자(Outsider)를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현재 우리 노동시장은 이미 안으로 들어간 이들에게는 단단한 요새이지만, 밖에 머무르는 이들에게는 가혹한 벌판이다. 기성세대가 이룩한 강력한 고용 보호와 연공(年功) 중심의 임금체계는 내부자의 기득권을 지켜주는 방패가 됐다. 그러나 이 방패가 두꺼워질수록 기업은 신규 채용이라는 모험을 회피하게 되고, 그 결과는 ‘채용 축소’와 ‘경력직 선호’라는 형태로 청년들에게 되돌아온다.

문제의 본질은 ‘더 오래 일하겠다’는 고령층의 소망이나 정년 연장 자체에 있지 않다. 연공 중심의 임금체계를 그대로 둔 채 근로기간만 연장하려는 접근에 있다. 직무급제 전환과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사회적 타협 없이 추진되는 정년 연장은 내부자의 기득권을 더욱 강화하고 외부자의 진입 장벽을 더욱 높이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기성세대의 고용 안정과 청년세대의 첫 출발은 어느 하나를 희생해 선택할 수 없는 동일하게 존엄한 사회적 가치다.

그동안 우리는 청년들에게 너무 손쉬운 위로를 건네왔다. 실업급여 확대, 일회성 취업박람회, 단기 인턴십과 같은 처방은 구조적 갈증을 해소하지 못한다. 지금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를 향해 올라설 수 있는 단단한 ‘경력의 사다리’다. 중소기업에서 첫걸음을 내딛더라도 역량을 축적하면 더 나은 기회로 이동할 수 있다는 신뢰, 그리고 노력한 만큼 직무 가치가 인정받는 노동시장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대기업과 공공기관이라는 좁은 바늘구멍만 바라보는 왜곡된 경쟁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정년 연장 논의는 단순한 연령 문제가 아니라 ‘세대 간 기회의 균형’이라는 관점에서 시작돼야 한다. 고령층의 직무급제 전환과 단계적 임금 조정, 일자리 나누기 등을 통해 청년 채용의 여력을 확보하고, 직무 역량 인증과 경력 이동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노동시장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논의의 핵심은, 단순한 찬반이 아니라 세대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시장의 충격을 완화할 사회적 합의 구조를 설계하는 데 있다.

청년이 사회 진출이라는 첫 단추를 끼우지 못할 때 그 사회의 시간은 멈춘다. 결혼과 출산은 유예되고 삶의 확장은 중단되며 사회 전체의 성장잠재력은 뿌리부터 약해진다. 미래세대를 환대하지 않고 성벽 밖으로 밀어내는 공동체에는 연대도 지속가능성도 있을 수 없다.

아름다운 사회는 노년의 지혜와 청년의 역동성이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사회다. 지속가능한 노동시장의 이정표는 명확하다. ‘어르신들이 더 오래, 보람 있게 일할 수 있는 사회’인 동시에 ‘청년들이 더 쉽게 첫 직장의 문을 열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이 두 가치가 충돌이 아니라 공존의 원리가 될 때 비로소 진정한 노동개혁은 완성된다.

청년의 눈물을 외면한 채 세워지는 미래는 없다. 노동의 미래는 결국 지금 문턱에 서 있는 청년들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전 한국정치학회장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전 한국정치학회장

기사 추천

  • 추천해요 1
  • 좋아요 2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1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