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제은행(BIS) 연례보고서는 빅테크 5개사의 2025∼2026년 인공지능(AI) 설비투자액 1조 달러가 자체 수익과 잉여현금흐름을 이미 초과했다고 지적했다. 4대 하이퍼스케일러 중 자체 영업현금흐름으로 설비투자를 감당할 수 있는 곳은 마이크로소프트(MS) 하나뿐이며, 하이퍼스케일러 전체의 순부채는 2025년 초 대비 1700억 달러 늘었다. 설비투자 증가율은 매출 증가율을 46% 앞서 투자가 수익을 훨씬 앞질렀다. AI 투자는 지난 3년간 4.5배 증가해 닷컴 버블, 철도 붐 시기를 넘어 역사상 어떤 기술 붐 시기보다 가파르다.
BIS가 주목한 것은 순환금융 구조다. 반도체 기업과 하이퍼스케일러가 AI 스타트업 지분을 취득하면, 그 업체들이 다시 반도체와 컴퓨팅 파워를 선구매 약정하는 방식이다. 매출과 수익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같은 자금의 자전(自轉)거래 구조다. 이 구조의 붕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충격을 예견한다.
이 경고가 울리는 시점에, 한국은 4755조 원 규모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AI 데이터센터, 피지컬AI 등 3대 메가프로젝트를 선언했다. 용인·호남·충청 클러스터가 모두 완공되는 2030년대 초, 한국의 반도체 공급 능력은 몇 배 늘어난다. 문제는 그때 그 공급을 받아줄 수요가 있을 것인가이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의 원천이 순환금융 구조 위에 올라탄 하이퍼스케일러들의 발주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반도체는 전형적인 붐-버스트 사이클 산업이다. 팹 건설에 5∼7년이 걸리는 동안 수요 사이클은 2∼4년 주기로 요동치면서 수요 정점 뒤에 공급이 쏟아지는 구조다. 호남 팹은 BIS가 경고한 AI 거품 조정 예상 시기(2027∼2029년)에 공사 중이고, 글로벌 투자은행 UBS가 지목한 다운사이클(2029년 이후)에 완공 예정이다. 고정비 비율이 극히 높아 가동률 하락 시 손실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2017년쯤 서버 메모리 호황에 일제히 증설에 2019년 D램 가격이 40% 폭락한 게 불과 7년 전이다.
집중 리스크도 심각하다. 반도체 수출이 전체 수출의 20%, 삼성·SK 영업이익이 코스피 전체의 40∼50%에 이르는 나라에서 메가 프로젝트 3개 모두 같은 수요를 겨냥한다. 1973년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이 과잉 투자 부작용에도 결국 살아남은 것은, 세계 경제가 그 제품들을 실제로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반면, 지금 바라보는 수요의 상당 부분이 순환금융으로 부풀려진 허수일 수 있다는 게 BIS의 핵심 우려다.
여기에 한국 특유의 ‘정책 연속성 리스크’까지 겹친다. 지난 2020년 49조 원을 투입한 디지털 뉴딜은 2022년 정권 교체와 함께 사실상 폐기됐다. 기업들의 이번 3대 프로젝트 추진 배경에 정부의 인프라 및 보조금 지원과 규제 완화 약속이 깔려있다면, 정권이 바뀌는 순간 그 전제가 흔들릴 수 있다.
핵심 질문은 투자 규모만큼 리스크 검증도 그만큼 깊어졌느냐이다. 시나리오를 복수로 설계하고, 정책 지원의 법제화를 통해 연속성을 보장해야 한다. AI 거품이 조정될 경우의 단계적 축소 및 충격 완화 계획, 지역 클러스터의 산업 생태계 조성 로드맵, 그리고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유지될 지원 체계까지 철저하면서도 유연한 전략 수립이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