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후반기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한 데 이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인 서영교 법제사법위원장은, 국민의힘이 상임위 강제 배치에 반발해 일정을 보이콧하자 오는 7일 회의를 열어 법사위 고유 법안 등 약 100건을 상정하겠다고 했다. 이는 의회민주주의의 핵심인 소수 의견의 보호와 권력 견제의 원리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중대한 사태다.

민주주의를 다수결과 동일시하면 쉽게 ‘다수의 폭정’으로 변질된다. 필리버스터와 패스트트랙은 입법을 무한정 지연시키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다수당이 한 번 더 숙고하고 국민이 쟁점을 충분히 판단할 시간을 주기 위한 민주적 안전장치다. 존 스튜어트 밀은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험을 다수의 폭정에서 찾았다. 미국 헌정 체제를 설계한 제임스 매디슨 역시 권력은 반드시 다른 권력에 의해 견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주의의 안정성은 승자의 절제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새뮤얼 헌팅턴 또한 민주주의의 지속가능성은 제도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에 있다고 했다.

6·3 지방선거가 남긴 가장 중요한 정치적 메시지도 ‘민심의 균형 명령’이다. 국민은 어느 한쪽의 무제한 권력을 허용하지 않았다. 집권 세력이 이미 확보한 권력을 절제하고 대화와 협치를 강화하라는 민주적 경고다. 이는 권력 독점보다 절제를, 속도보다 절차를, 승자독식보다 포용을 요구한 민심이다.

어쨌든 민주당의 오만과 독주는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것이다. 첫째,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하는 국정 운영은 중도층의 신뢰를 빠르게 잃게 만든다. 선거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중도 유권자는 정책의 방향보다 권력 행사 방식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둘째, 국민의힘 내부에선 ‘의원직 총사퇴’가 언급될 정도로 대여 초강경 투쟁이 계속될 전망이다. 셋째, 협치와 국민통합을 국정 기조로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국회 내 견제 장치를 약화시키는 집권당의 반민주적이고 위선적인 행태는 정부의 메시지와 행동 간 괴리를 키우면서 정치적 신뢰를 급락시킬 수 있다.

결국, 이러한 불일치는 대통령 국정 운영 평가와 여당 지지율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가 6주 연속 하락하고 40%대를 기록하면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보다 높은 데드크로스가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선거에서 이긴 정당이 원하는 것을 모두 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니다. 헌정 민주주의는 다수의 권한을 인정하면서도 그 권한이 제도적 절제 속에서 행사되도록 설계됐다.

소수의 권리가 존중될 때 다수의 권력도 비로소 정당성을 얻는다. 국민은 더 많은 법률을 원하는 게 아니라 더 좋은 법률을 원한다. 좋은 법률은 빠른 표결보다 충분한 토론, 강한 권력보다 절제된 권력, 승자독식보다 협치와 포용의 정치 속에서 탄생한다. 그래서 필리버스터 등 소수당의 최소한의 견제와 토론을 위한 절차는 존중되고 유지돼야 한다. 민주당은 민주주의의 힘은 압도적 다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수를 스스로 절제할 수 있는 정치적 품격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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