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종훈의 백년前 이번週

100년 전 이번 주는 신문에 한 미국인 선교사의 조선 소년에 대한 만행 사건이 연일 보도되며 떠들썩했다. 사건은 1926년 6월 28일 조선일보 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평남 평원군 순안면 남창리 김명섭(12)이라는 어린아이가 작년 음력 7월 25일에 예수 재림 안식교 부속 순안병원에서 경영하는 과수원에 들어가서 임금(林檎·능금)을 딴 사실로 병원장인 미국인 허시모(許時模·Haysmer)에게 붙들려 혹독한 사형(私刑)을 받은 사실이 최근에 발로(發露)되어 평원 사회에 큰 여론이 되고 민중이 극도로 격분하여 민족적 문제라고 점차 확대되어 가는 사실이 있다. 이제야 발각된 사건의 자초지종은 아래와 같다. 김명섭은 동무들과 놀다가 순안병원에서 경영하는 과목밭에 가서 같이 능금을 따서 먹을 때에 갑자기 원장 허시모와 간호부 임신일에게 들키게 되자 다른 아이들은 다 달아나고 김명섭은 미처 달아나지 못한 까닭으로 잡혔다. 허시모는 김명섭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집 앞에 있는 복숭아나무에 뒷짐을 지어 비틀어 매고 염산이라는 독약을 붓에 찍어 김명섭의 좌우 뺨에다 도적이라는 두 글자를 크게 써서 한 시간 동안이나 볕에 말린 후에 풀어놓았으니, 이로 인하여 도적이라는 두 글자는 영원토록 그 아이의 뺨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 되었다. 그리하여 김명섭의 모친은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분하고 원통함을 참지 못하여 즉시 병원으로 허시모를 찾아 그 까닭이 어디 있느냐고 강경히 질문하였으나, 허시모는 오히려 냉정한 태도로 ‘도적질을 하는 자에게는 그와 같이 해야 된다’ ‘그래야만 후일의 경계가 되어 그 습관을 고친다’는 말로 일언반사(一言半辭)의 위로와 사과는 아니하고 그와 같은 억설(臆說)을 토하였다. 또 고쳐 줄 것이니 일주일 동안만 우리 병원에서 오늘부터 고용살이를 하라고 하면서 우선 과수원의 풀을 뜯으라고 호미를 명섭 모친에게 주었다. 명섭의 모친은 더욱 원통하고 어이없어서 분을 참고 그냥 돌아왔다 한다.”

이 사건이 보도된 후에 조선뿐만 아니라 일본에서까지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소년의 뺨에 새겨진 낙인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거라는 점이었다. 이 흉터를 치료하기 위해 소년을 경성으로 데리고 온 의사 최영재 씨의 이야기가 1926년 7월 6일 조선일보에 실린다.

“경성 낙원동에 있는 최영재의원 원장 최영재 씨는 의사로서의 직책상 이러한 일에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는 것이라 하여 지난 7월 2일 오후 8시 급행열차로 평양을 향하여 출발하여 5일 아침에 전부 자기의 비용으로 김명섭 소년을 데리고 시내 낙원동에 있는 병원으로 왔다. 그는 ‘나는 다만 의사로서의 책임도 느끼거니와 더욱이 이번 사건의 주인공 되는 김명섭 소년은 고독한 아이이므로 더욱이 많은 동정이 갑니다. 그래서 이번에 데리고 올라온 비용이며 또 앞으로 모든 치료에 대한 모든 비용도 물론 무료로 해 주려 합니다. 그리고 상처는 지금같이 순조롭게 치료가 되면 앞으로 3∼4주일가량이면 완치될 듯한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19세기발전소 대표

※ 위 글은 당시 지면 내용을 오늘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풀어서 옮기되, 일부 한자어와 문장의 옛 투를 살려서 100년 전 한국 교양인들과의 소통을 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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