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원전 1호기의 가동 영구정지는 탈핵 국가로 가는 출발이자,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가는 대전환이다. 원전은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해야 하는 우리가 개발도상국 시기에 선택한 에너지 정책이었으나 이제는 바꿀 때가 됐다.”
2017년 6월 고리 1호기 영구정지 기념행사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한 말이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에 탈원전은 신앙과 같았다. 언제든 엄청난 원전 사고가 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출발했다. 또, 원전은 개발도상국 때나 필요한 것이지 선진국 문턱에 있는 우리나라엔 재생에너지가 적격이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2016년 서울에서 구글의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면서 인공지능(AI)이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2022년 11월 챗GPT가 공개되면서 AI 시대가 열렸다.
AI가 본격화하면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고 원전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 이미 전문가들 사이에 공유되던 때인데 한 나라를 이끄는 대통령과 집권 세력의 판단은 한참 모자랐다. 과거 싸움은 잘하는데 미래 예측은 전혀 하지 못하는 좌파 진영의 고질적 맹점을 드러냈다. 이재명 대통령도 다르지 않았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해 “짓는 데 15년이 걸리고요. 원전 지을 데가 없어요. 30개 넘게 지어야 하는데 그거 어디다 지을 건데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탈원전은 아니지만 ‘감원전’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물 관리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물 부족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수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 4대강 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민주당과 좌파 언론은 죽기 살기로 반대했다. 물을 흐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녹조라떼’라는 말도 나왔다. 문재인 정권은 금강·영산강 5개 보 가운데 세종보와 죽산보는 해체하고 공주보 부분 해체, 백제보·승촌보 상시 개방을 결정했다. 이재명 정권도 4대강 재자연화 논의를 시작했다. 환경론자인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4대강 사업에 대해 “안 했어야 할 정책”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던 기후환경댐 건설 사업도 백지화시켰다. 이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금강·영산강 보 해체, 4대강 보 전면 개방 등을 제시했다.
이러던 이 대통령과 민주당이 호남 반도체 공장 건설 발표 이후 180도 달라졌다. 원전도 짓고 댐도 만들겠다고 한다. 금과옥조처럼 여긴 52시간제도 호남 반도체에 한해 예외 조항을 두겠다는 얘기도 들린다. 호남 반도체와 다른 지역 반도체는 뭐가 다르길래, 다른 산업과는 뭐가 다르길래 호남만 예외를 두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
탈원전, 4대강, 52시간제, 노란봉투법 등 자신들이 신앙처럼 여기던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을 바꾸면 왜 그때는 그렇게 죽기 살기로 추진했는지 설명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뻔뻔스럽다. 목소리 높이던 환경단체들은 원전과 댐을 지어야 하는 호남 반도체를 왜 반대하지 않는가. 예전처럼 광화문광장에 나와 반대 시위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호남이라서 하지 않는 것인가.
문 정권이 원전에 발목을 잡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원전이 추가로 가동돼 전력 문제가 없을 것이다. 추미애 경기지사는 국회의원 지역구였던 하남에서 변전소 증설을 반대했다. 이 때문에 강원도에서 생산된 전력이 수도권으로 오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용인 반도체 공장의 전력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는데 추 지사는 여전히 하남 변전소를 반대할 것인지 궁금하다.
하준경 청와대 경제수석은 3대 메가프로젝트에 대해 “박정희 시대 산업화와 비견될 규모”라고 했다. 박정희 시대라면 독재 정권이라고 줄기차게 비판해온 이들이 박 정권을 평가하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이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정부·여당의 그 누구도 이번 사업을 추진하면서 자신들이 과거에 주술처럼 주장해온 탈원전, 4대강 보 해체 문제에 대해 사과하거나 잘못을 시인하는 발언을 들어보지 못했다.
호남에 공장이 만들어지는 데 대해 누가 반대를 하겠나. 문제는 그동안 호남이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 왔는가 하는 것이다. 안정적인 전력 확보를 위해, 원전 건설이나 물 확보를 위해, 댐 건설 등에 대해 지자체나 시민들의 노력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