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주 골든 트라이앵글 폴리머스 프로젝트(GTPP) 현장에 DL이앤씨가 2024년 11월 설치한 화학 반응 장치 ‘루프 리액터’가 우뚝 서 있다. DL이앤씨 제공
DL이앤씨가 차세대 원전으로 꼽히는 소형모듈원자로(SMR)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고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섰다. SMR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폭증하면서 미래 에너지 산업의 핵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DL이앤씨는 국내 건설사 최초로 미국의 SMR 선도 기업 엑스에너지(X-energy)의 표준화 설계를 수행하면서 글로벌 원전시장 진출 교두보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국내 최초 SMR표준화 설계 수주= 최근 AI시대를 맞아 SMR은 탄소 없이 대용량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SMR은 전기 출력이 300메가와트(㎿) 이하인 소형 원전이다. 도시나 공장 등 전력 수요지와 가까운 곳에 세울 수 있고 건설 기간도 짧은 편이다.
DL이앤씨가 수행하는 SMR 표준화는 SMR의 뼈대가 되는 설계다. 발전소 내 각 설비가 어떻게 상호 연계돼 작동할지를 구체화하는 작업이다. 반복 생산 기반을 마련해 생산성과 경제성을 높이고 상용화를 앞당기는 핵심 단계로 꼽힌다. 국내 건설사가 SMR 개발사로부터 직접 대가를 받고 사업을 수행하는 건 처음이다.
DL이앤씨는 플랜트 분야에서 축적한 설계 기술과 시공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 상반기까지 설계를 완료할 계획이다. 완성된 설계는 2030년 가동 예정인 엑스에너지 초도호기를 시작으로 후속 프로젝트 전반에 적용될 예정이다. DL이앤씨 관계자는 “미국 SMR 시장은 사업 초기 단계부터 참여한 기업이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구조”라며 “표준화 설계 수주는 향후 후속 프로젝트 참여 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이정표”라고 말했다.
이번 수주는 단순한 설계 용역 이상 의미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 SMR 시장은 초기 투자와 사업 개발 단계부터 참여한 기업들이 주도권을 확보하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AI데이터센터 확산과 제조업 리쇼어링(생산시설 국내 이전)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원 확보가 핵심 과제이기도 하다.
박상신(왼쪽) DL이앤씨 대표와 권명호 한국동서발전 사장이 6월 11일 동제주 복합발전소 건설 공사 계약을 체결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DL이앤씨 제공
◇SMR에 이어 친환경 에너지까지 동력 확보= DL이앤씨는 일찌감치 SMR 시장 선점에 나섰다. 지난 2023년 엑스에너지에 2000만 달러(약 300억 원)를 투자하며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엑스에너지는 미국 에너지부(DOE)의 지원을 받는 4세대 SMR 개발사로, 아마존을 전략적 파트너로 확보했다. 아마존은 엑스에너지 지분 약 23%를 보유한 최대 주주이자 핵심 전력 수요처다. 2039년까지 총 5기가와트(GW) 규모 SMR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해외시장 공략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8월 미국 에너지부와 한국 산업통상부가 공동 주최한 ‘한·미 원자력 혁신 라운드 테이블’에 엑스에너지와 함께 참석하며 협력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같은 해 7월에는 필리핀 최대 전력회사 메랄코(Meralco)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현지 SMR 도입에도 나섰다. 전력 수요 증가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원전 사업 재개를 추진 중인 필리핀은 SMR 유망 시장으로 꼽힌다. DL이앤씨는 필리핀에서 국내 건설사 최다인 15건의 시공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에서 북쪽으로 약 50㎞ 떨어진 몽스타드 정유공장 부지의 SMR 건설을 위한 타당성 조사를 완료했다. 국내 건설사가 노르웨이에서 원전 타당성 조사를 수행한 첫 사례다. 타당성 조사가 완료되면 원전 부지와 건설 규모, 재원 조달 방안 등 사업 추진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확정된다.
친환경 에너지 분야 포트폴리오도 넓혀가고 있다. 최근 제주에서 5500억 원 규모 ‘동제주 복합발전소 건설 공사’를 단독 수주했다. 이는 총 발전용량 150㎿ 규모의 가스복합발전소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향후 청정 수소 발전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수소 사용이 가능한 터빈이 적용된다. 수소 발전은 기존 발전 시설을 활용하면서도 이산화탄소 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차세대 발전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정부는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2036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28기를 단계적으로 폐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