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말릴란드 여성이 지난 2024년 11월 열린 대통령 선거 당시 수도 하르게이사의 한 투표소 앞에서 대기하던 중 국기를 끌어안고 있다. AP 뉴시스
30년 넘게 정상국가 면모를 보여왔지만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지 못한 아프리카 동부 소말릴란드가 최근 이스라엘과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활발히 교류하면서 이 같은 ‘미승인국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소말릴란드 이외에도 압하지야, 북키프로스, 트란스니스트리아 등 유럽과 아시아 등 각 대륙에 미승인국가들이 자체적인 정부·군대·화폐 등을 가지고 있지만 갖가지 이유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강대국들은 이들 미승인국가를 독립국으로 공식 인정할 시 기존 국가의 국경을 존중해야 한다는 영토보전(territorial integrity) 원칙이 무시되는 것을 우려할 뿐 아니라 자국에 있는 독립 세력들에도 독립 명분을 주는 것을 의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소말리아보다 정상국가에 가깝지만 아직 인정 못 받은 소말릴란드…이스라엘만 승인=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미승인국’이라고도 불리는 소말릴란드는 지난 196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을 때만 하더라도 미국·영국 등 30여 개국의 외교적 승인을 받은 국가였다. 그러나 소말릴란드 독립 며칠 만에 남쪽에서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던 소말리아가 독립했고, 이들은 ‘모든 소말리인을 하나의 나라로 모으자’는 의지 아래 자발적으로 통합해 현재의 소말리아가 됐다. 그러나 각각 영국과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던 소말릴란드와 소말리아의 행정 체계가 달라 통합이 어려웠고 국가 자원 대부분이 더 많은 인구가 살던 남부에 집중되면서 북부 주민들은 점점 소외되기 시작했다. 이후 소말리아 정부의 탄압과 내전 끝에 1991년 소말릴란드는 결국 1960년 자신들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주권을 회복한다는 명목으로 소말리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수십 년간 소말리아를 하나의 주권국가로 인정했던 탓에 소말릴란드는 독립선언 후에도 30년 넘게 미승인국가로 남아있다. 국제사회가 민족자결(self-determination)권에 근거한 소말릴란드의 독립 명분보다 ‘기존 국경과 국가의 영토보전을 유지한다는 원칙’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소말릴란드의 정치·경제적 상황이 소말리아보다 훨씬 낫다는 점이다. 소말릴란드의 인구(약 600만 명)는 소말리아의 3분의 1이 채 안 되지만 에티오피아 등 주변국과 무역을 하며 해외 원조에 의지하지 않고도 소말리아와 비슷한 수준의 1인당 국민총생산(GDP)을 유지하고 있다. 소말리아가 매년 20억 달러(약 3조 원)가 넘는 원조를 받는 것과 대조된다. 반면 소말릴란드는 정부가 국민들에 세금을 직접 걷어 자체 예산을 편성하고, 공무원·군인 등 급여를 지급하는 등 정치적으로도 안정돼 있다.
이 같은 상황 속 지난해 12월 이스라엘이 세계 최초로 소말릴란드를 외교적으로 인정했다. 이스라엘은 소말릴란드가 홍해 입구인 바브엘만데브 해협과 인접한 전략적 요충지라는 점, 양국 모두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공동의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 또 자국이 최근 아프리카 국가들과 관계 확대에 나서고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이 같은 국교 정상화를 추진했다. 이스라엘은 당시 소말릴란드가 30년 넘게 민주적 선거와 자체 행정·치안 등을 유지하며 사실상 독립국으로 기능했다는 점을 승인 근거 중 하나로 제시했다. 지난 6월에는 압디라흐만 무함마드 압둘라히 소말릴란드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국빈방문하기도 했다.
◇유럽·아시아 등 세계 각지에 위치한 ‘미승인국가’= 아프리카의 소말릴란드 외에 유럽과 아시아 각지에도 다수의 미승인국가가 존재한다. 유럽의 대표적인 미승인국가는 국제법상 조지아의 영토로 간주되는 압하지야다. 소련 시절 자치공화국 지위를 가지고 있던 압하지야는 소련 붕괴 직후인 1992년 조지아 정부와의 전쟁 후 독립을 선언했다. 당시 러시아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하던 조지아를 견제하고 흑해 연안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압하지야의 독립 전쟁을 도왔다. 현재 압하지야는 러시아 등 극소수 국가들의 인정만 받는 미승인국가다. 경제와 안보 일부를 러시아에 의존하지만 국민들이 자체적으로 선출하는 정부가 있고 대부분의 행정을 독립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소련 붕괴와 동시에 독립을 선언했지만 인정을 받지 못하는 또 다른 국가로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몰도바 내 트란스니스트리아가 있다.
그리스계 주민들과 튀르키예계 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중해 섬나라 키프로스에는 북키프로스라는 이름의 미승인국가가 존재한다. 1974년 그리스 군사정권이 키프로스를 그리스와 합병하는 쿠데타를 지원하자 튀르키예가 자국계 키프로스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보냈고 이후 북키프로스 튀르키예공화국이 탄생했다. 북키프로스 역시 정치, 안보,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실상 완전한 국가 면모를 갖췄지만 유엔 등에 의해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튀르키예가 군사력을 앞세워 점령한 영토에 세운 국가라는 이유 때문이다. 이에 현재 튀르키예만 북키프로스를 정식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왜 강대국들은 미승인국가 알면서도 모른 체하나= 이 같은 미승인국가들이 사실상 정상국가 면모를 갖추고 있음에도 국제사회가 이들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데는 복잡한 속사정이 있다. 겉으로는 민족자결권보다 기존 주권국가의 영토보전과 국제질서 안정을 중시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국 내 분리주의 세력의 독립 시도를 더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미승인국가가 하나둘 인정받게 될 경우 ‘도미노 효과’처럼 세계 곳곳에서 연쇄적인 분리 움직임이 발생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의 카탈루냐, 영국의 스코틀랜드, 캐나다의 퀘벡, 중국의 티베트와 신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현대 국제사회에서 특정 국가가 분리·독립을 인정받으려면 주변국과 강대국들의 인정을 이끌어내는 정치적 기술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